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금 그 행동(혹은 말, 혹은 생각), 너답지 않아.”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나이가 이미 불혹이 지난지 오래됐음에도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는 사실에 대해, 과연 이걸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해야할지 부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어쨌거나 이 경우 난 아직 나다운 게 뭔지 나라는 사람이 나 답다는 기준을 확실하게 정립한 것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나 다운게 뭔데? 난 어떤 사람인데? 라는 의문들 말이죠. 그래서 좀 더 나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다운게 항상 옳은 건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나는 고등학교 입학식날 자퇴권유를 받았습니다.
해당 고등학교 전체에서 유일하게 휠체어를 탔던 나는 휠체어 편의시설이 전무했던 그 당시의 고등학교에 계속 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때 나라는 사람에게 장애를 이유로 한 자퇴권유는 ‘세상이 더 이상 나라는 존재를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선고’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당연하게도(?) 나라는 사람은 그리 강한 사람이 못되기에 꽤 오랜 기간 절망했으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야할 이유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꽤 오랫동안 나는 더 살아내기 위한 이유로써의 ‘나’를 찾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20대 초반의 나는 치열하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또한 남들과 구분이 되는 내가 중요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남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우위가 있는 내가 무엇보다 절실했습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다른 누군가에 비교해도 세상에서 받아들여질 나만의 무언가가 누구보다 절실하게 필요했기에 나는 장애를 가진, 바퀴가 있는 삶을 사는 나다운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내 모든 시간을 다 투여해서라도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얻어내거나, 휠체어를 타지만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라는 평을 얻기 위해 매 순간 무리한다거나, 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무식한 방식으로 '나다운 것'들을 만들어 냈고, 지속적으로 보완했습니다.
그것은 조금씩 내 개성으로 받아들여졌고, 내 재능으로 비춰졌으며, 내 성격을 일부를 이루었고, 내 일상의 중심이었으며, 내 능력으로 세상에 조금씩 인정받을 근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남들과 구분되어지는, 남들과 비교 우위가 있는 나 자신에 대해 만족했고, 그것이 나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그동안 나는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CEO로 작은 성공을 맛보기도 했고, 그 사업이 실패하여 큰 실패를 견뎌야만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세상에서 가장 사람좋은 사람인양 너그러운 삶을 살기도 했고, 어떤 날은 세상에서 가장 속좁은 찌질이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난 언제나 나다웠으며 한순간도 나다운 나를 놓지 못했습니다.
난 바퀴가 있는 삶을 잘 통제하며 살아내는 장애인이자
기획이란 업무에서 전문적인 능력을 인정받는 사회인이었고
매일 찾아오는 고통을 의연하게 대처하고 이겨내는 환자이자
주변사람들에게 받는 평판이 좋은 쪽인 경우가 좀 더 많은 좋은 지인이었습니다.
난 그 포지셔닝에 만족했으며 나다운 나로 살기위해 많은 노력을 더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후회되는 지점들이 너무 많습니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어야만 하는 순간들.
나답게 살기 위해서 명백한 현실의 이익을 버리고 허울뿐인 이상만을 쫓던 순간들.
그로 인해 발생한 나의 실패와 내 주변 사람들의 고통들.
여전히 내게 나답게 사는 것은 중요합니다. 나라는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이자 나를 다른 누군가와 구분지어질 수 있게 만드는 기준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나답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그때 내가 알았더라면 지금 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나답게 살기 위해 나를 옥죄고 나를 괴롭히며 내게 수없는 자기검열을 하며 살았던 순간들의 내가 있습니다. 어떤 한 순간에 나답게 살기 위해 부렸던 오기라던가, 허세라던가, 억지라던가, 자존심같은 것들이 가끔은 나를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잘살기까지 하겠다고 더더욱 나를 몰아붙였던 순간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조차도 유능한 나로 살기 위해서 필요한 장식 같은 것였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목표를 이뤄야 한다는 핑계로 그 당시의 행복을 (허상일수도 있는) 미래의 가치를 위해 버리거나 내 알량한 판단으로 주변의 사람들에게 막대한 부담을 지우는 일을 거리낌없이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결국 그 모든 시도가 실패하고 지금은 남은 것이 없는 초라한 사람이라 이런 정신승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의 나는 차라리 그때, 나를 잠시 놓아버리더라도 지켜야할 중요한 가치(그때 그때 다르지만 적어도 나다운 나를 지키기 위한 것보단 더 중요한 나와 내 주변, 혹은 사회를 위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올해엔 나답게, 잘 사는 것보다.. 가끔 나 답지 않아도 사람답게 제대로 사는 것을 목표로 살아보고 싶어졌습니다. 갑자기 철들면 위험하다고 하던데.. 걱정이 잠시 들기도 합니다만, 올해엔 이 대한민국에 좀 더 괜찮은 사람(인간으로든, 어른으로든)이 한 명쯤 더 늘어있는 것도 좋은 변화라면 변화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