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역사로 한번 살펴보자
수년 전쯤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완성도 높은 글'이라는 것이 시장에서 점점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엔 그저 글의 구조나 문법보다 글 안에 담긴 내용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편집할 글의 저자들에게 글을 잘 쓰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다 써라, 분량도 안 중요하다, 했다. 정말로 글이라는 콘텐츠의 유통비용이 0가 되고, 생산량도 큰 폭으로 늘어났으며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실무 전문가들, 재야의 고수들도 자신의 경험을 인터넷에 나누기 시작했다.
그 사이 개인 미디어들의 성장을 지켜봤다. 얼굴과 목소리, 관점이 있는 1인크리에이터들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글, 영상의 유려함, 콘텐츠 그 자체의 완성도보다 누구의 어떤 스토리인지가 중요해졌다. 얼굴과 목소리, 관점이 없는 글은 경쟁력을 잃고 있었다. 신문사들은 기자들의 sns 진출을 독려하기도 했지만, 미국에서는 그렇게 팬덤을 모은 기자들이 언론사를 이탈해 직접 뉴스레터를 창업하는 경우도 생겼다. 한국에서는 언론사에서 새로운 IP를 런칭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LLM이 등장했다. 그리고 점점 더 성능이 좋아졌다. 이제 초안을 잡고 리서치하는 일은 AI가 더 빠르게 잘한다. 텍스트 자체에는 특별한 가치가 없다는 게 명백해진 것이다. 어렴풋이 알던 사실이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생산비용마저 0가 된다. AI가 글을 쓰고, AI 에이전트가 글을 큐레이션해 배달해주는 시대. 그렇다면 퍼블리셔는 글을 왜 생산해야 하는가? 왜 유통시켜야 하는가? 이제 이 세상에서 퍼블리셔의 역할은 무엇이며 왜 존재해야 하는가? 누군가의 아티클이 지금처럼 웹사이트에 장식되어 있는 UI는 맞는 것일까? 하는 문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나는 본질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신문과 잡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들여다본 것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정보의 유통을 원했던 본질적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사람의 본질적 욕구라면,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지 않겠는가? 제프 베조스가 “변하지 않을 것”에 집중했던 것처럼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문과 잡지의 역사를 통해 그 의미를 재발견하게 된 것들은 다음과 같다.
신문이 등장한 것은 지극히 상업적 동기에서였다.
또한 언론사에서 성역인 것처럼 배우는 저널리즘 또한 상업적 동기에서 탄생했다.
게다가 지금처럼 많은 사람에게 도달되는 트래픽을 기반으로 광고를 주수익원으로 삼게 된 것도 약 200년 전쯤 발명된 것이다.
정보 과잉의 문제는 현대 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며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꾸준히 등장했던 문제다. 잡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
가짜뉴스, 필터 버블 문제도 굉장히 오래된 고질적 문제이다.
내가 표준이라고 알고, 배웠던 것들 모두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니라 누군가가 발명한 것이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지만, 현실을 살다 보면 그걸 잊고 그저 그 룰에 맞춰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은 관점을 확장시켜주는 중요한 배움이다.
이제 각각의 꼭지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보겠다. 연대기 순으로 설명하기보다,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정리할 것이다.
오늘날 신문 산업에는 ‘저널리즘’이라는 조금 추상적인 가치가 끼어들면서 복잡해보이지만,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최초의 신문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지식, 정확한 지식, 혹은 재밌는 정보를 전달한다는 사명이나 목표보다는, 필사 작업을 효율화하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등장했다.
물론 사실 신문의 등장보다는 지식, 정보가 상품이 되는 이유를 들여다봐야 좀더 본질적인 것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범위가 너무 넓어지므로 배제한다. 그래도 이 부분에 관해 간단히 정리하자면 제한된 정보에 접근하려는 동기,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고 그것을 비즈니스 등에 활용하려는 동기 등이 있었다. 그걸 기반으로 필경사들이 수집한 궁정의 소식이나 선박의 입출항소식, 전쟁 소식등을 적어 소수의 부유한 엘리트들에게 판매했다.
