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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Sep 20. 2020

돈이 많음과 적음에 대하여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매년 새해가 되면 새롭게 계약서를 쓴다. 그렇다고 내 월급이 오르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오르긴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최저시급이 오르느냐 마느냐에 따라 아주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 난 최저시급을 받고 일한다. 그마저도 세금을 떼고 나면 한 달에 받는 돈은 기껏해야 180만 원 남짓이다. 한 달에 200만 원도 벌지 못하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하고 있어야 할까를 생각하면 있던 밥맛도 떨어질 판이다. 거기다 난 혼자 자취를 하니 공과금에 월세에 밥값에 나가는 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게 매달 10일에 월급이 들어오면 그 순간 싹 하고 사라진다.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원래 그랬던 것처럼 제자리를 찾는다. 내 몸무게도 내 통장처럼 가벼웠으면 좋겠다. 아니 반대로 무거우면 좋으려나? 통장만큼 다이어트를 잘할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이놈에 살은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늘어만 간다. 정작 늘어야 할 통장 잔고는 점점 더 줄어드니 월급날이라고 그렇게 좋아라만 하기엔 내가 받는 월급이 너무나 초라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계급이 없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그것은 물론 누군가 정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소연할 수도 없다. 사실은 계급을 정하는 것은 바로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나눠진다.


은행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돈을 자주 만지게 되고 돈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된다. 손님들의 통장 잔고를 자주 들여다보게 되고 통장에 찍힌 숫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 손님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덜 힘든지 혼자서 상상하게 된다. 간혹 숫자가 말도 안 되게 많은 걸 보면 다시 한번 그 손님을 보게 된다. 이렇게 돈이 많은 사람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사람은 다 비슷비슷한가 보다 돈이 많다고 그게 전부 내 돈이 아니란 걸 알게 되면(가령 대출 같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이 과연 전부 내 돈 일까 하는 의심을 들게 한다. 돈에 이름이 적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가져가도 아무도 모르면 그게 내 것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위험한 생각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하면서 보는 돈은 그것이 돈으로 보이기보다는 그저 일로 보인다. 돈이 많으면 좋아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통장에서만 그렇다. 은행원들도 돈이 많으면 짜증 낸다. 그 돈이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ATM기에 마감을 하러 들어가면 먼저 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체크한다. 기계 안에 돈이 많으면 일단 짜증 난다. 어차피 그 돈을 다 빼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린다. 즉, 퇴근이 늦어진다는 이야기이다. 돈이 많다고 짜증 나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은행에 있으면 부와 가난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곳이 바로 은행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돈이 많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겉으로 봐서는 모른다. 왜냐하면 어르신들은 워낙 겉으로 치장을 하지 않으시는 분도 있기 때문이다. 겉은 되게 낡은 옷만 입으시는 할머니가 알고 보니 주변 건물을 8채나 가지고 있는 갑부인 걸 알았을 땐 약간 충격이었다.

한 번은 아는 동생이 그런 말을 했다.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갔는데 그 친구는 평일에 쉬는 날일 때가 많은 스케줄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평일 오후에 은행을 방문했다. 물론 슬리퍼를 끌고 약간 후줄근하게 갔을 것이다. 그래서 대출을 받으려고 하니 은행원이 친구를 보고는 이런 말을 했다.


"그 정도 대출받으시려면 적어도 연봉 000 정도는 돼야 할 텐데요."

"네?? 저 그것보다 많이 버는데요...."

"아... 그러시구나 잠시만요. 재직증명서랑...."


친구는 그 은행원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아직 젊고 평일에 후줄근하게 하고 한가롭게 은행이나 드나드니 그냥 한량 백수로 보였던 거 같다며 웃겼다고 했다.


진짜 돈 많은 사람을 알아보려면 은행원들이 손님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은행원들이 뭔가를 더 적극적으로 권하거나 말하면 일단 그 손님은 돈이 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 뭔가를 요구하는 게 적극적이지 않으면 그 손님은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진짜 돈이 많은 손님은 일단 창구에 앉지 않는다. vip실이라고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팀장님이나 부지점장님 더 나아가면 지점장이 직접 상담을 한다. 그분들은 소위 말하는 큰 손이다. 그런 분들은 언제나 나와는 상관없는 분들이다. 나의 도움은 사실 그들에게는 별로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돈이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주로 나를 찾아오신다. 그들은 나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잘 모른다. 다른 은행에 몇십억씩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기에 난 그저 여기 이 은행에서 일어나는 일만 알 수 있다. 그런데 보통은 한 은행에 돈이 많으면 다른 은행에도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늘 주눅이 든다. 그것은 상대가 나보다 돈이 많아 보이면 항상 드는 느낌이다. 늘 그런 환경에 놓여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돈 앞에서만 서면 늘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하루는 새로 지점에 오신 과장님과 단둘이 밥을 먹게 되었다. 그분은 나보다 2살 많은 남자였다. 키는 한 180이 넘어 보였고, 뽀얀 피부에 둥근 안경을 썼으며, 얼굴은 샤프한 미남형이었다. 공부 엄청 잘 할거 같은 엘리트형 스타일이었다. 언제나 새로 온 사람들과 식사를 하면 어색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이분은 말수가 적으신 분이라 내가 뭔가 말을 걸지 않으면 정말 식사를 하면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밥만 먹을 거 같았다. 그런데 막상 밥을 같이 먹어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꽤 잘하는 분이었다. 역시 사람은 겉으로는 모르는 법이다.     


