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헤븐 Jan 11. 2021

빵을 구우며 생각한 것들

발버둥 쳐 본 사람이 아니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발버둥 치고 발버둥 쳐서 조금 창피 당한들. 


- 해피 해피 브레드 中 - 





바야흐로 집콕 시대. 심지어 퇴사 후 전업주부.

출산을 제외하고 인생에서 꽤 큰 변화였던 지난 일 년. 신생아 초기 육아는 그럼에도 돌아갈 '회사'가 있다는 나름의 희망(?) 하에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못난 생각일지 모르나) 그러나 이제 상황은 확실히 달라졌다는 걸 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집콕 생활'을 할지 종잡을 수 없는 상태에서 나는 바뀌어야 했다.  '집에서도 행복할 것, 집에서도 '일'을 할 것'을 다짐하며 순리에 맞춰 순응하듯 시간을 흐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제빵사'가 되어 있었다. 맙소사. 이젠 빵까지 집에서 굽다니.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가사노동은 더 늘어났지만 이상하게 그게 '노동'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재밌었다. 청소도 요리도, 심지어 빵을 굽기까지도. 모든 시간이 다. 물론 그 행위들이 엄밀히 따지자면 '일'의 영역에 속하지만 분명한 건 그것이 자초한 '일' 이기에 '재미'라든지 '보람'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오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에게 돈은 받지만 '노역'과 비슷한 느낌의 노동이 아니라, 그것이 무보수여도 견딜 수 있을, 분명 괜찮기도 하고 또 심지어 즐기기까지 하는 '일'인 것은 자명했다. 그러니 스스로 오븐을 사서 제빵을 본격적으로 해보려 했겠지 싶다. 낸들 이 속을 누가 알겠는가. 외식비 절약하려 했던 나름의 묘책이었을 수도. 허허허. 


잘 되기를 바라는 그 순한 마음에 대해서, 나는 오래 생각한다. 빵을 구우며 깨닫는, 삶의 순한 진심들에 대해....



빵을 구우며 생각한 것들이 있다. 

어쩐지 그 생각들은 인생과 닮아 있었다. 완성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하고 혼자 그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 건강한 재료로 만들면 건강한 빵이 만들어진다는 것. 실패가 반드시 있지만 (게다가 꽤 많이) 그 실패에서 배우는 점들 한 두 개씩 늘어나고 그걸 보완하면서 실패를 줄여나가는 것, 몇 번 태우거나 덜 구워지거나, 밍밍하거나 너무 달거나 시행착오를 겪으며 '제 맛'을 찾아가는 것. 조급하게 재료를 배합하려 하면 어딘지 모르게 꼭 실수를 한다는 것. 그리고 제일 떠오르는 건 바로 이것. 내내 잘 구워지기를, 잘 되기를 바라는 순한 마음... 잘 되기를 바라는 그 원시적이고도 본능적인 마음의 중간엔 이것이 있다. 



사랑을 향한 정성 

상대를 생각하는 '사랑'의 마음이 담긴 그 정성이 들어가 시간을 견디며 나온 빵은, 이상하게도 모양은 투박하고 성의 없어 보여도 맛은 분명 있었다는 것...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외관으로는 모두 '빵점'이었을지 모르나, 한 입 먹어보더니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갓 구워진 빵을 다 먹어버린 그를 바라보고 생각했다. 그래. 아직 망하지 않았어. 한 사람이 다 먹어주면 그걸로 됐어!라고... 



플레인 카스테라와 (右) 블루베리쉬폰케이크 (左) 를 만들고 싶었다.........보편적인 외관은 망했지만; 분명 맛은 있었다.


바나나파운드케이크. 우유랑 먹으면 더 풍미가 살아났다. 처음 만들어본 것 치고 나름 성공적이었다. (바나나 심폐소생술 성공 ㅋ)



박력분과 베이킹파우더, 설탕과 소금, 우유와 버터. 

처음엔 잘 모른다. 존재의 의미, 그 자체로서의 소중함에 대해서. 그런데 생각해보면 모든 존재엔 그만한 이유들이 있다는 게 느껴진다. 빵을 구우며 유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존재의 감사함에 대해. 별 거 아닌 흰 가루들이지만, 별 거 아닌 나약한 껍질로 감싸진 달걀이지만, 그것들이 없어서는 분명 존재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 존재들에 얼마나 감사함을 느끼는지, 그들 자신은 물론 모를 테지만 누군가는 언젠가 분명 알아줄 날이 온다고도. (박력분! 여태껏 강력분과 중력분과의 차이를 확실히 알게 해 주신 분! 처음 뵙습니다) 



오늘도 집에서는 빵 냄새가 났다. 

아이에게 간식을 챙겨주며 묘한 뿌듯함과 새삼스러운 미안함도 동시에 샘솟았다. 그동안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야 해 준다는 기분, 그러면서도 여전히 너희들을 대하는 것에 서투르고 모자란다는 사실도. 그래도 이렇게 느리지만 조금씩, 나는 행복을 알 것 같았다... 



느리지만 천천히, 그렇게 맛있게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건, 요리든 삶이든 비슷하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삶의 정수라고 믿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주식의 호가창 속 빨간 수익률이 아니라,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의 숫자가 아니라, 오늘도 얼마를 벌었다고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의 무서울만치 자주 들리는 '가즈아'의 외침들이 아니라. 오늘도 투잡 쓰리잡 포잡을 비롯한 사업수완들로 거두어들이는 '숫자'로 인한 누군가들의 기쁨은, 누군가에겐 숫자로 어찌 표현이 잘 되지 않는 것들에 밀리기도 한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빵 굽는 시간 동안의 깨달음들이나, 집안 곳곳에서 풍겨 나오는 달콤한 향기와 누군가의 미소, 그것들은 어떤 것들을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무찌르고 있다고도..... 



테슬라가 천슬라가 된다한들 이 미소를 살 순 없는 거지 싶었다. (2호는 잠시 외갓집 외출중. 어서오시길. 빵은 많이 있습니다 ㅋ)



애플파이와 복숭아 케이크, 블루베리 요거트 파운드케이크와 오곡쿠키

앞으로 만들고 싶은 것들이 쌓여가며 이렇게 집에서의 시간은 흐르는 중이다. 어디로 흘러갈지, 이렇게 계속 집에'만' 있다가 생이 끝나버리는 건 아닌지. 너희들을 키우기만 하다가 나이만 옴팡 들어 할머니가 되는 건 아닌지. 물론 가끔은 불안하고 여전히 답답하고 어떤 상실감에 휩싸여 무언의 께름칙함이 마음 한편에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감정이 조금 더 앞서기 시작했다. 빵을 구워 완판을 해 주시는 고객은 아직 그이뿐이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지금 이 상태를 '현존' 하고 있다는 어떤 믿음이 고마워서...  



그 고마움에 기댄 채, 오늘도 빵을 굽는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확실히 행복한 시간을 당신들과 함께.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모르니 그래서 오늘을 'present' 라고 했나봐. 이왕이면 맛있게. 그런 오늘이기를. 


#엄마표 야매홈베이킹, 시작.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