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글쓰기
따뜻한 봄이 되니 꽃이 만개하는 것 마냥 삶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이들이 있다. 바로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백년가약을 맺으며 서로가 서로의 동반자가 되리라 철썩 같이 믿을 테지만 대부분은 죽고 못 사는 원수가 되기 십상이다. 뭐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내 부모님만 봐도 대충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결혼에 회의적인 건 아니다. 인생에 해 볼 수 있는 건 한 번쯤 해 보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두 번도 할 수 있지만 굳이 두 번까진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4월에만 주마다 한 번씩 결혼식을 다녀왔다. 웬만하면 남에 결혼식 잘 안 가는 나인데 요즘엔 주머니 사정이 좋아져서인지 아니면 여유가 생겨서인지 그냥 갈 수 있으니 다녀왔다. 솔직히 주말에 할 일도 없어서 간만에 친구들이나 볼 요량으로 간 것도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축하도 해 줄 겸 말이다.
저번 주도 아는 동생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이렇게 평생 남에 결혼식만 다니게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식이 끝난 후 같이 온 동생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이야기가 나왔다. 이유는 동생의 동생 그러니까 나랑 같이 결혼식장을 온 동생의 친동생이 곧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했다.
그 동생으로 말자면, 경북 어디 조용하고 고즈넉한 동네에서 초, 중, 고, 대학교마저 나오게 된 그야말로 고립된 환경과 제약된 공간에서 10대 20대 초반까지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그에 비해 언니는 그러니까 내가 아는 동생은 대학을 대구로 갔고, 직장은 경기도로 왔으니 그나마 좀 문명의 혜택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20대 절반을 해외에서만 보냈던 내가 보기엔 그 동생의 워킹홀리데이 결정은 정말 반가웠다. 아니 21세기를 넘어 AI 인공지능 시대로 향해 가고 있는데 아직 해외도 한 번 나가보지 못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젊을 때만 해 볼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는 한 번쯤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람은 환경에 참 많은 영향을 받는다. 어디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에 따라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은 결국 말과 행동이 되어 나타난다. 그렇기에 다양하고 새로운 것들을 적어도 젊을 땐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린 일상을 살아가며 늘 반복적인 패턴의 삶을 보낸다. 새로움을 찾기엔 힘든 환경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이 오늘이 되는 정말 무미건조한 삶만 살게 된다.
그런 환경에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 알긴 조금 힘들다. 평탄하기만 하면 사실 본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니 말이다. 물론 일상에서도 정말 다양한 일들을 겪게 되겠지만 사실 한계치는 있기 마련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가는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고서야 말이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환경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나는 어떤 내가 될까?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사실 그것들을 만난다 해도 나란 인간은 그냥 나다. 딱히 바뀌는 게 없다. 다만, 그것들을 경험함으로 내가 얻게 되는 것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행이 그렇다. 그런데 여행에도 조금 결이 다른 분야가 있다. 바로 직접 살아 보는 것이다. 여행을 가는 것과 그곳에서 사는 것은 조금 다르다. 여행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풍경이라면 사는 것은 직접 그곳에 내려 그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선 머물 곳이 필요하고, 머물 곳을 마련하려면 돈이 필요하니 일을 해야 한다. 여행으로 겪을 수 있는 범위보다 훨씬 넓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은 경험에 의해 많은 것을 판단하고 그 판단으로 크게는 생각의 범위를 규정짓게 된다. 경험해 보기 전까진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처럼 말이다. 빵도 먹어 본 놈이 더 잘 안다는 말도 있지 않나?
그렇듯 워킹홀리데이는 적어도 젊을 때 한 번쯤 경험해 보는 게 좋다. 보다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고, 다양한 인종과 그들의 생각과 생활 그리고 삶을 엿봄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게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생각이 깨어지고 다시 붙는 경험을 통해 사고를 넓게 그리고 깊게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책을 한 권 읽는 것보다 직접 가서 몸으로 부딪치고 경험하는 것이 나는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백날 책 속에 나온 이야기를 읽는다 한들 그건 어차피 타인의 생각일 뿐이다. 그 책을 읽고 난 후 나만의 생각으로 정립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여행과 같다는 게 결론이다.
나로 말하자면 미국에서 1년 호주에서 1년을 살아봤다. 그랬기에 미국에서의 삶과 호주에서의 삶 그리고 한국에서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적어도 살아 보지 않은 사람보다는 조금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단순히 공부하러 갔던 것과 직접 내 생활의 전반을 책임지러 갔을 때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 지도 알게 되었다.
다양한 경험은 그로 인해 그 사람의 인격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나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20여 년을 한 곳에서만 살아온 그 친구의 여정이 실로 기대된다. 앞으로 마주할 넓은 세상을 그리고 그 세상을 마주할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 기대된다. 하지만 그 친구의 부모님은 조금 허전해하셔서 가길 원치 않는다고 들었다.
언제까지 품 안에 자식일 순 없다. 다 크면 독립해야만 한다. 아기 독수리는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어미새가 벼랑으로 몰아내어 떨어트린다 했다. 거기서 날갯짓을 배워 살아남는 녀석만이 사냥을 할 수 있는 날갯짓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늘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것만 입히고 좋은 것만 보게 하고 싶어 하지만 이 또한 부모의 이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품 안에서 만큼 세상은 따뜻하지도 좋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박차고 나아가야 한다. 삶은 결국 혼자가 되는 과정이니 부모도 떠나는 자식을 받아 들어야 한다. 결혼식에서 딸을 아들을 다른 사람 품으로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오랜만에 외국 이야기를 하니 절로 텐션이 높아졌다. 결국 그 친구도 동생이 호주를 가게 되면 따라 놀러 갔다가 좋으면 회사 때려치우고 자기도 호주 워킹을 갈 요량이다. 인생은 어찌 흘러갈지 모른다. 그건 신만 알 것이다. 그래서 난 물 흐르듯이 흘러가게 내 버려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애써 원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게 가장 좋다고 본다.
너무 힘을 주면 부러지기 마련이니 지금의 내가 그것을 원한다면 주저 말고 가졌으면 한다. 미래가 걱정되고 불안하겠지만, 사실 미래는 누구나 불안하고 걱정된다. 다만, 반복되는 일상에선 조금 덜 불안한 건 사실이다. 어차피 내일도 출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삶이 아닌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는 삶은 더 불안하겠지만 그만큼 큰 가능성을 가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차피 평생 일 할 거 젊은 날 생애 한 번쯤 해외에서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어른이 되는 과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