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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Oct 13. 2020

비정규직과 반지하의 상관관계

서울에서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

서울에 상경해 가장 처음 얻은 방은 낙성대 근처 작은 반지하 방이었다. 당시 다니려던 회사가 사당에 있었기 때문에 사당과 한 정거장 떨어진 낙성대에 집을 알아봤다. 상대적으로 낙성대역은 사당보다 집값이 싼 편이었다. 신림, 서울대 입구, 낙성대, 봉천, 구로는 관악구로 주로 대학생들 또는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해 사는 청년들이 자취를 많이 하는 곳이었다. 아무리 서울 집값이 비싸다고 하지만 이 주변을 잘 수색해 보면 그래도 나 한 명쯤 몸 누일 곳 있겠지 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방을 알아봤다. 어플로 며칠을 검색해 봤다. 사진으로 봤을 때 좀 괜찮으면 여지없이 보증금이 비싸거나 아니면 월세가 비쌌다. 보통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0-40만 원 정도를 들여야 그나마 조금 괜찮은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이것도 내 기준에서만 그렇다. 하지만 당시 회사에 입사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에게 한 달 월세 30만 원은 너무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월세가 싼 곳을 알아봤다. 그렇게 일주일째 어플만 보다가 드디어 방 한 곳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곳은 역시 낙성대역 근처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방을 보러 갔다. 그동안은 해외에 있거나 대학생 때는 부모님과 같이 갔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공식적으론 이번이 처음이었다.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 차를 타고 함께 방을 보러 갔다. 그곳은 낙성대역 3번 출구에서 걸어서 대충 1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10분을 언덕을 타고 걸어 올라가면 가장 끝에 있는 아주 오래된 빌라였다. 거기 1층 104호, 사실 1층이라고 하지만 반지하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반지하에 살아본 적 없는 나로선 반지하가 얼마나 몸에 해롭고, 나쁜지 그땐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원했던 것은 잘 수 있는 공간과 싼 월세였다. 그곳의 월세는 한 달에 18만 원이었다. 거기에 수도세와 가스세를 합한 관리비 5만 원이었다. 18만 원에 5만 원을 합하면 한 달에 23만 원이었다. 무조건 30만 원보다 싼 곳을 찾길 원했던 나에게 이곳은 반지하와 언덕에 있다는 점만 빼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물도 잘 나왔고, 반지하라고 하지만 언덕 위에 있어서 한쪽에 서 보면 반지하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그냥 1층이었다. 아, 혹시 반지하가 이런 의미에서 반지하였을까? 어쨌든 난 그곳으로 계약했다.  

 


월세는 쌌지만 보증금이 비쌌다. 보증금 1,000만 원을 내야 했다. 사회초년생도 아니었기 때문에 대출도 받을 수 없는 난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보증금을 빌리기로 했다. 그래도 1,000만 원을 선 듯 내어 줄 수 있는 형편이 되는 집안이라 감사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늘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하면 그게 그렇게 낯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옷을 사러 가면 옷의 디자인보다 가격표를 먼저 보곤 했다. 그리고 옷이 아무리 예뻐도 가격이 비싸면 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내 돈이 아닌 엄마 돈, 아버지 돈으로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마음을 늘 불편하게 했다. 그럼에도 엄마에게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나를 더욱 한심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갚아 드려야겠다는 예상할 수 없는 믿음만 가졌을 뿐이다.     


방은 딱 한 명이 쓸 만큼 작았고 또 컸다. 약 5평 남짓한 그곳은 작지만 있을 것 다 있는 곳이었다. 내가 그 방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옵션은 책상과 책장, 가스레인지와 작은 드럼세탁기, 냉장고가 있었고, 옷장과 침대 그리고 에어컨까지였다. 모든 물건들은 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었다. 그래도 내 돈 들이지 않고, 가구며 에어컨에 세탁기까지 있으니 없는 형편에 이 정도면 감지덕지였다. 1층은 총 8개 방이 있었다. 입구부터 끝까지 양쪽으로 쭉 문들이 늘어서 있다.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고시원 같은 느낌이 물씬 났다. 방음은 당연히 잘되지 않았다. 햇볕은 당연히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다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이 큰 서울 바닥에 나라인 작은 인간이 누워서 잘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다.     


가구가 있다고 해도 사야 할 것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밥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접시며, 숟가락, 젓가락부터 시작해 슬리퍼와 빨래를 말릴 행거 그리고 이불과 베개 등 살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게 하나하나씩 구색을 맞춰가야 한다. 정수기가 없으니 물은 편의점에서 매일 사 마셔야 했고, 휴지며, 세제와 섬유유연제, 스킨과 로션 심지어 멀티탭까지 이런 자잘한 것들을 다 사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는 걸 알 수 있다. 초기 비용에 이미 한 달 월세보다 더 많이 들었다. 아직 직장이 없는 나에게 이 정도 소비는 엄청 큰 부담이었다.     



