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투스(habitus)라는 단어는 생소하다. 습관을 뜻하는 habit과 비슷하게 생겼으니 대충 습관을 뜻하는 것인가 추측은 하는데 그 이상은 잘 모르겠다. 이 책 아비투스에서는 이 단어를 이렇게 정의한다.
"세상을 사는 방식과 태도."
또는,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계층 및 사회적 지위의 결과이자 표현.”
이 책을 지은 작가 도리스 메르틴은 독일의 세계적 컨설턴트로, 본인이 20년 동안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만나본 결과 성공한 삶과 개인의 품격은 돈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성공과 품격을 결정하는 것은 아비투스라는 결론을 내린 후 이 책을 지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비투스라는 단어를 도리스 메르틴이 처음 만들었을까? 그것은 아니다. 아비투스라는 개념은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그의 대표적인 저서 [구별짓기]에서 처음 제시하였다.
아비투스의 분석적 정의는
“발생의 원칙으로서, 실천과 표상을 조직하는 요인으로서 아비투스는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의식하지 않은 채 객관적으로 자신의 목표에 상응하며, 그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동작들을 순간적으로 제어하기에, 주어진 규칙들에 복종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작동은 어느 정도 통제된 성격과 규칙성을 갖는다. 이 모든 것이 행위를 조화시키는 지휘자가 없더라도 집단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라고 하는데 대체 이게 무슨말인가.
보다 쉬운 접근을 위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에서 보인 예시에 따르면 이렇다. 문화적 아비투스는 사람들의 취향을 통해서 드러나는데, 가정과 학교에서 전수되는 문화적 취향은 어떤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과정에서 그가 속한 계급에 따라 차별적으로 드러난다고 하며, 이런 아비투스 형성 과정이 권력과 계급에 의한 체계적인 불평등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일단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부르디외의 철학서를 읽어봐야 하겠지만, 지금은 도리스 메르틴이 왜 굳이 이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끌고와 사람들의 성공과 품격에 대해 논하는지가 더 궁금하므로 도리스 메르틴의 ‘아비투스’를 이야기 해보겠다.
이 책의 서문부터 굉장히 자극적이다.
한국어판 서문: 아비투스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폭로한다.
이 얼마나 무례할만큼 팩트 폭격적인 문장인가.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방식, 내가 먹는 습관, 생각하는 방향, 행동하는 몸짓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여실히 보여준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내 행동이 그동안 볼품없던 적이 있던가를 한 번 돌아보며 되짚어보게 된다.
저자는 아비투스가 삶, 기회, 지위를 결정한다고 말하면서 아비투스를 7가지 분야로 나눠서 이야기한다.
1. 심리자본- 최상위층의 심리적 자세, 회복탄력성, 관대함, 올바른 품성 등
2. 문화자본- 가장 갖기 어려운 자본, 최상위층은 인생에서 무엇을 즐기는가
3. 지식자본- 최상위층은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가
4. 경제자본- 슈퍼리치가 다루는 돈의 방식
5. 신체자본- 최상위층은 신체자본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6. 언어자본- 내가 쓰는 언어가 내 지위를 드러낸다. 최상위층의 말하는 법.
7. 사회자본- 주변 사람이 당신을 완성한다. 위로 도약하려면 관계를 만들어라. 의도없이 담백하게.
이쯤 되면 이 책은 그냥 아비투스가 아니라 최상위층의 아비투스를 연구한 책인가 싶다.