그런데 이렇게 손으로 베껴 일종의 뉴스레터를 작성하는 것의 한계를 느낀 사람이 있었다. 때는 1605년. 그의 이름은 요한 카롤루스. 필경사 출신으로 서점에서 일하다 인쇄소를 인수했다고 한다. 거기서 신문을 조판, 인쇄하기 시작했고 ‘릴라치온(릴레이션)’이라는 소책자 형태의, 하지만 최초의 신문이라 불리는 것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사업의 독점권을 위해 시의회에 청원서를 냈어야 했는데 그 청원서의 내용에는, 그는 필사하는 것이 너무 느리고 한계가 있어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신문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오늘날 많은 지식, 정보 제공 사업자들이 차별화된, 독점적인, 혹은 재밌는 콘텐츠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초창기 신문이 비즈니스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정보 생산과 유통의 기술적인 병목을 해결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언론은 ‘저널리즘’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 또한 상업적인 발명품이었다. 인간이 특별히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이어서가 아니다.
1896년 파산 직전의 뉴욕 타임스를 인수한 아돌프 옥스라는 사람은 당시 ‘황색 저널리즘’의 만연하던 신문 시장에서 신뢰와 품격, 객관성을 내세웠다. 이는 도덕적 결단이기도 했지만 고도의 비즈니스 전략이기도 했다. 선정적인 신문에 자신의 광고를 싣기를 기피하던 금융가, 고급 소비재 광고주 등을 타깃한 것이었다.
이 리더십이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보도에서 정확한 보도로 이어지며 명성을 높이고 그 가치를 증명했다. 지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당시에도 정보의 과잉과 가짜 뉴스가 만연했는데, 검증된 정보가 프리미엄 상품으로 기능했다.
즉 검증된 정보를 제공한다는 건 상업적 동기가 있어야 유지되고, 그것은 일단 '프리미엄'한 상품처럼 보인다.
신문이 저렴한 가격으로 더 많은 대중에게 도달되고, 그 넓은 영향력을 기반으로 광고 수익을 얻는 모델이 된 것은 <뉴욕 선>의 등장부터라고 한다. 19세기 초반까지 미국의 신문은 여전히 '식스 페니 페이퍼(Six-Penny Papers)'라 불리는 고가의 매체였다. 연간 구독료가 10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당시 노동자들의 일주일 치 주급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내용은 주로 정당의 정치 선전이나 상업적 무역 정보(선박 입출항, 화물 목록)로 채워졌으며, 문체는 딱딱하고 지루했다.
그런데 1833년, 23세의 젊은 인쇄업자 벤자민 데이(Benjamin Day)가 뉴욕에서 <뉴욕 선(The New York Sun)>을 창간하며 기존 신문과 전혀 다른 세 가지 플레이를 했다. 당시 보통 신문의 6분의 1 가격인 1페니로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췄다. 그러면서 수익의 원천을 독자에서 광고주로 이동시켰다. 현대적인 신문 비즈니스 모델이 이때부터 확립된 것. 광고로는 구인 광고, 약품 광고, 극장 공연 안내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것들이 주로 실렸다고 한다. 또 거리에서 뉴스를 판매하는 뉴스보이를 고용해 매일 구매하는 습관을 만들었다고.
뉴욕 선이 등장하던 당시는 6페니짜리 신문이 뉴욕에 6개가 있었는데, 그 일간지의 평균 발행 부수가 1700부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1836년 더선의 발행 부수는 3만부까지도 됐다고.
시대의 변화와 필요를 읽은 혁신가가 개발한 모델인 것이며, 원래부터 미디어가 광고에 꼭 맞는 것만은 아닌 것. 타깃 독자의 취향과 필요가 더 세분화된 지금 시대에 다시 꼭 맞는 타깃을 위한 구독 모델이 떠올랐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지금은 콘텐츠 생산비, 유통비가 제로가 되는 시대고 광고는 이미 미디어에서 디커플링된 지 오래이다 보니, 다른 수익 모델이 필요한 것이 당연. 개인적으로는 어쨌든 재미, 유익함을 토대로 사람들의 관심을 구하는 비즈니스이다 보니 광고든 구독이든 뭐든 주머니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요즘의 개인 인플루언서들의 비즈니스 형태가 그 증거가 된다.
