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수 Aug 03. 2020

그녀의 부재 그리고 흔적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언니가 참 좋았다. 언니 옷을 맘껏 입을 수 있어서 였는지도, 나보다 항상 입학이 빠른 언니한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사실 언니를 좋아한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언니가 좋았고 늘 닮고 싶었다.


한 번은 언니가 친구를 만나러 갈 때 나를 데리고 간다고 해놓고 몰래 나간 적이 있다. 그때 너무 서러워서 두 시간 동안 내내 울었었던 기억이 있다. 얼마나 서러웠던지 그날 울었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 품에 안겨 한참을 울만큼 나는 정말 뭐든지 언니랑 함께하고 싶었다.


언니는 내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내가 하지 못하는, 안하는 많은 것들은 한 언니였다. 말없이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나와 달리 언니는 그날 있었던 일들을 엄마 아빠한테 재잘대며 말하기 일쑤였고, 무심한 나와 달리 언니는 엄마 아빠가 집을 비운 날이면 항상 어디 오는지 안부를 물었고, 엄마가 밥을 해놓고 간 날은 아무리 먹고 싶어도 배달음식을 시키지 못하게 했다.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이 언니의 노력이었음을, 섬세함이었음, 사랑이었음을 언니가 떠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런 언니가 결혼을 했다. 언니의 결혼은 평온하고 평범했던 우리 집에 오랜만에 찾아온 큰 일이었다. 언니가 결혼을 하는 건지 내가 하는 건지.. 언니 외에 가족들이 준비해야 될 것도 뭐가 그리도 많은지..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언니의 결혼을 더 실감했다. 짐도 정리하고 가구도 사고해야 한다며 언니는 결혼식보다 몇 달 먼저 집을 떠났다. 30년을 넘게 산 집을 떠났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적은 짐이었다. 조그만 트럭도 다 채우지 못했다. 그런데 언니가 떠난 그 자리는 왜 그렇게 큰 건지.. 언니를 생각보다 덤덤하게 떠나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공허함이 밀려왔다. 언니가 대학 때 자취하러 집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텅 빈 언니의 방에 홀로 앉아 한참을 울었다.


언니의 부재를 실감하고 슬퍼하고 인정하는 시간을 거쳐 우리 세 가족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재미있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 김치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내려는데 문득 희수야 뭐 꺼내? 하는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는 여기 없는데  분명 그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휙 돌렸는데 언니는 없었다. 그러고 아 맞다 언니 없지 하고 과일을 꺼내려는데 갑자기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언니가 보고싶고 생각나는 밤이 지나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언니가 없으니 어때? 허전해? 슬퍼?"


"아니 뭐가 슬프니 걔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엄마 그럼 언니 안보고싶어?"


"보고싶지"


"언니 오는 날 기다리고 있어?"


"응 그날만 기다리지"


언니랑 놀고싶어 한참을 서럽게 울던 어린 나도, 이야기 좀 나누고 소통하자던 언니를 무심히 지나쳤던 나도 여전히 언니의 흔적과 함께 살고 있다. 언니가 행복하기를, 언니가 남긴 흔적이 아주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