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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성 Aug 19. 2020

무엇에 '인셉션' 당하는가, 무엇을 '인셉션' 하는가

인셉션 (Inception, 2010) 리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글을 보고 당신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무엇인가. 떠올리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코끼리가 생각나게 된다. 이렇게 그림까지 보여준다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생각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머리에 떠오른 코끼리는 어떤 코끼리인가. 아마도 다른 코끼리가 아닌 이 그림 속 코끼리가 생각났을 것이다. ‘인셉션(Inception)’은 이렇게 시작된다.


코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생각은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기에
가장 생명력이 강한 기생충이 무엇일까요? 박테리아? 바이러스? 회충? 생각입니다. 생각이 한 번 머릿속에 박히면 제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완전히 형성되어 이해된 생각은 남아있죠. 머릿속 어딘가에.

    

    주인공 코브는 '표적'이 되는 타인의 꿈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는 작업인 '디셉션'에 숙련된 '추출자'다. '설계자'의 꿈속에 '표적'을 불러들이면 평소 '표적'의 생각들이 '설계자'의 꿈속에서 무의식의 투영체로 나타나게 되고, 코브는 이런 투영체를 훔쳐 의뢰인에게 넘기는 작업을 한다. 위의 대사는 코브가 '표적' 사이토의 생각을 추출하기 위한 만남에서 한 말로, 그에게 '디셉션'에 대항할 수 있는 훈련을 해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이미 '디셉션'에 대한 훈련을 받은 사이토는 속지 않고, 결국 코브는 사이토의 생각을 훔치지 못한다.


(왼쪽부터) 사이토 (와타나베 켄) / 로버트 피셔 (킬리언 머피)
후회에 가득 차 혼자 늙어 죽길 기다릴 텐가?

    

    그렇게 일이 실패로 돌아간 후 체념하는 코브에게 사이토는 역으로 의뢰를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뢰가 아니었다. 사이토는 코브가 경쟁사인 '피셔-모로우' 에너지 기업의 후계자이자 '표적'이 되는 로버트 피셔에게 생각을 추출하는 '디셉션'에 반대되는 개념인 생각을 심는 '인셉션'을 할 것을 의뢰한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우리의 머리는 끊임없이 생각의 근원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 때문에 내가 한 생각이 아니라 남이 심은 생각을 마치 내가 한 것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앞서 말한 '코끼리를 떠올리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보고 당신이 떠올린 코끼리는 당신의 생각이 아닌 것처럼.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은 코브의 동료 아서가 이러한 사이토의 제안은 실행이 불가능함을 설명하고자 한 말이다.

    

    그러나 코브는 이를 받아들인다. 여기에는 사이토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있기 때문이다. 아내 맬의 유력한 살해 용의자인 코브는 현재 사랑스러운 두 아이 필리파와 제임스가 기다리는 집이 있는 미국에 입국하지 못하는 떠돌이 신세다.


    언젠가 코브가 맬과 함께 꿈속에서 여러 세월을 보낸 뒤 깨었을 때였다. 맬은 코브가 심어 놓은 작은 생각 때문에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맬은 아이들에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꿈에서 깨어야 하고, 꿈에서 깨기 위해선 자신이 죽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혼기념식 날이면 찾았던 호텔에서 맬은 코브아게 아이들에게 돌아가고자 함께 뛰어내릴 것을 제안한다. 아연실색한 코브가 맬을 설득해보지만, 그녀는 결국 뛰어내리고 현장에 함께 있던 코브는 살해 용의자로 몰린다. 그리고 코브는 자신이 심은 생각 때문에 아내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사이토는 코브의 이런 신세를 알고 그에게 자신이 혐의를 풀어줄 수 있다며 위의 대사와 함께 '인셉션'을 제안한다. '그때 제안을 받아들일걸'하며 평생 머릿속에 후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싫었기 때문일까. 결국 사이토의 제안을 수락한 코브는 '인셉션'을 함께 할 팀을 꾸리는 일을 시작한다.


