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와 복수

바스터즈, 장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by 돌고래

복수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된다. 타인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차별하는 사회에서 피해를 입었을 때,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약간의 항의가 전부이다. 사법적 절차를 통해 처벌을 가하는 것은 개인이 받은 피해에 대한 반격이라기보다는 큰 충돌 없이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현실에서 온전히 이룰 수 없는 복수의 쾌감은 스크린 속에서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복수가 영화에서 가진 힘을 가장 잘 활용하는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모든 영화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복수가 있다. 대부분의 상영 시간 동안 복수 대상의 악행을 인상적으로 소개하고,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잔혹하면서 유쾌한 결말을 이룬다. 과장스럽게 느껴질 만큼 잔인하게 그려지는 마무리는 관객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복수라는 주제는 다른 영화에서도 흔히 다루지만, 타란티노 영화의 힘은 그 복수를 정당화시켜주는 이야기와 배경에 있다. <테이큰>, <존 윅>과 같은 영화들은 주인공 개인이 당한 피해에 관객을 이입시켜 복수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타란티노 영화의 주인공은 역사적으로 차별받거나 피해를 입은 계층을 대표하거나 실제 피해를 입은 대상을 대신하여 복수를 수행한다. 특히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장고: 분노의 추격자>(2012),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 세 편은 주제의식을 통해 복수를 이뤄내는 장면이 관객에게 거부감보다는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img.jpg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 농장에서 도망쳐 나오는 쇼사나

관객의 공감을 위해서는 복수의 주체가 중요하다. 감독은 세 영화의 첫 장면으로 인물을 소개하며 관객이 복수의 동기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만든다. <바스터즈: 거진 녀석들>에는 알도 레인 중위를 비롯해 나치에 대항하여 싸우는 바스터즈 부대가 등장하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쇼샤나이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게 가족을 몰살당한 쇼사나는 영화적 행운으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 나치 간부들을 학살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낸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한스 란다 대령은 숨 막히는 심문 끝에 농가 밑에 숨어있던 쇼사나의 가족을 몰살한다. 홀로 달려 나오는 쇼사나의 모습을 통해, 관객은 맞서지 못하고 도망가야 했던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의 모습과 쇼사나의 복수에 대한 깊은 동기를 이해하게 된다.

<장고: 분노의 추격자>에서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노예로 살게 되어 갖은 수모를 당해왔던 장고가 주인공이다. 말에 묶여 눈을 헤치며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첫 장면은, 킹 슐츠가 묶여있던 노예들을 풀어주며 조금 전까지 그들을 끌고 다니던 노예상의 처분을 넘기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는 사슬에 묶여있던 역사를 흑인의 손으로 부셔나가는 영화의 주제를 소개하는 것과 같다. 주인공 장고는 이후 자신이 받아온 고통을 백인 범죄자를 하나씩 죽여가며 갚아나간다.


once-upon-a-time-in-hollywood.jpg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의 인터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첫 장면은 릭 달튼의 영화 소개 영상이다. 짧은 영화 장면을 시작으로, 한물간 배우 릭 달튼과 그의 스턴트맨인 클리프 부스 두 사람의 인터뷰 장면이 이어진다. 이는 한 시대와 집단을 대표하여 복수하는 다른 두 영화와 달리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에 집중하며, 복수를 실제 피해자들이 아닌 두 대리인을 통해 이루기 때문이다. 때문에 관객이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을 알고 있다는 가정 하에 사건에 대한 소개는 배제하고, 복수를 수행하기 위한 두 가상 인물을 영화 속의 영화를 통해 소개하며 시작한다. 이어서 비행기에서 내린 샤론 테이트의 걸음과 두 가상 인물의 걸음을 교차하여 보여주며 두 인물이 사건의 피해자, 샤론 테이트의 대리인임을 알려준다. 각 복수의 주체는 이후 상영 시간 동안 직접적인 복수의 대상과 만나기까지 부가적인 사건을 가지지만, 세 영화 모두 전체적인 서사를 인물들의 첫 등장 장면과 마지막의 화려한 복수 장면으로 압축할 수 있다.


마지막 복수는 잔인하지만 유쾌하고, 폭력적이지만 불쾌하지 않다. 악인들은 영화 내에서 행한 악행이 일상으로 그려지기에, 관객이 직접 목격한 악행의 횟수 이상으로 그들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처벌의 잔혹함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이는 각 이야기의 완결로서도 즐거움을 주지만, 열정적인 영화팬인 감독의 입장으로 살펴볼 수도 있다. 타란티노 감독은 할리우드의 모든 영화들을 챙겨보고, 할리우드 밖의 영화들도 즐겨 감상하는 시네필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세 작품에서는 영화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수행하는 복수의 요소도 드러난다.

ibface-thumb-500x213-11053.jpg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 상영되는 쇼사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복수는 영화를 선전 도구로 활용하여 영화의 가치를 훼손한 인물들에게 가해지는 복수이다. 히틀러와 괴벨스는 영화광이었지만, 철저한 검열과 함께 영화를 자신들의 정권을 위한 선전 용도로 격하시킨다. 작중 괴벨스의 걸작으로 소개되며 성대한 상영회를 열어 감상하는 영화는 미군을 상대로 승전한 기록을 다루었지만, 그 구성이라고는 미군을 살육하는 것이 전부이다. 이에 맞서서 쇼사나는 나치를 불태울 유대인으로서 스크린 상에 상영되며 필름을 태워 피운 불로 나치를 가둔다. 저급한 선전 도구로 사용되던 영화가 영화 내에서는 나치에게 고통과 절망을 안기고, 영화 밖의 관객에게는 나치를 웃음거리로 만들며 조롱하는 이중적인 복수를 이룬 것이다.


django-unchained-236.png <장고: 분노의 추격자> - 카우보이 복장의 장고

<장고: 분노의 추격자>는 백인들을 위한 장르인 서부극 속에서 악당으로만 등장해온 유색인종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며 장르에 대한 복수를 수행한다. 전통적인 서부극은 시대적 배경이 배경인만큼, 인디언과 흑인들의 대우가 좋지 않았다. 살육을 즐기는 등의 야만적인 행동으로 악역을 맡거나 등장조차 하지 않아 백인들만의 영웅담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뒤집어 흑인 현상금 사냥꾼이 수십 명의 노예상들과 농장 주인들을 죽이는 모습으로, 편파적이고 차별적이었던 장르를 공격한다.

Once_Upon_a_Time_in_Hollywood-905690065-large.jpg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 자신의 영화를 감상하는 샤론 테이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의 복수는 할리우드에서 비운의 여배우로 남게 된 이를 위한 위로로서의 복수이다. 샤론 테이트는 촉망받는 배우였지만, 찰리 맨슨의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으로 비참하게 삶을 마무리하였다. 배우 개인에 대한 추모와 위로로서, 감독은 할리우드 차원에서 복수를 수행한다. 할리우드를 이루는 두 골칫거리,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의 손을 빌려 사건의 범인들을 철저하게 응징한다. 가상인물을 통해 비극을 덮고 살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게 만들어, 영화 내에서는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영화 밖 관객과 함께 그녀의 죽음을 추모한다.


세 작품 모두 복수라는 굵직한 주제 아래에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화려하고 시원하게 완결된다. 예전부터 타란티노 감독이 10편만 연출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그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 밖에 남지 않았다. 그의 다음 작품이 어떤 주제가 될지는 아직 감독 스스로도 정하지 못한 것 같지만, 다시 한번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통쾌한 복수의 쾌감을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