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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Oct 14. 2020

원하는 것을 몰라 길을 잃을 때

서울에서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

1년 6개월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은 나에게 도전과 자신감 그리고 용기를 안겨주었다. 단돈 90만 원을 가지고 떠난 호주에서 홀로 먹고 자고 일하며 돈을 모아 지구 반대편인 북미 중미 남미를 6개월간 여행했다. 그 여행은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여행을 하며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사람을 만났고 아름다운 경치와 색다른 문화를 체험하며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왜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지 알게 되었고, 왜 내가 여행을 떠나 왔는지 알게 되었다. 이 시간들이 영원했으면 싶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영원할 수 없었고, 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여행을 하면서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해 보지 못했던 것들도 해 보며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난 답을 찾은 줄 알았다. 그래서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서 마음껏 날개를 펼쳐보고 싶었다. 당시에 난 길을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길이 없는 곳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이 길이 진짜 내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중에 하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3개월간 부산에 지냈다. 그리고 이제 서울로 올라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선 명분이 필요했다. 대학생이라면 서울권에 있는 대학에 붙었다던가. 취업준비생이면 취업이 되었거나 아니면 노량진에서 공부를 한다던가 하는 구체적인 어떤 사건이나 목표가 있어야 했다. 나에게도 그런 게 있었다면 난 길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난 그런 구체적인 것들이 없었다. 아주 막연하게 ‘그럴지도 모를 것이다.’ 혹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같은 것들을 믿고 일단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여행하며 내가 꿈꾸던 것을 실제로 한국에서 실현해 내는 회사가 있었다. 교육회사였고, 난 그 회사에 매료되었다. 여행을 다니며, 자료를 찾아보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도 해 보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회사에서 한 번 일 해 보고 싶었다. 그 회사는 ‘한국 갭이어’라는 곳이었다. 해외에선 수많은 청소년들이 대학을 가기 전 ‘갭이어’를 가진다고 했다. 1년간 쉬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렇게 길을 잃지 않게 가정과 사회가 아이들에게 길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준다. 이것을 알고 난 후 너무 좋은 취지의 시스템이란 생각에 ‘갭이어’를 알리는 이벤트를 개인적으로 준비했고, 여행하며 그것들을 하고 다녔다. 그런 소식이 한국에 있는 ‘한국 갭이어’라는 회사에도 들리게 되었고, 그들은 나를 주시했다.    


서울에 올라와 ‘한국 갭이어’에 찾아갔다. 이미 대표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 회사는 스타트 업이었다. 아직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었다. 아무리 상시채용이라 해도 일을 하려면 그만한 능력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내가 일하고 싶다고 해서 당장 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단 대표님은 내일 아침에 출근을 해 보라고 했다. 그렇게 회사를 갔다.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정식으로 채용된 것도 아니어서, 회사 직원도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단지 대표는 내가 해 보고 싶은 것들을 한 번 정리해 보라고만했다. 그렇게 텅 빈 강의실 같은 곳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모니터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였지?”     


생각해 둔 것들은 많았는데 그걸 막상 해 보려고 하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꾸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몰랐다. 이것저것 끄적여 봤지만 전부 허무맹랑한 소리들  뿐이었다. 갑자기 앞이 막막해졌고, 도망치고 싶었다. 차라리 시키는 일을 하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니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직원들은 전부 점심을 먹으러 나갔고, 나도 점심을 먹으러 갔다. 혼자 근처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을 시켜 먹었다. 다른 직원들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으러 가는 걸 봤다. 뭔가 내가 생각한 회사와는 조금 달랐다. 뭘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점심을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을 거라곤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길을 잃어 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다시 그곳으로 출근을 했다.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니 너무 막막했다. 그러다 결국 점심시간 때 대표님에게 어디 급히 갈 곳이 있다고 말하고 회사를 나왔다. 그 후로 그 회사는 가지 않았다. 대표에게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도망쳤다. 그냥 내가 뭘 원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철저히 길을 잃었다.


회사를 나와 간 곳은 강남 교보문고였다. 그냥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교보문고로 갔다. 그리고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서점 내 의자에 앉아 몇 시간이고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 복잡했던 머릿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만큼은 자유로웠다. 난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스스로 길을 잃어버리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에 올라오는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이 길은 애초에 없었던 길이었을까? 왜 꼭 서울이어야 했을까? 왜 그때 깔끔히 포기하고 부산으로 내려가지 않고 버텼을까? 아직 끝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길을 찾았다는 말은 아니다. 여전히 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고 있다. 여전히 서울 한구석에서 내 손으로 죽을 용기는 없으니 그저 시간이 얼른 지나가 늙어 죽을 때가 되길 기다릴 뿐이다. 삶을 살아간다는 말보다는 그저 삶을 버텨낸다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거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더 현명했을까? 왜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는 것이 더 미덕이라고 배워왔을까? 끈기가 없고, 뭐든 잘 포기하는 내가 왜 서울에서의 삶은 포기하지 않고 지금껏 버티고 있을까? 어쩌면 이미 마음속에선 수십 번이고 포기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없던 길이 저절로 찾아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망쳐 보니 도망친다고 해서 도망쳐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이것이 올바른 길인지 아니면 막다른 길인지 모르지만 그저 길이 앞에 놓여 있으니 걷고 또 걷는다. 이미 잃어버린 길이라면 그냥 걸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나에겐 길이란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거라면 그냥 걸어보자. 끝에 뭐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냥 끝까지 가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무것도 없으면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자. 대신에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걸으면서 느끼고 생각하고 만나고 즐겼던 모든 것들일 테니까. 그것들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닐 거라고 믿으면서 그냥 걸어보자. 길은 원래 없다. 자꾸자꾸 걸으면 그게 길이 되는 것이다.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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