(왼쪽부터) 아리아드네 (엘렌 페이지) / '위조꾼' 임스 (톰 하디) / '약쟁이' 유서프 (딜립 라오)

    코브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꿈의 '설계자'를 찾는 일이었다. '설계자'는 꿈의 주인으로서 '디셉션' 및 '인셉션'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설계자'는 불러들인 '표적'이 꿈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꿈을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코브는 장인어른이자 건축학 교수인 마일즈(마이클 케인)에게 사이토의 제안을 이야기하며 '설계자'가 돼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마일즈는 생각 끝에 더 나은 사람이 있다며 아리아드네를 소개해준다. 그녀는 건축학 대학원생으로 꿈에 대한 코브의 교육에서부터 놀라운 학습 능력과 실행 능력을 보여준다.


    '설계자'에겐 실제 장소를 바탕으로 꿈을 설계하면 안 된다는 금기가 있다. 만일 이를 어길시에는 꿈에서 깬 뒤에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것에 혼란을 겪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브가 실제 장소로 꿈을 설계하던 아리아드네에게 이를 설명하던 찰나, 사이토와의 첫 만남에서도 방해를 했던 코브의 죄책감이라는 무의식이 투영체인 맬이 나타나 칼로 아리아드네를 찌르고, 그녀와 코브는 꿈에서 깨게 된다.


    꿈에서 깬 코브는 아리아드네에게 꿈을 구분할 수 있도록 토템을 만들 것을 말한다. 토템은 오직 주인만이 그 균형점과 무게를 알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서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다. 물론 꿈속에서 칼에 찔려 죽임을 당해 깨어난 아리아드네에게 코브의 말이 귀에 들어 올리는 없다. 아리아드네는 코브의 말을 무시하고 떠난다. 그러나 물리법칙을 거슬러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꿈의 맛을 본 아리아드네는 이내 곧 돌아오게 된다.


    '인셉션'에는 '설계자' 외에도 중요한 역할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표적'의 무의식인 것처럼 투영체로 위장해 그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조꾼'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앞서 아리아드네가 꿈속에서 당했던 죽음 혹은 킥(떨어지는 느낌)으로 인해 꿈에서 깨는 것을 제외하고 안정적인 꿈을 꿀 수 있도록 하는 수면제를 만드는 '약쟁이'다. 그리고 코브는 아서와 함께 '설계자' 아리아드네, '위조꾼' 임스, '약쟁이' 유서프를 비롯해 이 모든 것의 이유가 되는 '인셉션'을 의뢰한 사이토와 함께 작업에 착수한다.


* 작업에 착수한 코브 일행이 '인셉션'에 성공해 코브가 사랑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을지는 영화를 통해 확인하도록 하자.


무엇에 인셉션 당하는가

    당신도 '인셉션'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 혹은 지인이 꿈에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호감이 생기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현실에서 겪은 일을 꿈에서 무의식적을 풀어내기도 하고 꿈에서 받은 영향이 현실에 반영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인셉션'이 꼭 '꿈과 현실'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과 현실'에서도 우리는 매일 같이 '인셉션'을 경험한다. 그리고 '현실과 현실'에서의 '인셉션'은 '꿈과 현실'에서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갖는다.


눈 깜빡이는 것, 숨 쉬는 것을 의식하지 마십시오.


    이것을 본 당신은 서서히 짜증이 날 것이다. 본인도 퇴고를 거치며 몇 번이나 보게 된 이 글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했던 숨쉬기와 눈 깜빡이기를 의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신경 쓰이게 만든다. 물론 당신은 이것이 심어진 생각이란 것을 알지만, 이제 이 생각은 당신의 의식이 되어 이제는 마치 내가 한 생각이었던 것 마냥 신경이 쓰인다.


    본인은 어릴 적 참가했던 자전거 경주에서 완주했음에도 결승점 앞에 인파에 의해 밀려났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엄마는 이 사실을 모르고 본인에게 ‘너는 끝까지 하는 것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시곤 했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엄마가 사실 여부를 모르셔서 하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본인은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어느새 엄마가 심은 이 생각은 본인의 머릿속에서 자라났다. 혼자서 과제를 하거나 글을 쓸 때도 ‘도대체 끝이 어딜까’ 하면서 계속해서 다시 보게 되었다. 얼핏 보기에는 끝까지 집중하는 좋은 습관이지만, 본인에게는 이 사실이 일종의 강박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듣는 말은 사실 여부를 떠나 깊숙한 곳에 자리 잡게 된다.


