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fovator Jun 02. 2020

[Prologue] 서른 살, 뉴욕에게 길을 묻다.

방황하는 이들 모두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 J.R.R. 톨킨 -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직장인 4년 차에 접어든 2019년 여름, 나의 하루는 어쩌다 보니 쳇바퀴 같은 '출근, 퇴근'의 반복이었다.

내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젊은 날의 페이지는 띄어쓰기가 되지 않은 빽빽한 글자책 같았다. 작은 쉼표가 간절하게 필요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순수하진 않았어도 참으로 순진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어른들이 정해놓은 삶의 공식에 스스로를 어떻게든 욱여넣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중학생 시절, 어른들은 내게 말했다. "외고만 가면 된다. 그럼 인생이 술술 잘 풀리게 되어 있어." 그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했다. 외고에 진학하자 어른들은 또다시 이렇게 말했다. "명문대만 가면 된다. 그럼 인생이 술술 잘 풀리게 되어 있어." 의심의 여지없이 그 말을 따르기 위해 아득바득 어금니를 깨물며 발악했다. 다행히 운이 좋게 고려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어른들은 또 같은 말을 했다. "대기업에만 가면 된다. 그럼 인생 술술 잘 풀리게 되어 있어."


마지막으로 속는 셈이라고 치고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2015년 하반기 공채에서도 운이 좋게 사원증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정말 인생이 술술 잘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생활비가 부족해서 라면이나 학식으로 점심을 때웠던 학창 시절과 달리,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풍족한 삶이 펼쳐졌다. 명품은 아니더라도 백화점에 가면 직원 몰래 무심한 척 가격표를 꺼내어 힐끗 보지 않아도 마음에 드는 옷을 자신 있게 집어 들 수 있었다. 좋은 차는 아니지만 작은 차를 한 대 뽑아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내면에서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울렁거렸다. 이제 어른들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라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간사한 마음은 늘어난 씀씀이에 이미 적응해버린 지 오래였다. 심지어 물질적 잣대와 기준으로 타인의 삶과 나의 그것을 비교할수록 스스로가 초라해졌다. 나보다 훨씬 앞서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면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앞으로 내가 살아온 만큼이나 더 회사원 생활을 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할 때면, 안 맞는 셔츠의 단추를 목 끝까지 채워 올린 것 마냥 답답해졌다. 분명 어른들은 본인들이 말하는 대로만 살면 인생이 술술 잘 풀릴 거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아니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시달리다가 퇴근길에 문득 정신을 차려 생각해보면, 그동안의 내 인생은 황량한 사막 속의 신기루를 쫓아온 것만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윙-윙' 맴돌았다. "잠깐만 타임! 좀 쉬었다 갑시다!"라고 외친 다음, 그 자리에 털석 주저앉아 버리고 싶었다.


바보는 방황을 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한다. - 토머스 폴러 -



그맘때쯤, 사내 어학 프로그램의 성적 우수자로 선정되어 포상으로 뉴욕 항공권 지원을 받게 되었다. 살면서 해외여행을 다녀본 적이 몇 번 없는지라 사실 큰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가보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여행을 다녀본 적도 없거니와, 영어라 하면 객관식 사지 선다에서 최대한 정답에 가까운 보기를 집어내는 것에 특화된 토익 전사였기에 홀로 배낭을 메고 뉴욕 땅을 밟을 자신이 없었다. 이런 나와 함께 해줄 동행인을 찾아보고, 없으면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결론지었다. 그때 문득 한 사람이 생각났다. 바로 퇴사한 나의 입사동기 Jason이었다.



