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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Feb 13. 2019

그의 죽음을 결제하던 날

마지막엔 다 함께여서 다행이었... 지. 이제서야 봤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산을 오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발 밑에서 진짜 삶은, 멀어지고 있었던 거지.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갔어...'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를 이성적으로 진정시키면서도, 내 심장은 이성적이지 못했다. 야근하던 그이를 집으로 급소환 시킨 후,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들을 맡겨놓고 바로 친정으로 달려갔다. 식탁 위에 정종 한 병. 그리고 여윈 얼굴의 창백한 사진 한 장이 액자에 담겨 있었다. 영정 사진을 매만지며 시뻘건 눈을 하고서는 내내 눈물만 뚝뚝 흘리는 엄마가 나를 쳐다보았을 때. 분당에서 인천까지 오는 내내 잠시 가라앉았던 심장은 다시 미치듯이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큰삼촌이 죽었다.

사망진단서엔 2월 8일이라는 날짜가 박혀 있었다. 약 4일이 지난 이후 경찰서를 통해서 가족 수소문이 되었다고 했다. 독거사였다. 부패가 될 대로 된 시체는 이미 영안실에 비치되어 있었고 부모님은 근 1년간 연락 없이 지낸 큰삼촌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경찰의 전화를 받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6만 6천 원과 폴더폰

수중에 그가 남긴 재산의 전부는 다 구겨진 비닐봉지 안에 담겨 아빠 손에 쥐어졌다고 했다.



- 장례식 안 치르기로 했어. 올 사람도 없고. 그 큰 방 빌려서 뭐해. 돈 낭비 시간 낭비지..

- 응 엄마... 잘했어.

- 꿈에 나타났었어. 너네 집 다녀오고 설 전에. 신수가 훤했어. 생전 꿈에 안 나오는 녀석이...

-....

- 그 날 죽었나 봐. 누나 나 괜찮아. 이랬었어. 나 이제 안심하라고 그랬나 봐...

- 엄마..

- 길에서 깡마른 사람 보면 니 삼촌인 줄 알고 달려가서 확인하고 그랬어...

-... 잘 가셨을 거야. 더 이상 뭘 어떻게 해. 엄마 그만큼 이면 최선을 다 했어...

- 이제 안 그래도 된대...

- 엄마...

- 내일 화장만 시키면 돼.. 할 일 많이 없어..

- 응...



사진 속 삼촌은 말없이 우리 둘을 보고 있었다.

우리가 그를 쳐다보는 게 아니라, 그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음날 아침 9시. 우리 네 명은 그를 보러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보통 입관 전 염이라는 걸 한다지만 시신이 워낙 부패했던 지라, 우리들은 삼촌의 몸에 수의가 입혀지는 과정을 볼 수 없었다. 다만 음식물과 토사물이 섞인 듯한 썩은 냄새와 소독약과 뒤죽박죽 섞여서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묘하게 비릿한 향기만이 온 공간을 점령하고 있었다.



묻히거나 태워지기 전까지는 시신의 귀는 열려 있다고 했다.  

그러니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병원 관계자의 말에 우리 네 식구는 모두 머뭇거렸다. 한참을 조용하게 우리는 서서 관을 내려다보았다. 원망과 미움, 슬픔과 분노. 죄스러움과 미안함. 생과 사의 경계 속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 모든 감정들이 순식간에 밀려왔던 걸까. 엄마는 결국 관을 매만지며 눈물을 토해냈다. 생전에 자식 하나 없던 큰삼촌은 엄마의 자식들인 나와 남동생을 유난히 예뻐했었다. 왼쪽 팔에 완장을 채우며 눈물이라곤 여간 해서 흘리지 않던 그 강단 있는 남동생이 결국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례차례...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른손으로 관을 매만지며 말을 떼기 시작했다. 손이 이상하게 떨렸다. 그건, 공간이 너무 추워서도, 비릿한 냄새 때문에 오한이 들어서도 아니었다. 그 옛날 삼촌이 나를 엎고 한쪽 손으론 동생 손을 잡아 주었던, 25년 전 사진 속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생각이 나서..



언젠가 그가 오밤중에 약간 술에 취한 채 집으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엄마한테 혼이 나면서도, 삼촌은 나와 남동생을 바라보며 먹으라고  다 식은 튀김과 햄버거 몇십 개가 들어있는 검은 봉지를 쥐어 주었다. 그렇게 활짝 웃던 그 얼굴이 생각이 나서... 떨리던 손은 결국 눈물로 흘러 터지고 말았다. 말을 약간 더듬었던 삼촌의 목소리는 이제 들을 수가 없음에도, 그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함에도. 그 사실을 알면서도 새치 혀는 마음과 달리 어느새 모진 말을 내뱉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철이... 없다.



