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골프 버디가 보기

라차부리 드래곤 힐즈 C.C.

by 꽃뜰

오늘 공은 어쩌면 그렇게 안될까. 우리는 매일 27홀씩 돌고 있다. 새벽 5시 50분에 아침 식사를 하고 6시 반에 출발하여 18홀을 돌고 그리고 점심을 먹고 샤워까지 하고 푹 쉬다가 다시 오후 2시가 되면 나가 새로운 라운딩을 하듯이 9홀을 도는 것이다. 그런데 오전 중에 그렇게 엉망이었으면 오후에는 좀 잘 되어야지 어쩜 나의 공은 끝까지 그토록 안될까? 재미있게 하자고 오후 9홀은 돈내기를 한다. 남편들은 뒤에서 따라오고 우리 여자들은 앞에서 한다. 든든하게 남편들이 우리들 여유 있게 맘껏 치라고 뒤에서 방어해주는 것이다. 본래는 부부조로 편성되었지만 남편의 심해지는 잔소리가 싫어진 여자들은 즉석에서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의 새로운 조를 만들어 앞장서 나간다. 음하하하


내기란 어떤 내기냐. 오로지 9홀이 남았을 뿐이니까 삼천 원씩 처음에 내고 매 홀마다 천 원씩 빼먹기다. 삼천 원씩 네 명이면 만 이천 원. 남은 홀은 9홀. 그러니까 매 홀에서 무조건 일등 하는 사람이 천 원을 가지고 가는 거다. 한 명이라도 같은 점수가 나오면 튼다고 하여 천 원을 따로 두고 다음 홀 이기는 자가 그 홀의 우승 값 천 원과 함께 이천 원을 가져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니어를 처음엔 니어리스트와 함께 카트 탄 사람까지 천 원씩 주고 나중엔 니어 혼자만 천 원 주기. 요렇게 하면 단 돈 3천 원으로 매우 스릴 있는 골프를 즐길 수 있다.


마지막 홀이다. 앞의 두 홀 연속으로 공동 우승이 나와 트는 바람에 이번에 이기는 사람은 삼천 원을 갖게 된다. 마침 공을 홀에 바짝 붙인 나는 버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아, 여기서 난 꼭 버디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 삼천 원을 가져가야 한다. 와이? 모두들 삼천 원씩 땄는데 오로지 나 혼자만 돈을 하나도 못 따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다 기회가 나면 그땐 꼭 공동 우승자가 나타나 트게 되고 그렇지 않은 곳에선 우승을 못하고 운도 안 따라 돈을 단 한 푼도 따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난 여기서 꼭 버디를 해야만 한다. 그러면 우승이다.


롱 막막


캐디가 태국어로 내리막이 심하다고 주의 준다. 나 역시 홀에 집중하며 '때리지 말고 살짝 밀어주기만 해야지.' 단단히 다짐한다. 난 이걸 꼭 넣어야만 해. 집중 집중. 목표지점을 보고 공을 보고 조심스럽게 톡! 두들기듯 살짝 밀어준다. 헉. 그런데 웬일인가. 그렇게 심한 내리막이었나? 쫄쫄쫄쫄 굴러가는 폼이 땡그랑 꼭 홀에 들어갈 듯하더니 홀을 살짝 빗나간다. 헉! 홀을 비켜나자마자 세상에 가속이 붙으며 신나게 쌩쌩 달려가는 게 아닌가. 하이고. 이자가 더 크다.


버디가 파는커녕 보기가 되고 만다. 결국 나보다 먼 곳에 떨어졌지만 차분하게 투펏으로 마감한 K가 파를 기록하며 삼천 원을 가져가게 된다. 바로 전 홀에서 우린 누가 얼마를 땄는가를 확인했기에 나만 빼고 모두 삼천 원씩 땄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버디를 했으면 모든 상황 깔끔하게 종료되는 건데 망했다. 반드시 버디를 하고야 말겠다 하니 온몸에 힘이 들어간 걸까 쓰리 펏을 하며 보기를 하고야 만다. 버디가 순식간에 보기가 되는 순간이다. 아, 오늘 공은 끝까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골프가 안 되는 백한 가지 이유 중에 제일 마지막 이유가 '이상하게 안되네~' 라더니 그야말로 정말 이상하게 안 되는 날이다. 하이고.


그런데 아 그런데 파로 일등을 거머쥔 그래서 삼천 원을 받은 K가 나에게 그 삼천 원을 툭 내미는 게 아닌가? 응? 뭐야? 모두 삼천 원씩 땄는데 이거 가져요. 그럼 공평하게 삼천 원씩 됩니다. 헉. 주니까 받기는 하지만 아, 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그까짓 천 원에 그리 목숨을 거냐 할 정도로 우리는 아주 짧은 거리에서도 오케이를 주지 않고 치열하게 접전한다. 그러니 그 천 원은 그까짓 천 원이 아니다. 게다가 이겨서 돈을 가져가는 것과 잃었는데 동정표로 얻어가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야말로 기분이 엉망이다.


잘 안 된 홀은 잊으라 하지만, 매 순간 새롭게 시작하라 하지만, 그거 쉽지 않다. 골프의 악순환이라던가 정말 끈덕지게 나쁜 샷의 기억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다. '왜 안되지? 아, 정말 안돼. 오늘 참 안되네.' 이렇게 생각하는 한 나의 공이 잘 될 리 없다. '골프에선 그 어떤 상황도 닥칠 수 있어. 괜찮아. 그뿐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새 홀, 나의 새로운 샷에 집중하자.' 진작에 그렇게 마음을 털었어야만 했다. 아, 아쉽다. 얼떨결에 나쁜 마음으로 우거지상으로 마치게 된 9홀이 안타깝다. 제대로 골프를 즐기지 못했다.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 이런 날도 있다. 오늘 이 지저분한 마음을 끌고 가지 않으리. 우리 삶과 마찬가지다. 궂은날도 있고 햇빛 짱 나는 날도 있다. 그러려니 하며 깡그리 잊으리라. 내일은 내일의 새 태양이 뜬다. 내일 잘 치면 돼. 그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