하지만 이 책에서 최상층의 아비투스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크게 사회 계층을 최상층, 상위 중산층, 하위 중산층, 하류층 이렇게 구분을 지어 설명을 한다.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각 계층의 아비투스를 비교하는데 읽다보면 이러한 구별짓기, 계급 구분에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이 최상층의 아비투스를 가지지 못했음을 느끼기 때문인데,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말하는 최상층, 슈퍼리치는 비율상 얼마 되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산층 그 이하에 속할 것이므로, 대부분의 독자 중 계급적 구분짓기가 불편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거부감을 지니면서 이 책을 읽어나갈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지만 이 책은 상류층으로 태어나지 못한 사람에게도 그들만의 아비투스를 알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책이다. 어쩌면 상류층끼리의 암호로만 머물러 버릴지도 몰랐던 그들만의 세계를 저자가 많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암호, 그들만의 아비투스는 어쩌면 그들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워 인지도 못했을텐데, 제3자의 입장에서 비교적 객관화하여 정리를 해주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만약 내가 상류층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었더라면 두가지로 반응했을 것 같다.
1.내가 이렇게 반응 했었구나.
혹은,
2. 이렇게 우리만의 아비투스를 책으로 공표해도 되는 것인가?
그러나 확실한 건, 상류층의 아비투스가 그들만의 비밀 암호였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이게 책으로 친절하게 설명되어 만인에게 오픈이 되더라도 그들의 아비투스가 모든 계층에게 파급되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예를들어 상류층은 긴장된 상황에 처했을 때, 긴장감을 드러내는 것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긴장한 모습을 최대한 감추려고 노력할 것이며, 마찬가지로 불평도 최대한 자제한다고 한다. 만약 이 구절을 읽은 독자가, ‘아 그렇구나, 상류층처럼 반응하려면 긴장한 모습은 감추고 불평도 하지 말아야 하겠군.’ 하고 생각은 하겠지만, 정말 긴장된 상황에 닥쳤을 때 긴장감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으려면 그건, 그런 상황에서 다년간 노출되고 숙련이 되어야 가능한 일 일테고, 마찬가지로 불평하는 습관도 하루아침에 고쳐지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자본에서는, 이 문화적 아비투스가 가장 갖기 어려운 자본이라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신흥부자와 뼈대 깊은 부자의 결정적 차이를 만드는 자본중의 하나이기 때문이고, 아무리 돈이 있어도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자본이기 때문이다. 고급 취향, 고급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친 문화적 소양이 아니고서야 구축되기가 힘들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뜻밖의 틈을 발견했는데, 대부분 최상층, 슈퍼리치가 되기 위한 조건들이 지식적, 경제적, 명예적 자본으로 돈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얻을 수 있는 아비투스라면, 이 문화적 자본이야 말로 돈이 수퍼리치만큼 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신의 의지로 구축할 수 있는 아비투스이기 때문이다. 이거야 말로 자신 스스로 격을 올릴수 있는 부분중 하나일텐데, 또 이와 비슷한 자본이 신체자본이다. 하지만 신체자본이 무조건적으로 건강한 신체 상태가 아니라, 건강한 상태를 넘어서 에너지와 활력이 넘치는 상태임을 감안하면, 이것 역시 어느정도 마인드세팅도 필요한 자본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정말 개선할 의지가 명백해야만 상위로 도약하여 쟁취할 수 있는 자본은 사회자본이다. 쉽게 말해 인맥,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이는 출신과도 관계있지만, 이 출신과 사회적 지위 역시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어느 정도 상승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또한 멘토를 잘 만나 그들과의 관계를 잘 이어 나가면 또 얼마든지 인맥 구축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회자본은 어쩌다 한번 필요할 때 전화하는 사이여서는 안되며 언제든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친밀감을 계속 형성해 놓아야 한다는 조건하에 가장 사교성이 필요하며 혼자만의 힘으로 해낼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전제로 까다로운 자본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어쩌면 ‘상류층의 아비투스는 이러하다, 다들 이것을 터득하여 상류층이 되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책의 머리에서도 보통의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이처럼 유익한 실용서도 없을 것 같다. 반대로 이런 구별짓기가 싫은 사람들에게는 왜 평등한 21세기에 이런 고리타분한 관점을 제시하는가 하고 반감을 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반감을 지닐 독자에게 조차도 자신이 속하지 않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은 어떠한 아비투스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신선하고 유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