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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훈 해설위원 Jun 11. 2023

만 49세 생일 단상


1. 생일 하루 전, 박스원 체육관 감독님, 사형님, 사제님, 사저님, 사매님과 시원하게 마셨다. 5시간 시간을 정해놓고 마셨는데 1시간 정도 오버했다. 간단한 수술 때문에약 3주간 금주를 했던 터라 더 시원했다. 2차로 온 술집 베란다 테이블에서 시원하게 내리는 빗소리를 마시며 차가운 술잔의 냉기를 손으로 느끼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옆옆 테이블에 있던 젊은 남녀 커플은 뭔가 심각한 일이 있는지 빗소리를 압도할 정도로 적막함이 있었는데 비가 그칠 때쯤 분위기가 다시 좋아졌다. 사내가 옆자리에 앉더니 눈웃음을 치는데 허~ 왜 여자 마음이 풀렸는지 알겠더라.


2. 생일 당일은 일요일 오늘 박스원 백석 브런치에서 자율훈련을 했다. 스트레칭을 하자마자 굳었던 햄스트링과 근육들이 비명을 지른다. 특히 오랜만에 과다투여된 알코올을 분해하느라

고생했든 간에 에너지를 공급하느라 스스로를 분해했던 근육들이 날 원망하는 듯하다. '여보슈, 기껏 일주일에 세 번 근육실패점까지 운동하고 단백질 먹더니만 어제 뭐 한 거요'

대퇴사두근에서 올라오는 푸념을 못 들은 척하며 스텝을 밟았다.

3. 레노버 요가 태블릿을 리퍼로 싸게 팔길래 사두었다가 용도를 못 찾아서 당근에 팔까 했는데 용도를 찾았다. 앞으로 운동 관련 일지를 여기에 적기로 했다. 기존에 스프링노트와

다이어리에 볼펜으로 적어두긴 했지만 악필인 데다 관리가 어려워 일회성 메모에 그쳤다. 더 나아가 운동 관련 명언을 적어두기로 했다. 뭘 적을까 하다가 '글래디에이터'라는 복싱영화가

생각났다. 2000년에 만들어진 러셀 크로우 주연의 검투사 영화가 아니라 1992년 작품이다. 쿠바쿠딩 주니어와 제임스 마셜이 주인공으로 나온 권투 영화다. VHS 비디오테이프로  빌려서

봤는데 정말 재밌게 봤다. 이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가장 강할 때 약한 척을 하고 가장 약할 때 가장 강한 척을 하라' 꼭 복싱이 아니더라도 인생에서 도움이 될만한 말이다.


4. 한창 운동하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출전요청이다. 만 49세 생일날 운동을 하고 있는데 출전요청이다. 작년에 오랜만에 경기를 뛰었는데 다시 1년 조금 더 지난 시점에서 경기를 할 것 같다.

작년 경기 중에 탄자니아 백드롭을 하다가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척추 자체의 물리적 대미지가 아니라 근육과 인대의 문제라 열흘 정도 고생하고 끝났지만 다음에도 이런 행운이

있을지 어떨지는 모른다. 프로레슬링 시합을 뛴다는 것은 술에 취한 채 지붕 위를 걷는 것과 비슷하다.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하며 내려다보고 때론 달을 보며 웃을 수 있지만 삐끗하면 지옥이 펼쳐진다.


5. 어머니가 의자에서 넘어졌다. 뭔가를 꺼내기 위해서 밝고 올라갔다가 균형을 잃으면서 수도꼭지에 머리를 부딪쳐 피까지 났다고 한다. 근처에 살던 여동생이 병원으로 모셔가 응급처치를

하고 내일 조금 큰 병원에 가서 혹시 모르니 CT도 촬영한다고 한다. 이미 상황이 다 끝난 후에 연락을 받아서 전화밖에 할 게 없었는데 스피커 너머로 어머니의 쓸쓸함이 느껴진다. 넘어진 것은

몸이지만 낙심, 마음이 넘어지신 듯하다. 젊은 시절 수 십kg의 옷가지를 이고 지고 매고 서울 남대문에서 송탄까지 나르며 장사를 했는데 육체적 쇠약함을 실감하고 상처를 받으신 듯하다.

이번 주에 뵈러 갈 예정이다.

 

6. 박스원 백석 브런치 바로 옆에 스터디 카페가 있길래 잠깐 업무를 보러 들어가려다가 멈칫했다. POS기에서 회원가입 후 자리를 선택하려는데 남아있는 자리가 별로 없다.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샤워를 했다고 하더라도 땀냄새로 민폐를 끼칠까 싶어 그냥 나왔다. 집 근처를 한 바퀴 돌다가 밤 11시까지 하는 카페를 발견했다. 이면도로에 주차를 할 수 있다. 이 앞을 거의 매일 지나다녔는데

왜 몰랐지? 덕분에 여기서 이런 글도 쓴다. 종종 애용할 생각이다.


7. 읽고 싶은 책이 갑자기 나타났다. '화력 역사를 뒤집은 게임 체인저' 예스 24 앱을 뒤적거리다가 봤는데 고양도서관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니 몇 군데에 책이 있다. 무인대출이 안돼서 6시 이전에

가려고 했는데 운동을 늦게 시작하고 늦게 끝내서 맞추질 못했다. 내일 오전에 도서관에 들릴 예정이다. 정가 48,000원의 신간을 무료로 빌려서 읽을 수 있다. 이거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지난 달초에 트친, 페친들이 추천해 준 책들을 읽고 있는데 절반 정도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8. 이번 주 일정을 정리하고 있다. 만나야 될 사람도 있고 멀리 가는 출장도 있다. 비가 안 온다면  바이크로 가서 조금 더 둘러보고 올 예정이다. 잘 포장된 아스팔트가 6월의 햇살로 달구어져 타이어 표면과 서로 마찰력을 조응할 때 뇌는 상쾌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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