그분은 밥을 먹으며 나에 대해 궁금한 걸 물어봤다. 늘 그렇듯 그들은 나에게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거며,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물었다. 난 그냥 대충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무슨 글인지 어떤 장르인지 말없이 설령 물어봤다 해도 구체적으로 대답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니라는 것쯤은 그도 나도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의 질문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내 휴가는 얼마나 되는지 월급은 얼마나 되는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사실 그 물음들이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왜 이런 걸 물어볼까 싶었다. 휴가라 해봐야 내가 쓸 수 있는 건 3개월에 딱 하루 주어진다. 그 이외에 가는 휴가는 내 월급에서 하루치 일당이 차감되는 형식이다. 이런 걸 말해주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와 저런 대접받고 어떻게 일할 수 있지. 난 절대 못 해.’     


아닐 수도 있지만 그의 표정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디. 내가 받는 한 달 월급과 내가 한 달에 내는 월세를 들으면 아마도 그는 나를 존경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그런 나를 앞에 두고 그는 이사를 해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서 이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양주에 살고있다. 회사가 있는 성수동까지 아침 출근 시간에는 정말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교통체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늘 지각을 했다. 하지만 좀처럼 이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양주에선 꽤 큰 집에 살고 있나 보다. 하지만 서울 한 복판에 그만큼 크기를 가진 집을 사려고 하니 돈이 문제였던 것이다. 정확한 금액은 생각나지 않지만 아마도 15-20억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죽어도 좁은 곳에선 못 살겠다는 그를 보고 내가 살고 있는 원룸을 보여주면 아마도 폐쇄공포증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같은 곳에서 일하지만 이렇게나 다르다. 은행원과 은행 경비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만큼의 차이가 아닌 양반과 천민의 차이 정도가 되려나.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집 때문에 고민인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물론 그 고민의 크기는 집을 사려고 하는 사람과 월세를 내려고 하는 사람의 차이 정도겠지만 말이다.



새로 들어온 신입 여직원은 올해로 나이가 26살이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도 하기 전에 은행에 입사하게 되었다. 작은 키에 똘망한 눈을 가진 그녀는 생각보다 일을 엄청 잘했다. 약간 억척스럽다고 해야 할까. 하나를 알려주면 적어도 하나는 꼭 습득해서 일을 금세 배웠다. 얼마만큼 노력을 하는진 모르지만 아마도 엄청 많이 노력했을 것이다. 그녀와 1년을 같이 출납업무를 하며 꽤 가까워졌다. 그러다 점심시간에 은행원들과 함께 밥을 먹는데 월급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그녀가 아직 입사한 지 1년도 채 안 된 시기라 신입사원 초봉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26살인 그녀가 일 년에 받는 돈은 자그마치 연봉 4000이 넘었다. 그것도 초봉인데 딱 내가 받는 두 배를 받았다. 그 뒤로 난 딱 그녀가 일하는 반만큼만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지 내가 좀 덜 억울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그렇다고 그녀보다 일을 많이 하진 않았다) 물론 이게 자격지심일 순 있지만 이것은 마치 야생동물들이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문어가 먹물을 뿜는 것처럼 행동하는 자연스러운 본능에 가까운 생각이었다.(어디까지나 생각만)     


점심시간은 직장인들에게 가장 기다리는 시간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은행원들도 다르지 않다. 내가 다니던 은행에선 구내식당이 있지 않아 주변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값은 점심값으로 쓰는 카드를 따로 만들어서 매달 월급이 들어오는 날에 점심값을 입금하는 걸로 했다. 점심값은 직급에 따라 금액을 다르게 했다. 일단 팀장급은 매달 20만 원을 냈고, 과장급은 18만 원 계장은 15만 원 그다음인 나는 10만 원을 냈다. 점심값을 작게 내서 좋기는 했지만 그게 좋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그것은 그만큼 돈을 낼 만한 능력이 안 된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행여나 식당에 가서 5,000원 이상 되는 메뉴를 시킬 때면 괜한 눈치가 보일 때가 있었다. 내가 낸 10만 원으로 먹을 수 있는 금액은 딱 5,000원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나중에는 8,000원짜리 음식도 잘 주문했다. 이렇게라도 돈을 굳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은 눈치가 없는 게 내가 배부르게 살 수 있게 한다는 걸 조금씩 깨달았던 것 같다.


언제쯤이면 돈 앞에서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있을까? 가끔 대출을 받으러 오는 손님들의 발걸음과 그들의 표정을 볼 때가 있다. 마치 죄를 지은 것 마냥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은행 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나에게 대부계가 어딘지 묻는 그들의 물음을 생각하면 그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가슴까지 느껴진다. 그런 손님들에게 조금은 상냥하게 대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싸가지 밥 말아먹은 은행 직원은 손님들에게 아주 투명스럽고, 날카롭게 이야기한다. 그런 은행원을 보면 어디 가서 꼭 갑질을 당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돈은 아무 잘못이 없다. 돈을 대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고,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돈이 없다고 해서 사람을 무시해도 된다는 건 어느  누구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 나보다 약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서 왠지 모를 위로가 되는 게 느껴지면 나조차도 돈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게 당연하다고 여길진 모르지만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그 자체가 나를 슬프게 한다. 적어도 돈 없다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늘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께 더 잘해드리려고 허리를 숙이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나가시는 문을 열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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