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6년째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고, 그저 혼자 묵묵히 써내려 왔던 시간, 그저 글 쓰는 게 좋아서 한 번 해 보고 싶어서 나라는 사람을 남기고 싶어서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 그렇게 시간이 지금까지 흘렀다.
처음에는 단순히 가을 냄새가 좋아서 낙엽 굴러가는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서 지금을 회상하고 싶어서 지금의 감정을 잊히고 싶지 않아서 '기록'했던 글이 나의 최초의 글쓰기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에게 글쓰기가 뭐예요? 혹은 왜 글을 쓰세요?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글쓰기는 미련이라고, 흘러가는 시간을 그리고 모든 것들을 그대로 두지 않고 지금 여기 이곳에 붙잡아 두고 싶어 하는 것 말이다. 그게 미련 혹은 아쉬움이 아닐까?
오래전 그러니까 약 10년 전 꿈꾸던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1년 하고 6개월, 여러 나라에 내 발자국을 남기는 일은 마치 세계를 정복하는 것처럼 들뜨고 희망찬 일이었다. 물론 여행 중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지나고 나니 그 순간들이 정말 빛나고 행복했으며 나 삶에 큰 의미와 목적이 됐던 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렇게 특별하고 잊을 수 없었던 순간들도 시간이라는 자연의 흐름 앞에서 흐려지고 잊혀 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난 그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던 게 아니었을까?
태어나서 처음 홀로 서울을 상경하던 무궁화호 안 5시간 동안 읽었던 책 속 문장들 그리고 들었던 생각들은 어쩌면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던 하나의 오마주가 아니었을까?
"나도 글을 쓰면 이 사람처럼 쓰고 싶다"
단 한 번도 글을 써야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었던 내가 그 무궁화호 안에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마도 그럴 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째 계속 물음으로 끝나는 나의 이 문장들이 결코 낯설지 않은 까닭은 나조차도 사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렇게 아닐까 하고 넘기는 것이다. 모든 것은 다 결과론적으로 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니까. 결과적으로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됐으니 지나간 과정을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독립출판 작가가 되고 난 후 많은 사람들에게 너도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다닌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다. 되고자 하는 마음과 쓰고자 하는 행동이 동반된다면 말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은 자신의 글에 자신 없어했다.
"누가 제 글을 봐줄까요..?"
"제 글 이상하지 않나요...?"
사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이 세상에 이상한 글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에는 내 글이 너무 투박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딱딱하고 무미건조하고 꾸밀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단조로워서 밋밋한 그런 느낌말이다. 여느 작가들처럼 형용하고, 부드러운 그런 느낌의 글을 나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내 글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바꾸려 하지 말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자 그게 나다운 것이다로 결론 내렸다.
이렇듯 각자만의 개성과 자기다움이 묻어나는 글이라면 절대 결코 이상하지도 못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약간의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글이 이상하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꾸준히 나만의 글을 써내려 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누가 봐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이다.
"글을 잘 쓰고 싶어요."
나도 그러고 싶다.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내 꼴리는 대로 쓰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하나하나씩 모아 글로 풀어내는 일이 재미있었고,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기에 잘한다는 생각보다 그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되었다. 이걸로 밥 벌어먹고살겠다 혹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 따위의 욕망보다는 그저 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했던 일이 지금은 나의 밥벌이가 되었고, 사람들에게 글이 좋다 혹은 글을 잘 쓴다는 인정까지 받게 만들어 줬던 것이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유시민 작가님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런 말을 했다.
"소설이나 시는 내가(유시민) 알려 줄 게 없다. 그것은 어느 정도 재능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에세이만큼은 내가 할 말이 있다. 나름대로 써왔고, 여러 권의 책도 출판했으니 말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것이 에세이를 잘 쓰고 싶다는 말이라면,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바로 많이 쓰기이다. 그리고 많이 읽기이다."
많이 쓰고 많이 읽는 것, 이것만큼은 나도 공감하는 바이다. 그러니 글을 잘 쓰고 싶으면 많이 쓰고 많이 읽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잘하기만 바라는 것은 일하지 않고 돈 벌고 싶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게 너무 부끄러워요."
그냥 일기만 쓰면 좋지만 간혹 그걸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너무 나의 개인적인 것을 오픈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잘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나의 모습을 숨기고 싶어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더 중시하는 사람일 수 있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그런 사람이라는 말이다.
반대로 부끄럽지만 나의 모습을 꺼내어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부류의 사람은 타인에게 나의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뭐 일종에 관종 같은 기질이지만, 약간 소심한 관종이랄까? 나도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처음엔 나 또한 거부감이 들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누가 내 글을 봐주냐 이 말이다. 내가 무슨 엄청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그 당시엔 책도 쓰지 못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방법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프라이빗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글쓰기 모임을 했었다.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는 사람들이라 실제로 누군지도 몰랐다. 네이버 카페를 만들어 그때그때마다 각자 글을 올리는 식으로 시작했었다.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에게 글을 보여주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렇게 블로그를 시작했고, 브런치까지 오게 된 것이다.
특히 브런치는 약간의 익명성도 보장이 되기 때문에 작정하면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모르게도 할 수 있다. 물론 가끔 내가 누군지 알게 된다면 굉장히 부끄럽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몇 번 겪다 보면 별 것 아니게 된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을 때 독서모임에서 처음 뵙는 분이 내 글을 본 적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정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동시에 굉장히 부끄러웠다. 또한 처음 독립출판 북페어에 나갔을 때, 독자분이 내 앞에서 내가 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뭔가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사인을 해 달라고 했을 때는 솔직히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이런 내가 이제는 이 또한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몇 번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이젠 책도 열심히 잘 판다. 물론 아직 먼저 사인해 드릴까요? 같은 말은 못 하지만 요청하시면 언제든지 해 드릴 의향이 있다.
누구나 삶에 스토리는 있다. 그리고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남길 수 있다. 난 그것이 삶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말이다. 나에게 삶을 남기는 방식은 글쓰기였고, 그것을 제대로 해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책보부상 행사에서 잠깐 이야기 나눴던 김신회 작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책을 쓴다는 것은 뭘까? 글을 쓴다는 것은 뭘까? 이것은 나 여기 있어요! 하는 것과 같아요. 30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나라는 사람이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어요. 하는 것과 같아요. 이런 말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 말을 내뱉었을 때 나오는 사람들의 반응과 삶의 변화를 통해 다음을 또 살게 만드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은행경비원을 하는 사람은 은행의 숫자만큼 많다. 지점마다 1명 이상은 꼭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사람은 없다. 나 빼고, 국내에 은행경비원을 소재로 한 에세이는 내 책이 유일하다. 아직까지는... 나는 이 이야기를 부끄럽지만 꺼내어 놨고, 그랬을 때 따라오는 사람들의 반응과 변화로 지금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니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나는 그게 글이었으면 좋겠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러니 독립출판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모두가 작가가 될 수 있다.
앞으로 글 쓰기와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해 볼 생각이다. 함께 쓰기도 하고 함께 책을 만들기도 할 것이다. 아마 이것이 올해 내가 해야 될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무래도 올해는 책은 나오지 못할 것 같다. 다만, 지금까지 미뤄뒀던 "저는 은행경비원입니다" 2쇄가 곧 나올 예정이다.
비 오는 어린이날 오랜만에 글을 쓰니 참 좋다. 오늘을 또 남기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