반지하방은 생각보다 살만 했지만 생각보다 불편했다. 일단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자동차 바퀴가 있을 때가 많다. 창문이 있는 쪽이 주차하는 공간이다 보니 차가 출발하면 소리가 바로 귀를 때려 박았고 다음으론 매연이 곧장 창문으로 들어왔다. 그게 가장 불편했다. 그리고 내 방이 밖에서 다 보이는 것이 별로라 창문을 잘 열고 있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자주 피었다. 어쩔 수 없이 창문 대신 대문을 살짝 열어두는 걸로 환기를 시켰다. 그런데 그 대문이 열린 틈을 타 바퀴벌레 한 마리가 기어 들어왔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불을 켜는 순간 방바닥에 검은 물체가 사사삭하고 빛과 같은 속도로 자취를 감추는 걸 눈으로 목격했다.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바퀴벌레가 내 공간을 침범했다. 그 녀석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바퀴벌레 퇴치제를 사 왔다, 그리고 온 방에 다 뿌리고 몇 시간 동안 카페에 나가 책을 읽다 들어왔다. 알고 보니 그 녀석은 화장실 인근에 서식하고 있었다. 정확한 위치는 화장실 문이 나무로 되어 있는데 습하고 오래되다 보니 나무 안이 썩어있었다. 그 틈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빠른 수습 덕분에 바퀴를 제거할 순 있었지만 이젠 방문도 창문도 열 수 없게 되었다.      


반지하는 빛이 들어오지 않아 빨래를 건조하는데 가장 취약하다. 쨍쨍한 햇볕에 빠싹 말려 섬유유연제 향이 가득 묵은 채 내 몸에 닿으면 그 감촉과 향을 참 좋아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 감촉과 향을 느낄 수도 맡을 수도 없게 되었다. 빨래는 늘 눅눅했고, 옷에선 향이 아닌 냄새가 났다. 아무리 섬유유연제를 많이 써도 그 칙칙한 냄새는 옷 속 깊숙이 자리 잡혀있었다. 근처 빨래방에 가서 빨래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빨래를 할 때마다 밖으로 나가는 것도 귀찮고, 돈도 많이 들어서 그냥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있는 방법이 가장 좋았다. 그나마 겨울은 보일러를 트니까 빨래가 빨리 마르는 편이었다.     


보일러를 말하자면 그곳은 중앙 보일러였다. 한 마디로 방마다 보일러가 하나씩 있는 게 아니라 전체가 한꺼번에 묶어져 있었다. 그래서 보일러를 틀려면 밖을 나가 복도 가장 끝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보일러가 작동되었다. 그것도 보일러는 밤 8시부터 새벽 4시까지만 작동되게 되어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따뜻한 물로 씻으려면 8시에 일어나거나 아니면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늦게 일어나는 주말은 아침에 찬물로 샤워해야 했다.     


이런저런 불편한 점이 참 많은 곳이었지만 난 이곳에 1년 6개월을 살았다. 은행 경비원을 시작하고 나서 작은 월급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한 달에 월세가 20만 원 남짓이었기 때문이었다.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했던 내가 살 수 있는 집은 딱 반지하가 제격이었다. 그마저도 부모님이 빌려주신 보증금 1,000만 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야기다. 그마저도 없었다면 아마도 보증금이 없는 고시원 같은 곳에서 지냈을 것이다. 뭐 그런 곳도 내 한 몸 누울 수 있다면 그마저도 감사했을 것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 OCN

 

이런 반지하 방에 가끔 친구나 지인들이 올 때면 약간의 민망함이 함께 밀려온다. 대학 때부터 친구였던 K는 삼성동에서 일했지만 집이 인천이라 출퇴근이 워낙 멀어 가끔 내 자취방에서 자고 갈 때가 있었다. 그는 늘 내 방에서 얻어 자지만 그때마다 불평했다.    

 

“야 웬만하면 반지하는 탈출하자. 너 몸을 생각해야지. 지금은 괜찮아도 나중에 그거 쌓여서 병들어 임마. 좀 비싸도 지상으로 올라가야지 사람 사는 거지. 여긴 진짜 아니야.”     


그리고 한 번은 엄마가 서울을 올라온 적이 있었다. 보증금은 빌려줬지만 아직 내가 사는 집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엄마가 처음 내가 있는 집에 와서는 반지하라는 걸 처음 아셨다. 아마도 엄마는 내가 반지하에 산다는 걸 알았다면 1,000만 원보다 더 많이 빌려주셨을 것이다. 방이 워낙 좁고 반지하가 싫어서 엄마는 자취방에서 주무시지 않고 친구 집에서 잔다고 했다. 뭔가 씁쓸했다. 반지하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비정규직이고 월급도 작았기 때문에 이보다 더 많은 월세를 낼 방법은 없었다. 그땐 투 잡을 뛰어야겠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때라 상황을 더 좋게 개선시키는 게 아닌 그저 그 상황 속에 나를 끼워 맞춰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 반지하방이 있는 곳을 생각하면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 방을 구하려 했던 것, 반지하의 냄새, 바퀴벌레의 출현, 친구의 충고, 엄마의 눈빛, 그리고 그곳에 울려 퍼지던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같은 것들 말이다. 지금은 다행히 반지하를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생활이 그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은 아니다. 난 여전히 비정규직이고, 난 여전히 궁핍하고 여전히 외롭고 차갑다. 서울에서 비정규직으로 지낸다는 것은 어쩌면 서울에서 반지하로 지내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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