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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하 Mar 05. 2021

컴퓨터씨가 사망했습니다.

바퀴가 있는 삶 ep.13 (by 코리하 라이브)

열 세 번째 이야기: 컴퓨터씨가 사망했습니다.

글: 코하

얼마전부터 불안하긴 했는데..
가끔씩 화면이 멈추고 뻗어버려서 불안하다 하긴 했는데..
8년 넘게 써온 데스크탑이다 보니.. '세월의 흐름에 점점 버벅대나보다’ 정도의 감상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죠.

그 시점에서 비극은 예정되었습니다.

트러블이 많았던 것은 아닙니다.
고작 세 번이었어요. 그럼에도 컴퓨터가 갑작스레 뻗은 건..
고작 네번째가 마지막일 줄 모르고 안일하게 판단했던 제탓이죠.

그렇게 나와 8년을 동거동락했던 데스크탑 컴퓨터씨께서 사망하셨습니다. 원인은 메인 OS가 설치된 SSD 드라이브의 사망(물리)으로 추정됩니다.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큰 고장은 아니라 SSD드라이브를 교체하고 윈도우즈를 재설치하면 멀쩡해질 거라 판단됩니다만.. 뭔가 귀찮기도 하고 급하게 수리할 필요는 없다 싶어서 당분간 수리를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무엇보다 8년이나 썼으니 이제 슬슬 새 데스크탑으로 교체할 시기가 됐다는 판단도 한몫했습니다. 사실 사망하기 전에도 그렇게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었거든요. 슬슬 성능쪽으로 불만이 생길 시기기도 했구요.

그러고 보니 데스크탑 컴퓨터가 사망했고, 그 덕에 추가 지출이 어떻게든 필요하다는 부담 외엔 꽤나 덤덤하게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정도면 호상이라고 봐야 할까요?

과거의 코하였다면 이 상황에서 여유를 가지긴 어려웠을 겁니다.
대부분의 자료는 데스크탑 안에 함께 잠들어 있을 상황에 당장 데스크탑으로 해야할 일이 있기에 데탑을 수리해야하네마네, 빨리 디스크를 복구서비스 받아야 하네마네, 수많은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고, 이 상황을 어떻게 별일 없이 지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했을 겁니다. (실제로 코하는 과거 중요한 업무용 하드다스크만 세번을 날려먹었던 탓에 현재 남아있는 포트폴리오가 거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어설펐던 코하와는 달리 지금의 코하라는 사람은 하드만 수십번 날려먹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입니다. 이미 코하는 대부분의 최신자료들은 업무용 접근성까지 고려하여 구글드라이브, 원드라이브와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로 분산하여 저장해놓은 상태이고, 메인 SSD외의 다른 부품은 멀쩡한 게 맞다면, 과거 자료나 포트폴리오를 백업해놓은 하드디스크 같은 것은 나중에 확인해봐도 될 정도로 당장엔 큰 무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데탑 혹은 노트북이 없어도 충분히 작업 가능한 환경이 나올   수 있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덕에 당장 데탑까지 필요한 무거운 작업이 없는 한 데탑을 수리 받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잘 버티다가 데탑 한대를 구입할 여유가 생길 때, 차라리 컴퓨터 교체를 해보자라는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어요.


어쨌든 과거와 비교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평온하게 데탑이 사라진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없으면 큰일날 거 같았는데.. 데탑이 사라져도 내 세상은 전혀 변한 게 없어.. 이게 인생인가? 라는 비생산적인 순간 들기도 했을 정도로요.


일상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그간 데스크탑 컴퓨터로 해왔던 작업을 태블릿과 모바일용 오피스 프로그램과 태블릿용 블루투스 키보드같은 보조 장비로 메꾸고 있다는 정도입니다. 자료의 손실도 없었고, 오히려 어디서나 작업이 가능한 클라우드의 위대함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과거의 경험에서 컴퓨터를 사망시키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더더욱 큰 손실을 보고 했던 것이, 경험이 되어 이번에는 불행을 맛보지 않고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가장 좋은 시나리오였을 컴퓨터씨의 사망은 막지 못했습니다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비슷한 환경을 구축하고 작업할 수 있었으니까요.

 

결국 돌고 돌아 꼰대같은 이야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뭔가에 대해 큰 피해를 보거나 실패를 했던 경험은 말이죠. 물론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편차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실패의 경험에서 배우고 성장하여 여기까지 온 인간들이니까요.


오늘은 컴퓨터씨가 사망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 별일없이 살고 있습니다. 아마 몇달쯤 지나면 새로운 컴퓨터씨를 찾아 다른 작업을 하며 살아가겠죠. 그래도 위안이라면 그 와중에 업무에는 큰 태클 없이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상황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나라는 사람이 과거와 비교하여 조금은 성장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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