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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멀리스트 귀선 Mar 20.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언제나 내 편이었다.

아들 육아하기

 

하지 말라하면 더 하는 4살
온 집안을 슬라임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4살
해 쨍쨍한 날, 집에서 우비입고 물 계속 뿌려달라는 4살

혈기왕성한 4남자아이와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지지고 볶는 중이다.

어린이 집을 다니다가 다시 가정보육을 하는 엄마들은 알 것이다. 아이의 낮잠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고 얼마나 소중한지... 갓 4살이 된 아이는 낮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런 아이와 하루에도 몇 번씩  투닥거린다. '어른인 내가 참아야지'라는 생각은 이미 오전에 바닥났다.


"우유는 앉아서 먹어야지"

"밥은 식탁에 앉아서 얌전하게 먹는 거야."

"화가 난다고 장난감을 던지면 안 되는 거야."

"낮잠 자야지! 안 자면 오후에 짜증 낼 거잖아."


 하루에도 수십 번같은 말을 반복해야 할 때, 엄마도 사람인지라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다. 밤마다 아이 손을 붙잡고 반성할 거면서 왜 그 찰나의 순간을 못 참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지금도  미스터리다.


아이는 정말 속이 좋은 건지, 아니면 내가 엄마라서 그런 건지 화가 나고 혼이 나도 언제나 내 편이었다. 


 때로는 내가 잘못하는 상황도 온다. 장난감을 치운다던가, (놀고 있는 줄 몰랐다.) 만들어 놓은 블록을 실수로 부신다던가, 제일 아끼는 인형 토토를 밟았을 때,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들을 때, 아이가 화를 내는 순간이다.


생각해보면 이 순간들도 아이가 나에게 무섭게 화를 내진 않은 것 것 같다.(생각해보면 화라기보다는  짜증에 가깝다.)

그리고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엄마~뭐해?"하고 안겨 온다. 화났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이다. 아이의 화남의 정도가 얼만큼인지는 몰라도 그 순간은 매우 속상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용서를 해준다. 내가 엄마라는 이유일까.


 반면 내가 화나는 순간을 생각해보면, 아이가 우유를 흘렸을 때, 밥을 앉아서 안 먹을 때, 물건을 던질 때, 낮잠을 안 잘 때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낸다. 아이보다도 못한 참을성이다.


아직 인생을 만 3년도 살지 않은 아이에게 겨우 이런 일로 화를 내면 쓰나 생각이 들만큼 창피하다.


이제 아이는 말귀도 알아들을 만큼 컸고 무섭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알아들을 텐데 내 기분 때문에 감정적으로 무섭게 소리쳤다.


우유를 흘리면 함께 닦으면 되고, 물건은 던지는 것이 아니라고 차분하게 설명해주면 된다. 육아서에서는 아이에게 천번을 말해주라고 한다. 낮잠을 안 자면 이른 육퇴를 꿈꾸면 되는 것인데 왜 이렇게 나는 조급한 엄마인지 모르겠다.


"엄마 좋아~"

"엄마 사랑해~"


아이는 내가 힘들어 보이면 아무 말 없이 먼저 안아주고, 뜬금없이 엄마가 좋다는 말을 해준다. 벌써 내 기분을 맞출 만큼 큰 것이다. 가끔은 안쓰럽기도 하다. 4살 아이가 벌써 엄마 기분을 맞추다니...


오늘도 다짐하는 밤이다.


내일도 모레도 언제나

아이 앞에서 감정적인 엄마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맛있는 걸 먹으며 엄마도 챙길 줄아는 4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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