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글벨, 썰매엔 바퀴가 없지만

바퀴가 있는 삶 ep.3 (by 코리하 라이브)

by 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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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이야기: 징글벨, 썰매엔 바퀴가 없지만


글: 코하


(이 글이 올라갈 땐 정말로) 크리스마스네요.


글을 쓰는 지금은 ‘이제 곧 크리스마스네.’라는 생각 정도지만 막상 이 글이 올라가는 시점은 정확하게 크리스마스가 될 예정이라 글의 몰입도를 위해서라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라던가 기분을 좀 느끼면서 작업을 하고 싶어서 캐롤도 들어보고 하고 있지만 역시 예년 같지는 않습니다.


매년 만나서 밥을 먹고 간단하게 술 한 잔(정말 맥주 한 잔 정도)을 하고 보드 게임을 한다는 핑계로 밤새 잡담만 하던 독거남들의 유서깊은 모임(?)도 올해는 잠정 휴업을 해버렸고, 주변의 많은 학부모님들(리하를 포함한)의 집에 갇힌 채로 업무, 가사, 육아를 이어가야하는 가혹한 일상의 크리스마스 버전도 만만치 않습니다.


모두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아가고 최대의 힘으로 코로나라는 재앙에 대처하고 있지만 그로인해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와 스트레스, 경제적 손실 등은 점점 우리의 일상과 삶을 망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은 아닙니다만.. 코로나로 모두가 어렵고 힘든 요즘이라 그런지 어떤 주제를 이야기하려 해도 그 종착지는 코로나로 귀결되어 버리는 놀라운 글쓰기 경험을 하고 있기도 한지라(위의 문단만 해도 그렇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의식적으로 코로나라는 선택지를 배제하고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오늘은.. 1990년대, 어느 산타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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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218 산타님.”


“아, L1201 난쟁이씨. 무슨 일이죠?”


“저번에 말씀하셨던 근무지 변경신청. 반려되셨어요. 죄송해요.”


“아.. 안되는데.. 말씀드렸잖아요. 제 담당인 K2045 순록씨가 무릎 관절에 염증이 생겨서 대한민국같이 도로사정 안 좋은 나라 다니기가 힘들어요.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얼마나 고생했는지 썰매 블랙박스 영상도 제출했잖아요.”


“알아요. 근데.. 다른 분들도 사정이 거의 비슷하셔서.. 그 이유만으로는 근무지 변경이 어렵다는 판단이에요. 그러지 마시고.. 그냥 차도 이용해서 다니면..”


“아! 진짜! 어제 산타 통합 교육에선 순록분들 폐질환에 스트레스까지 심하게 받는다고 차량 소리 크고 매연 심한 차도 이용은 절대 하지 말라고 지침까지 내렸으면서!! 도대체 어쩌라는 거에요!!”


“그건 맞죠. 아는데..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그렇다고 블럭마다 턱있고, 계단 천지인 대한민국에서 그냥 다니라고 말씀드릴 수도 없구요. 죄송해요. A0218 산타님.”




A0218 산타는 결국 대한민국으로 향하고 그해 크리스마스에 유사 지옥을 경험하게 되죠.(...)

하지만 시간이 흘러 2020년, A0218 산타님은 또 다른 의미의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A0218 산타님.”


“아, L3306 난쟁이씨. 무슨 일이죠?”


“저번에 말씀하셨던 근무지 변경신청. 승인되셨어요!”


“응? 근무지 변경신청이요?”


“네. 기억 안나세요? 음.. 기록을 보면.. 아하! 기억 안나실만 하네요. 그런데 근무지 변경신청하셨었어요. 1990년대에..”


“아.. 그거.. 엥? 그걸 이제 승인해준다구요? 30년 가까이 지나서?”


“네. 오늘 날짜로 승인되셨어요.”


“허.. 진짜. 운영위원회 이 잡것들을 그냥!!”


“에?.. 왜 그러시죠?”


“대한민국 도로 상태 거지같았던 그 시절 다 견디고 이제 편의시설도 늘고 도로사정도 좋아져서 고작 몇년 꿀빨고 있는데.. 이걸 변경한다고?”




A0218 산타님은 대노하여 근무지 변경 무효 신청을 내고 투쟁에 들어갑니다. 물론 운영위원회에선 유효한 근무지 변경 신청이었다며 이를 기각하고, A0218 산타님의 근무태만(사측에 대한 개인의 투쟁으로 인한 근무 불성실)을 이유로 징계를 내리면서 헬 게이트가 열리고, 그 이후로 많은 일들이 벌어지긴 합니다만.. 일단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요지는 과거의 어떤 지점보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도로사정, 편의시설 사정이 많이 좋아져서 일반적인 보도를 다닐 때 도보로 다니든, 바퀴가 있는 탈것을 타든, 아니면 산타의 징글벨 썰매를 타든.. 꽤나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 완전한 건 아닙니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커서 지방으로 갈수록 바퀴가 있는 삶을 사는데 움직임을 제한 받을 수 밖에 없고, 서울에서도 보도가 지나치게 좁거나, 보도 한 가운데에 가로수나 장애물이 자리하고 있어 보도를 이용하지 못하고 차도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어요. 제가 비교적 편리해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또 다른 바퀴가 있는 삶을 사는 누군가는 1%도 동의하지 않을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A0218 산타님이 투쟁까지 하며 근무지 변경 무효를 주장할 만큼 대한민국의 길이 많이 좋아졌다는 것은 가상이지만 사실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 상위 10%안에 들만큼 말이죠. 그렇게 우리는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내년 크리스마스엔 좀 더 많은 산타분들이 대한민국 근무를 희망할 정도로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내년엔 지금보다 더 나은 크리스마스이길, 그리고 매년 그 기록이 갱신되는 크리스마스이길 바라며..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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