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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오 Oct 13. 2024

'공장'이라는 소우주

아픈 눈을 씻고 주위를 돌아봤다. 오래된 울음이었기에 눈가는 짓물러 있었다. 그래서 더 또렷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사람들의 미세한 감정변화, 그걸 드러내고 해결하는 제각각의 스킬 같은 거. 나는 어떤 말을 해야 내 상처가 낫는지는 몰라도, 무슨 말이든 해야 낫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글쓰기를 전공한 덕분에 내게 떠드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 한달이 넘었을 무렵, 한 팀에만 서른 명이 넘는 공장에 취업했다. 다시 한번, 삶에 제대로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고정수입과 매일 출근하는 루틴이 필요했다. 나는 매일 아침 6시 전후로 기상한다. 공장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공장의 위치는 인근에 편의점 하나 없고 사방이 공장뿐인 시골이었다. 그곳에서 식사 두끼를 모두 해결하고 하루의 절반 이상을 지내지만 생각보다 답답하지는 않다. 긴 시간 일을 쉬며 주변사람들에게 짐이 되었던 나의 '업보' 정도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근속할수록 과오로부터 멀어지고 나의 내면이 비워지는 기분마저 든다. 겨우 6개월차 주제에.


하지만 팀의 평균 나이가 사오십대인 여초 직장에서 6개월차 막내로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기구하다. 지금까지 직장에서 눈물 흘린 횟수가 기억나는 것만 네다섯 번이다. 흔히들 공장 사람들 텃새가 심하다고 하는데 사무직, 서비스직 모두 경험해본 나로서는 이곳도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데다. 사람이 많으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확률이 높아진다고 본다) 모든 게 좋지만도 나쁘지만도 않다. 애초에 신입사원 인사를 시키는 자리에서 팀장님은 처음엔 서툴러도 배려하고 가르치며 함께 가야 다같이 편해지는 거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팀내 분위기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더라도 분명 인상 깊은 말이었다.


내가 공장에 취업한 이유는 간단했다. 몸 쓰는 일을 좋아하는 편이고 하루 빨리 돈벌이를 해야 하는데 면접당일 합격했다는 거. 여기서 긴 시간 일해야겠다는 목표 같은 건 없었다. 한달 벌어 한달 먹고 사는 것으로 족했다. 경제적으로 계획성이 없기도 하지만 그보다 나는 나에게 큰 기대감을 가지지 않는 태도가 나를 살린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번 목표가 생기면 바로 실행하고 달성해야 하는 집요함이 스스로를 얼마나 궁지로 모는지 많이 경험해봤으니까. 기초수급생활자로 지낸 1년 3개월 중 단 하루도 빠짐 없이 스스로를 힐난했으니까 이제 그런 짓은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내 편이 되어야겠다. 자신에게 이 한가지만 잘 해주어도 큰 힘이 될 거라고 믿게 됐다.


우선 공장(공장식으로 찍어낸다는 말처럼)은 짧은 시간 안에 안정적인 품질의 상품을 대량으로 출고해 손해는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곳이다. 때문에 시간 안에 몇 명이 얼만큼의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가를 미리 계획하고 어떻게든 그 머릿수를 채운다. 사람이 부품이 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21세기지만 기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많은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면 사람의 손을 쓴다. 입사 초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이걸 아직까지 사람이 해?' 였다. 중국에서는 전쟁 장면을 촬영할 때 CG 기술을 쓰는 것보다 실제 사람을 대거 고용하는 게 더 저렴해서 아직도 후자의 방식을 선호한다는 걸 알고 기함했던 때 들었던 기분과 다르지 않았다.


며칠 전은 월급날이었다. 통장에 찍힌 급여 중 단 돈 만원도 만져보지 못하고 스마트폰으로 모조리 이체하면서, 기술보다 싼 인건비 덕분에 한달을 또 살아냈구나 절감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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