-... 왜 그렇게 우리 엄마 힘들게 했어. 그래서 난.. 안 울 거야. 미안해... 나 엎어주고 빵 사주고 가끔 말 더듬으면서도 안부 물어봐 주던 거. 다 잊을 거야...아이 낳은 건 알아? 쌍둥이 낳았다고 보러 오라고 했는대도 코빼기도 안 보인 삼촌 미워서... 더 잘 살 거야.. 더...



잘 가고 있기를. 삼촌 이젠 좋은 길로 가야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랬으면 좋겠다.




기다란 검은색 리무진 차에 관이 실렸다.

그리고 화장터로 갔다. 누구 한 명 정신 차리고 절차를 처리해야 했다. 그의 죽음을 앞에 두고 나는 아빠를 도와 장례식 전반을 처리하는 메인이 되어 움직였다. 그러면서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아직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들까지 전부 다. 슬픔이라는 감정에 매몰된 대상들을 위한 또 하나의 어떤 돈 장사들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의 알 길 없이 거품 가득한 그 장례 문화를. 너무나도 감성적이고 눈물이 많은 울보인 내게, 삼촌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가져내야 할 최대의 무기를.. 마지막에 선물해 준 걸까 싶었다. 감성 보단 이성을. 그렇게 더 다부지게 살아가라고..



오후 1시. 그의 관이 10번이라는 숫자가 달린, 동굴 같은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철문이 닫히고, 엄마는 한바탕 오열했다. 그리고 몇십 분이 지났을까. 그녀를 억지로 끌고 가서 의자에 앉힌 후 나는 식권을 사서 식구들 밥을 챙겼다. 고무장갑 끼어진 채 대충 휙휙 떠 담긴 해장국은 보기에도 맛이 없었다. 그래도 먹여야 했기에 나는 그녀에게 밥이 말아진 해장국을 들이밀었다.



- 2시간 걸린대 엄마... 빈 속에 술만 먹었잖아.

- 머리 아파..

- 집에 가서 약국 가자...




밥을 먹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10번 관이 나오기까지.

그렇게 2시간이 지나고 장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10번 화장이 완료되었습니다. 유골함을 가지고 수족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하얀색..... 뼈가 보였다. 바깥에선 마스크를 쓴 남자가 그것을 쓸어 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준비한 유골함 안에 삼촌을 담고 납골당으로 향했다.



평온당 3층. 10-3. 08883호.

살아 생전 남루한 방 한칸도 없어서 절절 매던 삼촌이었다고 했다. 죽어서야 로열동 로열층에, 3층 정중앙. 누가뭐래도 참 좋은 그곳에 유골함을 내려 놓았던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다 발걸음을 떼었다. 마지막으로 유골함에 손을 대 보았던 나는 흠칫 했다. 뜨거웠어서... 막 가루가 된 하얀 뼛가루가 담긴 유골함엔 뜨거운 온기가 남아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 처럼.  



519만 원.

영안실 안치 시신 수습 비용 340만원. 30년 안치 관리 납골당비 125만원과 유골함 8만원. 화장비용 16만원. 삼촌의 마지막 공간이었던 월세 주인에게 송금한 현금 30만원까지... 결제는 끝났지만 마음에선 아직 결제되지 못한, 남아있는 것들이 있었다.



남겨진 사람들의 그를 향한 기억은, 죽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일상으로 복귀한 지 하루가 지났지만, 그를 보내주기 위해 최소한 네 사람은 앞으로도 얼마 동안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살아생전 그의 뒷수발을 모두 도맡았던 엄마와 아빠, 못난 삼촌이었어도 좋아라고 따라준 남동생, 그리고... 엄마의 아픈 손가락 중 한 사람이었던 삼촌에 대한 미움으로 괜히 쌀쌀맞게 굴었던 철없던 나... 바보 같은..... 정말이지 바보 같이 굴었던 나...



하루가 지나서야.

눈물이 흐른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밥을 먹다가, 화장실에 가다가. 엄마와 전화를 하다가.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 때문에. 적잖은 고통을 마음에 담고..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겨준 소중한 선물을 간직하며. '죽음' 과 더 가까워진 것만 같은. 그런 하루가 지금 지나가고 있다..



이젠 외롭지 않기를. 아프지도 말고. 힘들어 하지도 말고... 많이 웃기를.... 부디 그러 하기를....



사진을 가지고 있었어. 한 장 줄 걸 그랬다.. 그럼 덜 외로웠을 텐데. 미안해....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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