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1도 모르던 내가,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된 건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대단한 용기였다. 그때는 이 길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래 꼭 가자, 그리고 잘 해내자. 그렇게 시험을 준비하고 입학 허가서를 받아내어 부모님을 설득했다. 하지만 전산 실수로 입학 허가서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사전 어학연수 기간 없이 학기 시작 2주 전 미국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어학연수를 겸하며 실제 학교 생활에 뛰어드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쉬운 대화도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는데, 어려운 학교 수업이라니... 매 수업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행이도 나에게는 마음의 휴식처가 있었다. 바로 '춤', 그 당시 린디합(Lindyhop)이라는 스윙댄스의 한 장르를 추고 있었는데, 수소문하여 스윙댄스 클럽을 찾아갔고, 어렵지 않게 외국 댄서들과 어울리며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느리게 말하고 이해하는 나를 기다려줄 친구들이 없었는데, 댄서들은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한인 커뮤니티보다 춤 친구들과 어울리며, 온종일 영어에 노출되는 환경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학생활에 잘 적응해 가고 있을 무렵, 한국에서 함께 춤을 추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스윙댄스의 한 장르 중에 웨스트 코스트 스윙 댄스(West Coast Swing Dance)라는게 있어, 한국에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미국에 있는 동안 배워와, 너랑도 잘 맞을꺼야.' - 그렇게 맨하튼의 한 댄스 스쿨에 등록하여 한 달간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 댄서 친구가 제안을 했다. '저기 보스톤에서 열리는 댄스 이벤트가 있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마침 방학이었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바로 간다고 대답해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놓라하는 세계 챔피언들의 멋진 공연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거다, 내 인생 춤.'
틈틈히 춤을 즐기며 외롭지만 보람된 유학 생활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졸업이 다가왔다. 계절 학기도 듣고, 공모전에 응시도 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졸업하기까지, 연고지도 없는 외로운 타지에서 나를 버티게 해 준 건, '춤'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맘껏 즐겨보자. 3개월을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춤을 췄다. 많이 배우고 대회 경험을 쌓고 강사 자격증도 땄다.
한국에 돌아오니 함께 린디합을 추던 댄서들 중 이 춤에 관심있는 댄서들이 모여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문화를 들여온다는 것, 새로운 걸 알린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10년 1월 웨스티 코리아(Westie Korea)라는 동호회를 정식 오픈하고 강습을 시작했다. 막 초년생이 된 내가, 2가지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도와주는 사람들의 배려를 받으며 유지해갈 수 있었다.
그렇게 평일이 일을 하고, 주말에 강습하는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즐거움이 부담으로 다가와, 강습을 잠시 쉬기로 했다. 처음부터 함께해 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마음 편히 휴식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주말에 달콤한 늦잠과 휴식보다, 나에게는 춤이 앞으로 나아가게하는 힘을 준다는 것을 말이다. 체력적으로 몸을 덜 쓰는게 휴식이 아니었다. 내가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나의 마음 속 열정, 그것을 하는 것이 힐링이었다. 내가 있을 곳은 바로 여기다. 이게 나의 아이덴티티구나 -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 앉아 조용히 데이터를 분석하는 나, 하지만 주말에 내가 좋아하는 옷을 꺼내 입고 음악에 몸을 맡기며 사람들과 교감하는 이 춤에서 진짜 내 모습이 보인다.
내 마음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내가 모든 걸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 바로 '춤' - 이 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즐겼으면 한다. 빡빡한 세상에서 내가 조금 더 특별할 수 있도록, 함께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