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엄마의 생일이라 가족이 모이게 됐다. 엄마는 오랜만에 보는 언니를 위해 더운날 땀을 흘려가며 여러 밑반찬을 만들었다. 그냥 사서 먹게 하면 되지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만드냐는 내 물음에 너희 할머니는 엄마 자취할 때 밑반찬 30가지는 만들어서 시골에서 내려오셨다며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내리 사랑이던가. 할머니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했는지 알기에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는 농부인 할아버지 곁을 떠나고 싶어 시집오고 나서 단 한번도 짐을 풀지 않으셨다고 한다. 언제든 도망갈 수 있게 준비를 해둔 셈이다. 그렇게 100일이 지났는데 농사일을 하다가도 할머니가 혹시 떠났을까봐 집을 수시로 들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이내 마음을 돌리셨다고 한다. 그렇게 5남매를 두셨고 엄마는 셋 째 딸로 자랐다.
엄마는 할머니의 자랑이었다. 내가 항상 할머니한테 엄마는 어떤 딸이었냐고 물으면 똑똑한 딸이라고 대답하셨다.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밭일 시키려고 찾으면 늘 안보였는데 집에 가보면 항상 옷장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고 했다. 얄밉지 않았냐는 나의 물음에 할머니는 그래도 착하고 공부도 잘했다며 흐뭇해하셨다.
자신이 배우지 못한 설움이 있으셨던 할머니는 그래서인지 똑똑하고 총명한 셋 째 딸을 유독 예뻐하고 사랑하셨다. 어렸던 내가 이런게 사랑이구나 하고 느낀 순간이 여럿 있었다. 할머니는 우리집에 놀러 오실 때면 꼭 주방기구를 다 새걸로 사서 바꾸셨다. 어린 마음에 시장 가는게 귀찮았던 나는 부엌에서 주방기구를 다 꺼내며 이것도 저것도 다 얼마전에 엄마가 산거라고 말했다. 내 말은 통할리 없었고 할머니는 너희 엄마는 글 쓰는 사람이라 손에 무리가 가면 안된다며 내 눈엔 다 똑같아 보이는 냄비를 몇번이고 들어보고 제일 가벼운 걸 찾으셨다.
한번은 할머니가 밥을 차리실 때였다. 엄마는 상 차리는 걸 도우며 뭔가 이상했는지 할머니한테 왜 장서방 밥만 찬 밥이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밥이 좀 모자라서 점심 때 남은 찬밥과 섞었다고 대답하셨다. 엄마는 아니 밥이야 또 하면 되지 일하고 온 사람 찬밥을 주면 어떡하냐 했고 할머니는 멋쩍어 하시며 말씀하셨다.
"그래도 뜨거운 밥은 널 먹이고 싶은데 어쩌니"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서 였을까. 아님 그 순간 느낀 감정을 헤아리고 있어서 였을까.
시간이 흐르고 할머니는 여든 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엄마는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이미 차게 변한 할머니의 몸과 얼굴을 어루만지며 엄마는 하염없이 '엄마 죄송해요'만 외치며 울었다. 후에 엄마는 내게 고백했다. 사랑을 받기만 했지 돌려드리질 못했다며 효도 하지 못해 죄송하고 후회된다고.
퇴근하고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을 때면 종종 떠올린다. 할머니가 멋쩍게 웃으셨던 그날, 엄마 앞에 놓인 밥그릇에 담긴 건 따뜻한 밥이 아니고 사랑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