이것이야 말로 정말 변하지 않는 가치 중 하나다. 역사를 살펴보면 인쇄가 발달한 이후 사람들이 정보 과잉에 시달리지 않은 때가 없는 것 같다.
최초의 잡지는 <젠틀맨스 매거진>이라는 것으로 에드워드 케이브라는 런던의 인쇄사업자가 창간했다. 매거진은 창고, 저장소, 화약고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magasin에서 유래한 군사 용어라고 한다. 자신의 잡지가 “지식의 창고”가 되길 원했던 그가 차용한 단어다. 이 잡지는 ‘젠틀맨’으로 대변되는 교육받은 중산층 및 상류층 남성을 타깃으로, 그들의 지적 욕구와 지위를 확인시켜주는 전략을 취했다고 한다.
이 최초의 잡지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생산하는 매체라기 보다는 타 매체의 콘텐츠를 큐레이션해서 제공하는 서비스였다고 한다. 현대로 말하면 뉴스 애그리게이터. 당시에는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모델. 정보의 ‘선별’과 ‘저장’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며 매일 쏟아지는 시의성 있는 사건을 전달하는 신문과 차별화됐다.
당시 케이브는 콘텐츠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당대의 지성인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했다고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사무엘 존슨이며, 존슨은 의회 논쟁을 기고했다고 한다. 당시 의회 속기록 작성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가미해 작성했고,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며 단순한 정보 모음집에서 권위 있는 지성지로 격상됐다고.
과잉된 정보의 선별이라는 가치는 시대가 변해도 주워담을 만한, 미디어가 가져야 할 가치인 듯하다. 요즘에도 쏟아지는 ai 뉴스 속에서 주목할만한 것들을 해석과 관점을 섞어 정리해주는 뉴스레터나 sns 계정들이 크게 성장했다. 그런데 정보 선별을 ai 에이전트가 완벽하게 하게 될 수도 있을까? 잘 모르겠다.
여기서, 타깃에 소구될 만한 사무엘 존슨 같은 사람 혹은 그런 독보적인 ip를 확보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인플루언서들은 자신이 주목하는 지식, 정보를 선별해서 자신만의 관점, 목소리를 담아 전한다. 그것 자체가 자신의 타깃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ip는 아마도 ai에게 오픈된 형태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과금을 받는 형태여야 미디어가 생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면 그것이 정체성이자 밸류가 될 것이므로?
요즘 언론사들은 저널리즘의 가치에 주목한다. ai는 성능이 점점 좋아져서 그럴싸한 가짜들을 너무도 뻔뻔하게 잘 생산해낸다. 또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빅테크 프로덕트의 알고리즘으로 한동안 사람들은 에코체임버, 필터버블 같은 현상이 화두에 올랐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17세기에도 있었다. 앞서 최초의 신문 릴라치온이 17세기에 등장했는데, 그런 초기 신문들은 이전의 필사 시절에 비하면 혁명이긴 했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먼저 엄격한 검열을 받았다. 발행인들은 정부에서 특허를 받아야 했고, 자국의 민감한 정치적 스캔들이나 비판을 다룰 수는 없었다. 또 유통망의 한계가 있었다. 우편 시스템이 발달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신문은 로컬 미디어 성격이 강했다. 문맹률도 높았고, 가격이 높았으며 구매력도 낮았다.
그런데 당시, 신문을 구매하지 못해도 신문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커피하우스다. 커피하우스는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에 걸쳐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1652년에 파스쿠아 로제라는 사람이 첫 커피 가판대를 연 이후에 급속도로 확산되어 17세기 말에는 런던에만 수천개가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커피하우스는 단순히 음료를 파는 곳이 아니라 1페니만 내면 들어가서 최신 뉴스도 읽고, 토론도 하고, 정보 교환도 할 수 있는 일종의 공론장이었다. 당대 사람들은 이곳을 ‘페니 유니버시티’라고 부르기도 했단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1페니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이 커피하우스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루머의 온상이기도 했다. 특히 주식 시장이나 무역에 관련된 거짓 정보가 조직적으로 유포되기도 했단다. 주가 조작해서 시세 차익을 노리는 세력이 의도적으로 기획해 루머를 퍼뜨리기도 했다. 또 커피하우스는 정치적 당파에 따라 왕당파가 모이는 곳, 의회파가 모이는 곳이 따로 있었는데 각 진영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 소비하고 재생산했다고.