    당신은 비단 가까운 사람에게만 '인셉션' 당하지는 않는다. '정보의 바다' 속에서 사는 당신은 일어나서부터 다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어쩌면 잠자리에 누워서까지) 접하는 각종 글과 사진부터 다양한 영상들로부터 당신은 매 순간 ‘인셉션’ 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넘쳐나는 정보에서 접하는 다양한 생각들은 사실관계 여부를 떠나 당신의 머릿속에 심어진다.


      아주 사소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이라 할지라도 한 번 머릿속에 박힌 생각은 코브의 말처럼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가 된다. 문제는 이 바이러스에는 백신이 없다.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운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이처럼 '현실과 현실'에서의 '인셉션'을 통해 자리 잡은 생각은 무의식이 되어 사람의 행동을 만든다.


    여기서 '인셉션'을 통한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매일 같이 '정보의 바다' 속을 떠돌며 스쳐 지나가는 생각은 그것이 나쁘건 좋건 지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왕이면 좋은 것에 '인셉션' 당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에게 '인셉션' 당하기 때문에 매 순간 좋은 사람을 만나려 노력해야 하고, '정보의 바다' 속에서 긍정적인 것을 보고 들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빈도와 강도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는 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 공부와 관련된 용어 중 'n회독'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기본서 혹은 시험 범위의 내용을 끝까지 읽는 것 1회로 하여, 우선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내용을 이해하고 나아가 암기하여 책(범위)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렇게 '익숙-이해-암기'의 과정을 거친 정보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생각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생각의 '빈도'가 잦을수록 익숙과 이해를 거쳐 암기까지 되어버려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다른 한 가지는 요소는 '강도'다. 아주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장관 또는 매력적인 이성의 얼굴, 이와 반대로 충격적이거나 두려운 경험들은 트라우마로 잊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머릿속에 심긴 강렬한 경험이라는 생각 역시 쉽게 잊을 수 없다.

나선미, 너를 모르는 너에게 중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는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다. 사소한 생각이라도 떠올리는 빈도가 잦을수록 강도가 높은 생각처럼 잊히지 않으며, 강도가 높은 기억은 계속해서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마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는 너무나 사랑했던 애인이다. 함께 보낸 시간은 빈도가 잦은, 그만큼 커진 사랑은 강도가 높은 기억이 된다. 잊으려고 어떤 생각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생각이 난다는 것으로 생각은 잊으려고 할수록 잊을 수 없게 된다.


    후회스러운 기억 역시 마찬가지다. 사소한 후회건 커다란 후회건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계속해서 떠오르기만 할 뿐이다. 만일 코브가 사이토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평생 후회에 가득 차 사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바라봐야만 했을 것이다.


    이처럼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되는 데에는 빈도와 강도라는 두 가지 불가분의 요소가 있다. 이 때문에 긍정적인 것에 '인셉션' 당하려는 노력은 좋은 것을 더 자주 보아 머릿속에 강렬한 기억처럼 자리 잡도록 함을 말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말처럼 사소한 생각들도 자주 접하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을 흠뻑 적신다. 따라서 미련이 담긴 기억이 후회로 '인셉션' 되지 않도록 도전할 수 있을 때 해보는 것 역시 긍정적인 '인셉션' 중 하나다.


무엇을 인셉션 하는가


    우리는 '인셉션' 당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입으로 뱉는 말에서부터 몸짓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매일같이 우리를 보고 듣는 상대방에게 '인셉션'한다. 우리가 상대에게 의식적으로 혹은 무심코 뱉은 말에 담긴 생각은 듣는 이의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상대뿐만이 아니다. 사람은 말을 하는 동시에 스스로 본인이 한 말을 듣게 된다. 상대에게 생각을 심는 동시에 자신에게도 생각을 심게 되는 것이다. 상대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심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생각을 심게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은 긍정적인 무의식으로 자리 잡는다.


    노랫말처럼 사람은 '마음먹은 데로 생각하는 데로 / 말하는 데로' 상대방과 자기 생각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생각은 무의식이 되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의식적으로 좋은 말을 해야 하며, 무심코 못된 말을 내뱉지 않도록 평소 좋은 것에 '인셉션' 당해야 하는 이유다.


   당신에게 질문한다. 무엇에 인셉션 당하고 있는가? 무엇을 인셉션하고 있는가? 리고 당신에게 대놓고 ‘인셉션’한다.


“기왕이면 긍정적인 것에 인셉션 당하자
이왕이면 긍정적인 것을 인셉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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