Jason은 본명이 아닌 그의 영어 이름이다. 이름에서부터 느껴지겠지만, 굳이 한국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이유는 그게 더 자연스러워서이다. Jason은 뼛속부터가 한국인보다는 미국인에 가까운 친구였다. 단순히 영어를 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식생활부터 시작해서 생각의 방향이나 로직, 선호하는 문화와 삶의 방식 자체가 자유로운 뉴요커의 모습 그 자체였다. 물론 그 당시 나는 뉴요커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잘은 모르지만 으레 "뉴욕"이라고 소리 내어 발음해보면 왠지 모르게 자유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Jason은 "뉴욕"과 참 닮은 점이 많은 친구였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직장인의 삶을 존속하려면 집단주의적, 위계질서의 조직 문화에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직원 간의 팀워크를 도모한다는 핑계로 열리는 각종 행사와 회식자리가 반갑지 않더라도 절대 내색을 해선 안된다. 적당히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다가도, 이내 정적이 흐를 때면 눈치 보지 말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준비한 건배사 삼행시를 읊어서 흥을 돋워야 하는 것이 능력 있는 직장인의 자격이다. 물론 준비한 티가 나선 안된다. 하다못해 술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 해도 도망칠 구석은 없다. 몰래 잔에 물을 채워서라도 다 같이 함께 취한 척을 해야 한다. 어쩌다가 흥이 돋은 상사의 술잔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게임 끝. 유일한 방법은 일단 주는 대로 받아먹고 물을 마시는 척 물컵에 뱉어내는 눈치라도 있어야 한다.


Jason은 이런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에 환멸을 느꼈다. 성실하게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며 한국의 대기업에 입사한 그는 결국 자신이 믿는 가치를 찾기 위해 입사 2년 반 만에 사직서를 내었다. 나는 그런 Jason의 대담한 용기에 놀랐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관과 행복의 기준을 억누르며 억지로 사회의 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던 Jason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쩌면 그의 퇴사는 선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의 인간적 존엄성을 지켜내며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책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런 그에게 '한 달 뒤, 함께 뉴욕에 가지 않겠냐'라고 물어보았다. 사실 각자의 인생에도 정해진 계획과 스케줄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다소 갑작스러운 나의 제안을 그가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어쩌면 귀찮은 여행 준비와 번거로운 일정들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그걸 바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은 머리 뉴요커 Jason은 하루 만에 이렇게 말했다.


"오, 재밌겠는데? 좋아, 가자!"


그의 호탕한 결정에 자신이 생겼다. 팀장님께 10박 11일 휴가를 내겠다고 선포했다. 팀장님은 이 녀석이 혹시 퇴사라도 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셨는지 당황하신 기색을 감추시질 못하셨다. 지칠 대로 지쳐있던 나의 삶에는 잠시 멈춰 서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앞만 보고 달리던 트랙에서 아주 잠깐 빗겨 나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필요했다. 사람들은 이럴 때 여행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잠시 내가 살던 공간을 벗어나야 생각의 숨통이 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늘 만나던 사람, 늘 지나던 길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낯선 곳에 푹 젖어들었다 나오면 뭔가 새로운 생각이 싹틀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여행지가 다른 곳이 아닌 "뉴욕"이었다는 것, 이 여행의 동행자가 나와 닮은 듯 다른 생각을 하는 동갑내기 친구 "Jason"이었다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자 감사한 행운이었다. 이 여행을 기점으로 지금 현재, 나와 Jason은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자신 있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밀레니얼, 뉴욕에 묻다>는 에세이이자 여행기이다. 그렇다 보니 일관된 짜임새 없이 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별의별 이야기들이 서로 얽히고설켜있는 조금은 어색하면서도 부족하지만 깊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상한 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구성 자체가 방황하는 청춘, 밀레니얼 세대들의 삶과 닮아있다는 억지 아닌 억지를 부리고 싶다.



뉴욕을 여행하면서 나와 Jason이 끊임없이 놓치지 않고 서로에게 되물었던 질문들이 있다. 바로 "행복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이 다소 철학적이면서도 난해한,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었다. 뉴욕행 비행기에서부터, 타임스퀘어의 현란한 조명 아래에서, 가슴이 뻥 뚫리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위에서도, 녹음이 짙은 여름의 센트럴 파크 한가운데에서도, 시끄러운 뉴욕의 펍과 좁디좁은 도미토리의 로비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이 질문들을 서로에게 던지고 답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이 책에 정갈히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방황하는 청춘의 이야기이자, 베이비 부머 세대와 Z 세대 사이에 끼어있는 밀레니얼 세대들의 고민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거창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집어치우고, 무엇보다 이 책은 30살의 내가, 그리고 내 친구 Jason이 반드시 추억으로 붙잡아 두고 싶은 기억의 파편들이다.


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큰 힘을 주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는 그런 이야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2020년 31살의 중간 고개에서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