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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진 Jan 09. 2022

‘배달의 민족’ 김봉진“엄숙주의는 거부한다”

<책 잘 읽는 방법> 출간 김봉진 인터뷰

‘배달의 민족’ CEO 김봉진의 책 읽기 “엄숙주의는 거부한다...쉽고 가볍게 읽어라”



‘가평 같은 방’ 


‘배달의 민족’ 등 배달앱 서비스를 서비스하는 ‘우아한형제들’. 이곳의 CEO 김봉진을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 송파구에 있는 사옥을 방문했을 때 인터뷰 장소로 안내받은 공간의 이름이다. 회의실로 사용한다는 이 방은 한 켠에 주방 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창밖에는 올림픽공원의 정경이 펼쳐져 있다. 금방이라도 주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친구들과 음식 나눠먹으며 왁자지껄 수다를 떨 수 있을 것 같다. MT 장소로 유명한 가평의 방 분위기를 회사 안에 연출했다니 역시 ‘우아한형제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아한형제들답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 기업은 이제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많은 소비자들은 이 기업의 배달 서비스가 편리해서 선택하지만 나아가 이 기업의 B급스럽고, 재치있고, 유쾌한 문화를 소비한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카피를 내세운 영화 예고편같은 광고,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 ‘오늘의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와 같은 창의적 카피, 매달 다른 잡지를 선정해 실험적인 지면 광고를 선보인 ‘잡지 테러’ 등은 우수 마케팅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람 랭킹을 매긴다면 CEO 김봉진의 이름을 10위 권 안에는 둘 수 있지 않을까? 김봉진은 스타트업계에서 책 많이 읽는 CEO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우아한 형제들’ 직원들에게는 책 구입비가 무제한으로 지원된다. 그런 그가 자신을 ‘과시적 독서가’로 지칭하며 책 읽는 법에 대한 책을 냈다. 책 제목은 <책 잘 읽는 방법>(북스톤/ 2018년). 


사실 이미 서점가에는 책 읽는 법을 소개한 책들이 여러 권 나와 있다. 하지만 이 책이 가진 매력을 꼽자면 기존에 책만 보면 몸에 두드러기가 날 것 같은 거부감을 느꼈거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느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사람도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가평 같은 방’의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김봉진 대표에게 책에 대한 이야기, 그의 독서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글 읽는 법과 책 읽는 법은 다르다"...SNS 독자들에게 친숙한 책 


Q 스포츠 종목에서 큰 혁신을 이룬 스포츠 영웅들이 새로운 사옥을 장식하고 있다. 재미도 있고 쾌적한 분위기다. 


나는 공간 만드는 걸 좋아한다. ‘이렇게 하면 좀 더 재밌게 일할 수 있구나’, ‘이렇게 하면 분위기가 이렇게 되는구나’를 고민하는 게 내 개인 연구 과제다. 구성원을 상대로 임상실험을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웃음) 언젠가 이걸로도 책을 쓸 예정이다. 


Q 사옥이든 서비스든 늘 사용자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책 잘 읽는 방법>에서도 그런 태도가 느껴졌다. ‘소중히 다루지 않기’, ‘순서대로 읽지 않기’, ‘읽지 않은 책에 죄책감 갖지 않기’ 등 책을 안 읽던 사람들이 부담 갖지 않을만한 쉬운 목표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이 책을 읽다보면 비슷한 노하우들이 쌓이는 것 같다. 운동도, 요리도, 아주 특별한 비법이라고 해봐야 사실은 ‘꾸준히, 열심히 해라’ 밖에 없다. 그걸 너무 진지하고 어렵게 이야기 할지, 아니면 부드럽게 이야기 할지의 차이인데 나는 가볍게 얘기해보고 싶었다. 


Q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막상 읽고 싶어도 어디부터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해서 책 읽는 방법까지 아는 건 아니다. 나도 10년 전까지는 거의 책을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동기에 의해서 책을 읽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과 경험한 것을 편하게 얘기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Q 스트레스 받지 않고 책을 읽는데 책 디자인도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한 페이지 안에 반 정도 여백을 둬서 읽는데 부담감이 없고, 줄 바꿈이 자주 되어 있어서 페이지가 훅훅 넘어가는 느낌이다. 


북디자이너에게 특별히 요청했다. 책을 오랫동안 읽었던 독자보다 SNS에 더 익숙한 독자에게 편하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 책은 빨리 읽은 분은 1시간 정도, 느리게 읽은 분은 3~4시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어렵고 두꺼운 책은 그냥 한 번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생긴다고 썼듯이, 읽고 나면 ‘한 권 완독했네’라고 할 수 있는 성취감을 주려고 했다. 


Q 명함에 ‘경영하는 디자이너’라고 쓰여있다. 디자이너로서 ‘사용자 경험’의 관점에서 책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려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까? 