어딘가 익숙한 풍경 아닌가? 정보가 폭증하는 시기에 검증된 정보를 선별하는 것은 여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나는 한동안 에코체임버 같은 걸 걱정해보기도 했는데, 커피하우스 이야기를 알게 된 뒤 그냥 이는 역사를 거듭해 항상 있어왔던 것이며 그걸 또 해결하는 어떤 혁신가들이 등장하며 사회가 또 발전할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사를 들여다보며 깨달은 건, 미디어 산업이 겪는 위기는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쇄술, 페니 페이퍼, 커피하우스, 그리고 지금의 LLM까지. 매번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기존 질서는 흔들렸고, 누군가는 망했고, 누군가는 새로운 룰을 만들어냈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이 현재에도 이어지는 것들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 잘 변하지 않는 것과 관련된 것일 테다. 정리하자면 다섯 가지다. 이런 것들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첫째, 병목을 해결하는 것에 기회가 있다. 요한 카롤루스는 필사의 느림을 해결했고, 벤자민 데이는 가격 장벽을 해결했다.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병목은 무엇일까? 콘텐츠 생산과 유통의 비용이 제로가 된 시대, 오히려 선별이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AI가 생산한 그럴싸한 글들 속에서 진짜 가치 있는 정보를 찾는 것,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을 확보하는 것. 이 부분이 새로운 병목일 수 있다.
둘째, 수익 모델은 계속 발명되는 것이다. 광고 모델도, 저널리즘도 누군가 발명한 것이다. 지금 광고가 디커플링됐다고, 트래픽이 줄어든다고 좌절할 일이 아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제안이 수익 모델과 관련 있을 것이다. 제작 단가를 낮추면서도 더 많은 수요가 포착될 수 있었던 시기엔 광고 모델이 유효했고, 고급 광고주들의 니즈를 고품질 저널리즘이 충족시켰던 때도 있다. 이 시대는 어떤 것이 발명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돈을 주고 지식 정보를 사야 한다는 사실에 익숙하며, 지식 정보의 생산비는 아주 낮아지는 이 시대에는?
셋째, 독보적인 IP는 새로운 오디언스를 만들고 주목을 받는다. 콘텐츠의 숙명.. 젠틀맨스 매거진의 사무엘 존슨처럼, 뉴욕 타임스의 저널리즘처럼.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특정 사람의 경험과 통찰, 그 사람만의 스토리는 복제할 수 없을 것이다.
넷째, 검증된 정보의 프리미엄성. 커피하우스의 루머가 난무했던 것처럼, 지금도 AI가 생산한 그럴싸한 거짓들이 넘쳐난다.
다섯째, 정보 과잉은 큐레이션이 해결해준다. 넷째, 다섯째를 합쳐서 정확하게 검증된 정보, 신뢰할 수 있는 큐레이션은 언제나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이런 것들은 구독을 통해서 반복구매가 일어나는 상황에서만 유의미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전히 아직 웹의 시대처럼 ai 시대에 블로거나 퍼블리셔들이 좋은 콘텐츠를 생산해내야 하는 동기가 충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는 공짜로 글을 보여주고 구글 등을 통해 광고를 얻었지만 ai가 우리 웹사이트 글만 읽고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는다면 지속적인 동기는 직접 관계에서만 나올 것 같다. 누군가는 이 동기의 문제 때문에 결제 모델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상황이 만약 웹에 글을 발행하려는 이들에게 보상 동기가 충분하지 않다면 폐쇄적 네트워크가 훨씬 가치 있어질 것이다. AI가 읽을 수 없는 곳에서 사람끼리만 나누는 진짜 정보가 새로운 영토가 되지 않겠는가?
구독이 아니라면, 타깃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내 고객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제안을 생산하며, 기업 광고주에게 어필하는 것? 그럼에도 그 규모 면에서 이전 대광고 시대의 영광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이기에 두 번째 주머니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 글에서는 콘텐츠 사업자는 결국 커뮤니티로 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해보겠다. 고찰이라기보다는 최근에 본 벤 톰슨의 글을 소개하면서 내 생각을 덧붙이는 정도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