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읗 Sep 15. 2020

등이 굽은 할머니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은행에 자주 오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그분은 등이 활처럼 굽어서 걸어오실 때 늘 유모차를 끌고 오신다. 유모차의 용도는 자신의 굽은 허리를 지탱하기 위한 하나의 보조 다리 역할을 한다. 굽은 허리를 이끌고 은행에 오시는 이유는 그다지 크지 않다. 더운 여름날이면 잠시 쉬었다 가고, 추운 겨울날에도 잠시 쉬었다 가는 쉼터이자 놀이 공간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은행 주변에 폐지를 주우신다. 그걸 주워서 팔아 생계를 유지하시는 듯하다. 연세는 이미 80을 훌쩍 넘겼다. 피부는 쭈굴 쭈굴 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할머니는 항상 복대를 차고 다니셨다. 그 속에는 통장이며, 도장이며, 돈이며 여러 가지 것들을 넣고 다니셨다. 윗옷을 훌러덩 올리곤 복대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낸다. 할머니 뱃살은 살이라기보다는 이미 기능을 다 해버린 가죽이 축 늘어져 있었다. 자신의 뱃살이 다 드러나도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이 할머니는 늘 그렇게 복대를 하고 오셨고 매번 배를 훌러덩 내비치셨다. 은행원들과 난 그런 할머니를 그리 반기지 않는 편이었다. 특히 할머니에게선 특유의 지린내가 많이 났다. 아마도 몸이 불편하시기에 씻는 것도 힘드셨을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가 은행을 나가고 나면 주변에 향수나 방향제를 칙칙 뿌려댔다. 


사실 이것 말고 할머니를 반기지 않는 진짜 이유는 치매기가 있어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 때가 종종 있었다. 하루는 통장을 잃어버려 다시 만들러 왔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미 통장을 새로 만들어 준 것만 해도 10개가 넘었다. 거기다 신분증마저 잃어버리셨기 때문에 다시 통장을 만들려면 일단 동사무소에 가서 신분증을 다시 만들고 오셔야 한다고 정중히 설명을 드려도 할머니 혼자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나 보다.     


“할머니 어제도 말씀드렸는데 혹시 동사무소 다녀오셨어요?”

“아이 몰라. 그냥 하나 맹글어줘.”

“할머니 혹시 증명사진은 있으세요. 저희가 만들어 드리고 싶어도 신분증이 있어야 해요.”

“뭐라고?”

“그냥 제가 이거 써드릴 테니 동사무소 가서 직원에게 보여주세요.”     


마음 같아선 내가 할머니와 같이 동사무소에까지 같이 가고 싶지만 굳이 내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일하는 도중에 자리를 비우는 것도 아닌 거 같고, 아무튼 여러 가지로 골치가 아픈 할머니였다. 심지어 잘 듣지도 못하시는데 보청기도 끼지 않으셨다. 그래서 뭔가를 전달하려면 글을 써서 보여주는 방법이 좋은데 설상가상으로 글도 모르신다. 그래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필요한 건 바로 목청껏 소리 지르는 것이다.     


“할! 머! 니!”     


그런데 이런 상황도 모르면서 지점장은 나더러 객장에서 소리를 지르다고 한소리 했다. 물론 나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늘 그렇듯 누군가를 통해서 자신의 말을 나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자기의 입으로 말을 전달할 줄 모르는 벙어리 같았다.



다음날 할머니는 또다시 오셨다. 통장이 없어졌다는 말과 함께 마치 어제 일을 복사 붙여 넣기 한 거처럼 말이다. 이젠 은행원들도 나도 지쳤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팀장님은 할머니의 아들분께 전화를 걸었다. 난 아들이 있는 줄도 몰랐다.(진작 그렇게 할 것이지.) 그리고 다음 날 아들과 함께 은행에 왔다. 그런데 이번엔 또 도장을 잃어버리셨다고 했다. 정말 산 넘어 산이다. 그래서 결국 또 통장을 만들지 못하고 도장을 다시 만들어서 오셔야만 했다. 그냥 카드를 쓰시면 참 편할 텐데 어르신들은 아직도 무조건 현금을 고집하신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기 때문에 그걸 바꾸는 건 그들의 삶을 바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은행 단골이다.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은행을 찾아오신다. 그리고 볼일을 다 보신 후에는 항상 빠짐없이 “감사합니다.”하고 말씀을 꼭 하신다. 은행은 할머니를 반기지 않지만 할머니에게는 빠짐없이 오시며 늘 감사하다고 하시는 걸 보면 마음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한 번은 할머니의 손가락을 봤다. 손가락이 심하게 비틀어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왜 이렇게 손가락이 비틀어졌을까 싶었는데 그 할머니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할머니들도 손가락이 성한 분이 몇 없었다. 심지어 연세가 그렇게 많지도 않은 분이신데 이미 한참은 늙어 보였다. 그런데 반대로 은행에 자주 오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그분은 늘 깔끔한 정장에 무스로 머리를 쫙 올리고 폭스바겐 골프를 몰고 오시는 분이 계셨다. 그 할아버지가 오시면 지점장은 저 멀리서 버선발로 뛰쳐나온다. 한 마디로 돈 많은 할아버지다. 그분은 멀끔하다. 좋은 냄새도 난다. 그리고 늘 나에게 수고한다고 말씀하신다. 여유가 있었다. 신사셨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내가 만난 손가락이 비틀어진 할머니들보다 한 참은 나이가 많았다. 겉으로 보기엔 60대 후반이나 70대 초반처럼 보였지만 신사 할아버지는 80세를 넘긴 완연한 황혼의 길을 걷고 있는 노인이었다. 어째서 살아온 세월은 더 길지만 몸은 아직 더 젊어 보이는 걸까. 이런 이야기를 엄마에게 했더니 엄마가 그랬다.     


“그 할머니들은 아마 평생 힘들게 사셨을 거다. 안 봐도 훤하다.
손가락만 보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대번에 알 수 있어.
니 엄마 손가락 본 적 없제. 여자들은 말이다. 손으로 일을 윽쑤로 해서 손가락이 남아나지 않는다.
빨래하랴, 청소하랴, 설거지하랴, 걸레질하랴. 그렇게 손을 써대는데 멀정 한 게 이상한 거지.
아마도 그 할아버지는 손에 물 한번 안 묻혀봤을 거다.”     



사실 그 할아버지는 화가이시다. 그것도 꽤 유명한 화가 말이다. 우리 은행에만 10억을 예치시키신 갑부 중에도 갑부다. 아마 다른 은행에는 더 많은 돈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로서는 그분들이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70-80세가 되면 이제 삶이 끝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끝자락에 섰을 때 그분들이 무엇을 느낄지를 생각하면 아마도 지금껏 살아온 자신의 삶이 어떠했으냐에 따라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돈이 없어서 힘든 게 아니라 그것 이상의 의미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돈이 많으면 결국 돈이 없는 사람보다 덜 아프고 덜 고생하고 덜 힘들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사실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프고 세상이 싫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 세상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그저 등이 굽은 할머니, 냄새나는 할머니에게 그냥 냄새난다고 등이 굽었다고 피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를 말하며 은행을 나서는 할머니의 굽은 등을 보며 내일도 오시라고 말하고 싶다.

이전 21화 나는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죄인 같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