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가 있는 삶 ep.4 (by 코리하 라이브)
네번째 이야기: 진상으로 사는 법
글: 코하
연말입니다. 이 글이 올라갈 즈음엔 이미 새해긴 하겠습니다만..
어쨌든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아직 2020년이네요.
많은 분들이 비슷한 감정이겠지만 연말같지 않은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특히 아쉬운 것은 가장 큰 취미생활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연말이라는 것입니다. 최애 아이돌 혹은 그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원래 콘서트도 좋아하고 뮤지컬이나 연극 관람도 좋아하고 e스포츠 관람도 즐기는 입장에서 이번 연말은 너무 가혹하기만 합니다.
내 취미 생활, 내 힐링 수단, 내 스타들을 돌려줘! 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어쨌든 시국이 시국이고, 온 지구가 함께 겪고 있는 불행이니까요.
하지만 그러는 한편, 올해는 그 덕에 진상은 안됐잖아. 라는 안도감도 있습니다.
바퀴가 있는 삶을 살면서 공연 등을 관람하려면 꽤 자주 현실의 벽과 마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제겐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얌전히 관람을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할 것인지, 아니면 진상이 되어서라도 그 공연을 관람할 것인지 말입니다. 애초에 물리적인 환경자체가 조성되지 않았다면(너무 작은 규모의 소극장이거나 해서 아예 휠체어의 입장 자체가 불가능 하거나) 모르겠지만, 해당 현실의 벽이 시스템적인 문제거나 공연기획사에서 휠체어석에 대한 상식이 부족해 일어난 일이라면 후자를 택해서라도 공연을 보러가는 편이라.. 저는 꽤 자주 진상이 되곤 합니다.
이럴경우 프로세스는 대충 이렇습니다.
1. 해당 공연에서 휠체어석 혹은 장애인석에 대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그 내용이 미비할 경우 그에 대한 문의를 공연기획사 혹은 그 공연의 운영 주체에게 문의하고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도 알아봅니다.
2. 해당 주체에서 개선할 의지가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개선할 의지가 없다면, 그에 대해 다시 한 번 검증하고 그것이 해당 운영 주체의 공식적인 입장인지도 알아봅니다.
3. 필요하다면 각종 커뮤니티에 알리거나 언론사를 통해 제보하여 해당 공연이 좀 더 휠체어 혹은 장애인에게 친화적인 공연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합니다.
4. 2의 항목에서 이미 개선할 의지가 있었거나, 혹은 3의 과정을 거쳐서 개선할 의지가 있는 공연에 대해선 후속조치에 대해 해당 공연주체에서 마련한 공식 입장을 듣고 그 내용을 이후 이용할지 모를 다른 장애인분들을 위해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알립니다.
5. 하지만 많은 경우 이정도 프로세스를 겪어도 전혀 고쳐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6. 그 와중에 꽤 많은 욕을 먹을 각오를 하면 좋습니다.
요 내용을 그림으로 쉽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매번 이런 프로세스를 겪다보니 이젠 조금 지친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일겁니다. 올해는 진상은 안됐으니 그것도 좋다는 안도감이 드는 이유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기분일 뿐이고 모든 상황에 있어서도 극히 일부의 감상일 뿐입니다. 휠체어석, 혹은 장애인석에 대해 업체, 휠체어석을 찬성하는 혹은 반대하는 일반인, 그리고 장애인이 느끼는 감정은 각자 다를 겁니다.
업체는 장애인들이 자주 찾지도 않는데 괜히 작게는 2석 많게는 10여석을 빼야하니 그 상황이 탐탁치 않을 것이고, 그 외에 해당 좌석까지의 휠체어 접근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까지 더해지면 더욱 골치아픈 좌석, 만들고 싶진 않지만 만들어 놓지 않으면 욕먹기는 딱 좋은 계륵과 같은 공간으로 여겨질 겁니다.
