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언니가 참 좋았다. 언니 옷을 맘껏 입을 수 있어서 였는지도, 나보다 항상 입학이 빠른 언니한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사실 언니를 좋아한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언니가 좋았고 늘 닮고 싶었다.
한 번은 언니가 친구를 만나러 갈 때 나를 데리고 간다고 해놓고 몰래 나간 적이 있다. 그때 너무 서러워서 두 시간 동안 내내 울었었던 기억이 있다. 얼마나 서러웠던지 그날 울었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 품에 안겨 한참을 울만큼 나는 정말 뭐든지 언니랑 함께하고 싶었다.
언니는 내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내가 하지 못하는, 안하는 많은 것들은 한 언니였다. 말없이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나와 달리 언니는 그날 있었던 일들을 엄마 아빠한테 재잘대며 말하기 일쑤였고, 무심한 나와 달리 언니는 엄마 아빠가 집을 비운 날이면 항상 어디 오는지 안부를 물었고, 엄마가 밥을 해놓고 간 날은 아무리 먹고 싶어도 배달음식을 시키지 못하게 했다.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이 언니의 노력이었음을, 섬세함이었음, 사랑이었음을 언니가 떠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런 언니가 결혼을 했다. 언니의 결혼은 평온하고 평범했던 우리 집에 오랜만에 찾아온 큰 일이었다. 언니가 결혼을 하는 건지 내가 하는 건지.. 언니 외에 가족들이 준비해야 될 것도 뭐가 그리도 많은지..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언니의 결혼을 더 실감했다. 짐도 정리하고 가구도 사고해야 한다며 언니는 결혼식보다 몇 달 먼저 집을 떠났다. 30년을 넘게 산 집을 떠났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적은 짐이었다. 조그만 트럭도 다 채우지 못했다. 그런데 언니가 떠난 그 자리는 왜 그렇게 큰 건지.. 언니를 생각보다 덤덤하게 떠나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공허함이 밀려왔다. 언니가 대학 때 자취하러 집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텅 빈 언니의 방에 홀로 앉아 한참을 울었다.
언니의 부재를 실감하고 슬퍼하고 인정하는 시간을 거쳐 우리 세 가족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재미있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 김치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내려는데 문득 희수야 뭐 꺼내? 하는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는 여기 없는데 분명 그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휙 돌렸는데 언니는 없었다. 그러고 아 맞다 언니 없지 하고 과일을 꺼내려는데 갑자기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언니가 보고싶고 생각나는 밤이 지나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언니가 없으니 어때? 허전해? 슬퍼?"
"아니 뭐가 슬프니 걔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엄마 그럼 언니 안보고싶어?"
"보고싶지"
"언니 오는 날 기다리고 있어?"
"응 그날만 기다리지"
언니랑 놀고싶어 한참을 서럽게 울던 어린 나도, 이야기 좀 나누고 소통하자던 언니를 무심히 지나쳤던 나도 여전히 언니의 흔적과 함께 살고 있다. 언니가 행복하기를, 언니가 남긴 흔적이 아주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