일단 너무 두껍지 않았으면 좋겠다. 읽기에 너무 힘들다. 이 책에도 <앵무새 죽이기>를 여러 번 언급했는데, 이 책이 영어 원서는 그렇게 두껍거나 크지 않더라. 그런데 한국에서 나온 책은 굉장히 두껍다. 또 말이 너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성경을 지금의 말로 바꿔놓은 <메시지>라는 책이 있다. 그건 성경에 비해 훨씬 더 잘 읽힌다. 이처럼 과거에 나온 고전도 현대의 언어로 바꿔서 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Q 책 앞머리에 ‘해가 지날수록 더욱 좋아지고 존경하게 되는 보미 씨에게’라고 아내에게 헌사를 썼다. 책에서 사업 실패로 어렵던 시절에 아내가 마음껏 책을 살 수 있게 해주었다고 썼는데 그 때문인가? 


그런 것도 있고, 책에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소개했는데, 이 책의 머릿글 끝에 ‘해가 지날수록 배우자에게 존경받는 것이 인생에서 궁극적인 성공이다’라고 쓰여있다. 몇 번 읽다가 나중에야 발견한 문장인데 인상 깊었다. 


Q 처음 읽을 때는 그 문장이 안 보였나? 


안 보였다. 그 책은 경영서이니까 회사의 전략과 비전을 어떻게 설정할지를 고민하면서 눈에 불을 켜고 읽는 책이다. 그런데 다시 그 책을 읽다가 페이지를 펼쳤는데 그 문장을 발견하고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성공한 기업을 상대로 조언을 하는 스탠포드 MBA 교수님이 왜 이런 이야길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내게는 그 말이 내가 먼저 상대를 사랑하고 존경해야 나도 사랑받고 존경 받을 수 있다는 말로 다가왔다. 그래서 존경하는 아내 이름을 책 맨 앞에 썼다. 실제로 아내를 존경하기도 하고. 


“나는 인류 최초의 과시적 독서가...유머와 즐거움 있어야 생각의 유연함 가능해져” 


Q 책을 안 읽다가 본격적으로 독서 생활을 시작했을 때 막막했을 것 같다. 어떻게 시작했나? 


일단은 나와 연관된 디자인 분야의 서적과 베스트셀러를 읽으며 시작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점에서 동선이 변했다. 처음에는 평대에 놓인 책들을 주로 봤다. 그러다가 스테디셀러들을 살펴보게 됐고, 나중에는 서가의 책들을 찾고 있더라. 서가까지 들어가는데 1년 넘게 걸린 것 같다. 그 안에 보물들이 많았다. 주로 서가에는 학교 숙제나 필독서를 찾기 위함이 아니라면 본인의 능동적 독서를 위해 책을 찾는 이들이 많다. 


Q 자신을 ‘과시적 독서가’로 소개했다. SNS가 득세하는 지금의 세태와도 잘 맞는 인간형인 것 같다. 


지금 세태일수도 있지만 인간의 본성 아닐까? 교수님이나 정치인, CEO들을 인터뷰한 걸 보면 꼭 책장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웃음) 왜일까? 뭔가 있어 보이려고 그 앞에서 찍는 거다. 기본적인 인간의 심리는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다 비슷하다. 10년 가까이 독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언젠가부터는 기사에 ‘독서광 김봉진’이라는 수식어가 붙더라. 이미 세상에 독서광은 많은데 이보다 더 나다운 말이 없을까 고민했다. 책으로 과소비하고, 읽은 책 자랑하려고 SNS에 올리는 행태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감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아서 인류 최초의 ‘과시적 독서가’를 자처하게 됐다. 


Q 매우 솔직한 성격인 것 같다. 또 그 지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된다. 


나는 유쾌하고 즐겁게 이야기 하고 싶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누군가 얘기했을 때 그 생각이 다 맞을 수 없고 거기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유머와 즐거움이 있어야지만 계속 생각의 유연함을 발휘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너무 경직된 자세로 ‘이건 이겁니다’라고 딱 떨어지게 이야기 하면 내가 내 틀에 갇히고, 내 논리에 내가 죽어버린다. 그래서 유머와 재치가 있으면 상대방이 조금 실수해도 너그럽게 받아주는 것 같다. 


Q 책을 읽으며 좋은 아버지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딸과 책 찾기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교육을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무엇이든 가르치려면 같이 하는 게 제일 좋다. 부모가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 자녀도 그게 좋아질 수 있다. “나 엄마처럼 살기 싫어”하면서 싫어질 수도 있지만.(웃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접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그래서 부모님이 책을 꼭 읽지 않더라도 가깝게 지내는 모습만이라도 자주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러면 아이도 책과 친해지고 가까워진다. 


Q 일과 상관없는 주제로 세 권 이상 책을 읽어보라고 했다. 한 분야 안에서 책 고르는 특별 노하우가 있나? 