휠체어석을 찬성하는 일반인 분들이야 휠체어석이나 장애인석의 필요성을 공감해주시고 제가 매번 진상짓을 할 때마다 함께 목소리를 내어 도와주시는 분들이니 그 자리를 사용해야 하는 장애인들과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만.. 그런 휠체어석이 왜 필요한지 모르는 일반인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휠체어석의 필요성을 모르는 일반인의 경우 대부분 장애인 석이 또 다른 역차별이 아니랴고 반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위의 스크린 샷은 제가 어떤 공연(경기)의 휠체어석 정책에 대해 클레임을 걸었고 해당 공연 주체에서 휠체어석에 대해 정책을 바꿔주셔서 그 내용을 커뮤니티에 알렸을 때, 실제 받았던 댓글 중 하나의 스크린 샷입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가장 많이 받는 글이 이러한 글이기도 하고 해당 내용을 여과없이 전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해당 댓글의 내용만 스크린 샷으로 만들어 붙입니다. 해당 내용의 작성자는 커뮤니티 특성상 익명으로 알 수 없으며 이 스크린 샷을 올리는 이유는 평소 이런 상황을 겪을 경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일 뿐, 해당 작성자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님을 밝힙니다.)
네. 휠체어석은 특혜로 보인다는 거지요. 티켓팅이 상대적으로 쉽고, 꽤 많은 경우 장애인 본인과 동행자(보호자)까지 꽤 큰 폭의 할인을 해주며,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장애인들의 생각, 아니 제가 모든 휠체어 장애인을 대표할 순 없으니 일개 공연 관람을 좋아하고 자주 다니는 제 생각을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연 관람에 있어 티켓팅 경쟁을 해도 좋습니다. 할인을 해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그렇게 티켓팅을 통한 자리에 마땅히 앉아 공연을 관람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 휠체어석이 존재하지 않을 때, 스탠딩석을 예매해서 갔다가 휠체어가 전복되어 죽을 뻔한 경험이 있고, 그 후에 다시 일반석을 예매해서 갔다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공연을 즐기시는 덕에 다른 사람들의 엉덩이만 실컷 보고 돌아온 경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휠체어석이 생긴다면 이런일은 사라지겠거니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 휠체어석이 존재한다고 해도 항상 환영할 수 없습니다. 휠체어석이 사실상 공연을 제대로 보기 힘든 시야 사각석인 경우가 많고, 혹은 공연장의 맨 뒤에 그냥 형식적으로 만들어놓은 자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 때문인지 많은 경우 휠체어석은 큰 폭의 할인을 해주긴 합니다만 차라리 이럴거면 제값 낼테니 제대로 된 자리를 달라고 말하고 싶은 때가 한 둘이 아닙니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양반입니다. 가끔은 할인도 없는 상황에서 표값은 가장 비싼 자리의 표값을 받지만 실제 좌석은 가장 싼자리의 (보통 가장 뒷자리에 자리를 배정하다보니) 좌석과 같은 포지션에 휠체어석이 잡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때로는 휠체어석이 만석이라고 해서 해당 공연 상황을 살펴보면 그 자리에 휠체어는 없고 업체 관계자나 공연 관계자들이 앉아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되는 그런 자리가 휠체어석입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많은 장애인 분들이 공연을 찾았다가 이런 좌석과 공연에 실망하여 다시 공연을 찾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그 덕에 휠체어석은 점점 경쟁이 없는 무주공산의 자리가 되는 것일지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도 듭니다.
애초에 전체 수백 혹은 수천석의 자리 중에 고작 2자리에서 많아야 10자리 남짓하게 있는 휠체어석을 두고 대다수의 장애인들이 경쟁해야하는 겁니다. 물론 현실은 그 자리를 찾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티켓팅 성공률이 말도 못하게 높은 자리가 됩니다만 애초에 경쟁률로 따진다면 더 티켓팅하기 어려운 자리가 되어야 정상인 자리가 휠체어석일 겁니다.
올해는 다행히(?) 이런 진상은 되지 않고 한해를 마무리 했습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너무 자주는 말고) 가끔 진상이 되어도 좋으니 모든 사람들이 공연을 찾고 즐기고 좋아하는 것을 향유할 수 있는 한해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모두 지인들을 만나는데 제약이 없고, 취미 생활하는데 난관이 없으며, 무엇보다 함께 모여 웃을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