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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01. 2021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포도주나 한 잔 더 주게,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니


- 페르난두 페소아, 병보다 지독한 병이 있다 중 -




사각 가나슈 산딸기 케이크 33,000원.

제과점에서 계산을 하면서도 '미워'를 연발하는 둘째 아이를 견디지 못했다. 신년 맞이 겸 곧 다가오는 아이들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휴일에 미리 촛불을 켜기로 했던 어른의 생각이 화근이었던 걸까. 아니면 내내 양보만 하는 첫째 아이의 선택을 무시하고 이번에도 둘째 아이의 성화에 모면하듯 곧이곧대로 따라줘야 했던 걸까.



밀어닥쳐오려는 '분'이라는 감정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기어코 들리는 목소리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엄마 나는 이것도 괜찮아'라고 또 양보를 하려는 첫째의 목소리와 '이게 왜 안되냐고'를 연발하는 둘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계산을 마치고 일단 장소를 벗어나기 위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면서도 내내 조악한 어떤 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하며 순식간에 문장이 툭툭 뇌리에 박히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대적할 만한 해독제가 필요하다고. 더 이상 군림하게 내버려 둘 수 없다고. 나는 그의 엄마니까.

그런데 엄마라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생각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내 인내하며 감정을 누르고 그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인간, 아이 앞에서 참지 않으면 짐승 같은 어른이를 시전 하게 될지 모른다는 걸 아는 상식적이고 양심적이고 나름 사랑하려 애쓰는 인간. 그러나 그런 노력도 통하지 않게 되는 상황과 맞닥뜨리면 애를 태우며 달래다가도 화를 내고 윽박지르기가 '더' 상대적으로 수월한 인간. 집 안의 존재들을 살리기 위해 대신 자신의 감정은 내내 억누르다 기어코 터지기 쉬운 인간. 만약 그리 정의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엄마가 맞는 것인가, 그렇지 엄마지.. 내가 그의 엄마였지. 왜, 도대체 그런데 왜.



예고하고 치는 파도가 없는 것처럼... 도무지 가만있지 않는 파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린다.



오밀조밀한 생각이 꽉 찬 밀도로 밀려오려 할 때 구원 타자가 나섰다. 아빠는 위대했다. 일단 후퇴.

엄마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다정한 - 화를 잘 내지 않는,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에 속하는 - 아빠의 말은 그에게 통했다. 아이의 소란스러운 목소리는 데시벨을 조금씩 낮추기 시작했다. 끊김은 없었지만. 듣기 싫은 주파수가 제발 끊기기를 바랐지만.



'다정한 엄마로 살기'라는 호기로운 신년 목표는 첫날부터 '실패'라고 생각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분명 '우리'는 아침에 웃었었는데. 심지어 아침을 먹으며 다정한 농담과 대화를 건넸던 '우리' 였는데. 그리하여 이 시작은 좋았고 오늘도 좋게 흐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거봐, 그럴 줄 알았지. 오래 못 가'라고. 케이크가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새해 첫날, 몇 번을 둘째 아이에게 부탁하며 우리는 약속했었다.

잘 지내보자고. 잘 부탁한다고. 더 잘하겠다고. 서로 더 그래 보자고. 올해의 생일 케이크는 1분 형에게 양보해주면 고맙겠다고. 나의 문장은 구렁이 담 타듯 '설득'과 '부탁'이라는 걸 연신 해내고 있었지만 그 시각, 그의 입으로는 '체리마루'가 들어가고 있었다. 듣는 건지 흘리는 건지 아마 후자가 대부분이겠지만 연신 입으로 들어가는 달콤함에 취하여 가족의 부탁은 뒷전이었게다. 나름의 반복학습효과를 기대했던 누군가의 애원은 목소리에 실려 그렇게 신신당부라는 걸 했음에도.



파도는 그래도 조용해진다. 언젠가는.....



아직 멀었다는 걸, 나는 '아직' 몰랐고 그래서 나는 내가 여전히 견디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자책했다.

자책이라는 감정 전에는 '억울'과 '분노'라는 감정이 선발투수로 나서 주었고, '신년'이라는 이벤트적 날짜는 그냥 숫자로 그치면 좋았을 것을, '신년부터 도대체 왜'라는 문장은 급기야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덮쳐진 나는 변했고 짧은 전투는 늘 그랬던 것처럼 짧고 굵게 끝났다. 누군가의 마음에 큰 상처와 잔흔을 남긴 채로. 다행히 몇 분 지나지 않아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요청사항의 수락' 이 이뤄지자 그제야 생긋 웃는 둘째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잠시 현기증과 체기가 밀려오고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야 울지 마시라.'는 어른의 목소리가.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건 그이가 말해줘야 알 수 있었다.



치유할 길이 없는 어떤 상처가 무한 반복 버튼처럼 쌓일수록, 조악한 생각은 자꾸만 밀려온다.

공식 육아 20년을 지내면 1년 아니 무기한 안식년을 '혼자' 가질 거라고. 벗어날 것이라고. 최소한 '너'로부터 '나'를 제대로 지킬 것이라고. 너를 지키기 위해 나를 지우고 누르는 걸 더 이상 스스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편 어떤 잔인한 복수도 때로 허하겠노라고. 아무 말 없이 홀연히 떠나버리면 너는 어떤 상처를 받게 될까. 이런 극악무도한 생각'도' 할 수 있는 인간이 너의 엄마라니... 자격이 없다 생각하면서 나는 어떤 자격을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 인간... 그런 생각조차 견디는 인간.



아이를 견뎌야 한다. 그래야 이 시절이 무사히 지나간다.  

자신들이 만들어 낸 '자식'이라는 생의 '결과물' 들에 '책임' 지는 '어른'이라면. 인도애적 사랑으로 보살피려 대신 개인의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려는 '어른 가족 구성원'이라면. 한 번쯤 진지하게 '견디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비책을 각자 요구받을지도 모른다. 벌써 작년. (벌써라니) 둘째와의 5세 시절, 하루 걸러 그 생각이 끊이지 않은 나는 그러나 묘수는 없고 다만 '그냥 견딘다'는 나름의 답만을 두둥실 떠올려낸다. 그리곤 흘린 눈물을 닦으며 우리의 '시작' 이 이렇게 망치지 않기를 바라며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다행히 웃고 있었다. 아무 일 없었듯이. 그 '아무 일 없었다'는 태도에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우리 사이엔 아무 일이 없었다고 생각해야 때로 살아지는 것이 있기 마련.



그래도.. 피어나는 것들을 생각한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피어나는 것들.



'어떤 사람도 상대방을 완전히 정확하게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문장을 따라 적었다.

그 세밀하고 우아한 문장으로 담긴 책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명심하기로 했다. 진지하게. '우리'의 '시작'을 망치지 않기 위해.



'혼자네. 자 어서 나를 읽어. 그리고 그 시간을 즐겨. 그렇게 치료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래야 정상이 되어 '우리'로 살 수 있으니.



그리고 바다는 다시 조용해진다... 시간이 흐르면. 그게 인생이라, 별 게 없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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