서점에 가서 검색대가 있는데 거기서 키워드를 치면 된다. 가령 ‘민주주의’를 치면 민주주의에 관련된 책들이 쫙 나온다. 그 중 한 두 권만 위치를 출력해서 그 서가로 가면 관련된 책들이 주변에 있다. 그럼 그 중에 몇 권을 꺼내서 목차를 확인하는 거다. 뭐가 좋은지 모를 때 빨리 결정하는 방법은 몇판 몇쇄인지 보면 된다. 그 중 한 세 권 정도를 사고, 세 권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을 찾는다. 


Q 이 책이 없었다면 지금의 김봉진이 없었다고 할만한 ‘인생책’을 한 권만 꼽아준다면? 


나의 인생책은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님의 <왜 일하는가?>다. 일이 10년 차에 접어들던 해에 내가 왜 일을 해야 하는지 회의감에 빠졌던 시절, 이 책이 던진 ‘일이란 자신을 수련해 나가는 강력한 수련의 도구’라는 메시지가 크게 와 닿았다. 지금 읽으니까 ‘아, 왜 이렇게 빡세게 살아야하지? 회장님 너무 힘들게 사셨구나’라는 사뭇 다른 느낌도 들었다.


(웃음) 이 책을 통해 ‘시간의 힘’, ‘꾸준함의 힘’을 배우게 됐다. 


“생각의 근육 만드는 책...인생 바뀌진 않아도 조금 더 나은 삶 삶게 해” 


Q 한 기업의 CEO로서 많이 바쁠 것 같다. 언제 책을 읽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시간을 억지로 만들지 말고 독서 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들이면 ‘언제 보는지’ 개념이 없어지고 짬짬히 보게 된다. 매일 보진 않더라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잠깐 보고 자기 전에 잠깐 읽기도 한다. 그러다가 책을 읽을 수 있는 긴 시간이 생길 때가 있다. 비행기 타고 출장 갈 때나 주말에 반나절 정도 시간을 쓸 수 있는 날이 오면 미뤄뒀던 긴 호흡의 책들을 꺼내서 읽는다. 


Q 우아한 형제들 입사 면접에서 지원자들이 시나 노래, 문학작품을 통해서 자신을 소개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기억에 남는 자기 소개가 있었나? 


어떤 입사지원자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단편소설을 썼다. “이건 어떤 책이에요? 제목도 없어요?”라고 물었더니 본인이 쓴 거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재미는 별로 없었지만 그 순간 자기가 집중해서 그걸 온전히 써냈다는 게 대단하게 여겨졌다. 이런 류의 자기 소개는 일단 카피해서 붙일 수 없다는 게 좋다. 보통 자기 소개를 해보라고 하면 출생부터 성장과정 가정환경 같은 걸 쓰는데 좀 더 다른 관점에서 자신을 성찰한 글을 보고 싶어서 이런 형식의 자기 소개를 요구하게 됐다. 


Q 책 날개 저자 소개란에 보통은 자신의 직위나 직함을 맨 앞에 쓴다. 오히려 김 대표는 우아한 형제들을 창업하여 배달의 민족이라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부업으로 문장 맨 뒤에 소개했다. 


배달의 민족 때문에 내 삶도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이 배달의 민족 안에 종속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인 김봉진으로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많이 질문한다. 부업이라는 것도 일종의 반어법이다. 사실은 내가 일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싶은 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깊숙이 들어가 있기에 “배달의 민족, 너 거기서 나랑 조금만 떨어져 있을래?” 그런 느낌이랄까?(웃음) 


Q 독서에서 사업 아이디어도 많이 얻나? 


그러고 보니 사업 아이디어는 못 얻었다.(웃음) 나 뭘 한 거지? 열심히 다시 읽어보도록 하겠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나 블록체인 이런 것들에 대한 생각은 책을 통해 얻기는 한다. 


Q 책을 한 마디로 정의 내린다면? 


책은 생각의 근육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운동이 몸의 근육을 만들 듯이 좋은 독서 습관이 생각의 근육을 만든다. 몸의 근육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세계적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것도 아니고 넘어져서 안 다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조금 덜 다치고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그것 때문에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진 않지만 그래도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코스모스>도 <총, 균, 쇠>도 <사피엔스>을 보면 있던 사실을 추스러서 다른 결과를 이야기 한다. 저자의 추론적이고 논리적 사고 방식을 배울 수 있다. 살다가 의사 결정을 할 때 크게 실수할 것을 조금 실수할 수 있지 않을까?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책에 대한 엄숙주의를 내려놓았으면 한다. 모르면 어때? 다 못 읽으면 어때? 읽고 싶으면 읽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다. 사실 책 안 읽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다. 책은 읽다가 안 읽히면 안 읽어도 되고, 순서대로 안 읽어도 되고, 사놓고 안 읽어도 된다. 죄책감 갖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즐겁게 읽었으면 좋겠단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사진 : 임준형(원파인데이스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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