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쓰기 위하여 천쉐
지난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천쉐 작가의 <오직 쓰기 위하여>(2024년 9월 출간)라는 책을 만났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는 대만 작가의 책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대만 작가의 북토크가 열리고 있었고 사람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중국어를 공부하는 아이를 위해 원서로 된 책을 구입할까 하고 대만 책 코너를 찾았다.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이 원서는 전시용이고 대신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번역본만 살 수 있다고 했다. 잠시 전시용 책을 둘러본 후 구매 가능한 번역본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내 빨간색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멈추고 책을 조금 펼쳐보니 글쓰기에 관한 내용인데 술술 읽히는 것이 맘에 들었다. 그렇게 구입해 온 책이 바로 천쉐 작가의 <오직 쓰기 위하여>이다.
▲오직 쓰기 위하여 천쉐 작가(글항아리)
글쓰기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의 소설가>,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 <글쓰기 상담소>, 정여울 작가의 <끝까지 쓰는 용기> 책들을 읽어보았다. 읽으면서 매번 다시 다짐하게 되는 글쓰기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50대인 지금 작가를 꿈꾸는 나에게 글쓰기는 놓을 수 없는 내 삶의 한 부분이기도 하기에 글쓰기 책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천쉐 작가는 대만 작가로 <악녀서>라는 퀴어 소설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해보지만 책을 읽어보니 작가가 얼마나 글쓰기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30년 경력의 작가는 긴 세월 흔들리지 않고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자신만의 글쓰기 원칙을 세세하게 알려준다.
글이 써지지 않으면 책을 읽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글을 쓰기로 한 시간에는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하고 싶다. 일기를 써도 상관없다. 책 읽기는 사실 너무 재미난 일이다. 남이 쓴 좋은 책을 읽는 것이 써지지 않는 책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즐겁다. 그런데 그럴수록 자신의 책은 더 멀리하게 된다. 멍하니 앉아 있든, 아무렇게나 키보드를 두드리든, 자동적으로 무심코 뭔가를 써나가든 상관없다. 더도 말고 딱 한 시간만 버티는 거다. 운동선수의 훈련과 마찬가지다. 한 시간을 더 버틴 것은 곧 한 시간을 더 연습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글쓰기를 위해 한 시간을 더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 042
이 책에서 작가는 오직 글쓰기를 최전선에 두라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우선순위의 최상은 언제나 글쓰기에 두는 것이다. 그리고 무조건 하루에 한 시간씩은 글을 쓰라고 한다. 그 글이 나중에 수정되거나 아니 아예 다 지워버려야 하는 글일지라도 우선 쓰고 보자고 한다. 쓰면서 고치고 쓰면서 성장해 나가라고 조언한다.
나를 돌아보면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해 책을 읽고 나서 글쓰기를 하거나 간혹 이야기 소재가 생기면 드문드문 글쓰기를 하고 있는데 이 책을 읽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뭔가 쓰고자 한다면, 글쓰기를 하고자 한다면 오직 쓰기만 바라보고 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오직 한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해야지 여러 방면에 에너지를 쏟다 보면 정작 제일 중요한 글쓰기가 후순위로 번번히 밀리게 된다. 그런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 절제된 생활을 루틴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글을 쓸 때 나는 자신을 천천히, 깨끗이 비운다. 내 모든 감정, 내면의 느낌, 여자친구와 다툰 일이나 여자친구의 불평, 생활의 크고 작은 불편, 신체적인 것까지 모두 싹 털어낸다. 책상 앞에 앉아 내 원고를 마주하면 나는 바로 글쓰기 사람이 된다. 자신을 가장 작고 낮게 만들면서 소설을 안착시키는 하나의 그릇으로 서서히 변모시켜 나갔다. - 096
작가는 소설을 안정되게 만들기 위해 생활의 규칙성과 절제된 생활을 강조한다. 머릿속에 생각과 감정을 모두 털어내고 원고를 마주하는 순간 자신을 잊고 오직 글쓰기 사람으로 변모해야 한다.
우리는 가장 강한 사람이 될 필요도 없고, 가장 뛰어난 사람, 최고의 천재가 될 필요도 없다. 그 눈부신 타이틀이나 칭호는 제쳐두고, 농부처럼, 장인처럼 자기 분야에 부지런히 갈고닦으며 피나는 노력을 하자. 오랜 노력 끝에 생겨난 미세한 차이를 보면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면서 그 단계에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작품을 써내기만 한다면 스스로에게 떳떳할 것이다. - 141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그저 오늘의 글쓰기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오늘 쓸 수 있는 가장 최상의 글쓰기를 빠뜨리지 않으면 된다. 그 하루하루가 모여 결국 우리는 글을 완성할 것이고 한걸음 더 나아진 나의 글과 마주할 것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글쓰기에 대해 현실적인 다양한 조언을 쏟아낸다. 작가 자신이 오랜 시간 홀로 글을 쓰면서 체득한 글쓰기 비법이다. 작가라는 그 길이 참으로 어둡고 빛이 보이지 않는 길이지만 매일 수련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 지금 자리에 썼을 것이다. 작가 지망생으로서 이 책은 정말 혼자 아껴보고 싶을 정도이다.
글쓰기도 운동선수만큼 치열한 연습이 필요하다. 책을 덮고 나만의 글쓰기 루틴을 위해 실천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우선 매일 한 시간씩 글쓰기, 분량은 1000자를 넘기지 말기, 매일 인물 한 명씩 관찰해서 묘사하기(우선 주위 사람들 묘사해 보기), 고전 필사하기, 그렇게 쓴 글로 단편소설을 완성해 보는 것이다.
무엇이라도 끄적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이는 가히 희망적이다. 자신만의 글로 꽃을 피우고 싶은 나와 같은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지금 "글"이라는 씨앗을 땅에 심고 열심히 물을 주고 있다. 씨앗이 싹트는 날을 기다리며 우직하게 쓰다 보면 언젠가 성장해 있는 나무를 보게 되지 않을까.
조금 수정된 글이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