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콘텐츠 설계자>
콘텐츠를 “잘 만드는 사람”에서 “설계하는 사람”으로 넘어가는 순간에 대하여
나는 기자로 시작해 출판 기획을 거쳐, 디지털 유료 콘텐츠 서비스와 IT 미디어 운영까지. 콘텐츠 업만 14년째 하고 있다. 회사는 네 번 정도 바꿨고, 주제나 일하는 방식은 계속 변했지만 본질은 같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하지만 신뢰감 있는 콘텐츠를 발행하는 것.
그 업에서 성공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수십만이 보는 글을 쓰기도 했고, 분야 베스트에 오르는 책을 만들기도 했다. 어쨌든 회사가 요구하는 일들은 그럭저럭 해낸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은, 내가 한 일이 실제로 비즈니스에 얼마나 도움을 줬는지는 몰랐다는 거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포트폴리오의 일부였다. 내 기획이 성공하든 못하든 팀 전체가 성공하면 됐고, 나는 그 상품 라인에 들어가는 상품을 기획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콘텐츠 설계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말을 건다.
나 같은 레거시 미디어 출신은 콘텐츠로 돈 버는 방법을 실행하는 데 개인 크리에이터들보다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콘텐츠를 판매한다는 감각보다는 좋은 콘텐츠를 만든다는 메이커적인 감각이 더 발달해있기 때문이다. 또 콘텐츠 그 자체의 완성도와 그동안 쌓아온 높은 기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동안 개인 크리에이터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흥미로운 건, 그들이 비즈니스를 만드는 방식이 기존 미디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광고, 구독, 자기 상품 판매. 수익화의 문법은 비슷하다. 다른 건 채널을 대하는 태도였다. 성공한 크리에이터들은 새로 등장하는 플랫폼의 문법을 빠르게 익히고, 그 위에 안착한 사람들이었다.
이 책의 저자 니콜라스 콜도 그런 사람이다. Quora에서 1위 작가가 되고, Medium에서 15회 Top Writer에 선정되고, Inc 매거진 톱10 칼럼니스트가 되기까지 — 그는 플랫폼이 원하는 방식으로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AI 시대에도 비슷한 현상이 반복되는 것 같다. 그 대안으로 ‘Unlearn’이라는 표현이 부상하고 있다. 새롭고 더 나은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행동 체계를 의도적으로 따르지 않는 것. 나 같은 경우라면, 인사이트 있는 장문의 글을 꼼꼼히 기획하고 문장을 한땀한땀 다듬어 발행하던 방식을 의도적으로 버려야 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모르게 사부작사부작 Unlearn을 해왔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꼼꼼한 문장과 완성도를 포기한 지 오래됐다. 발행되는 글 하나의 완성도보다 그 속도, 핵심 메시지, 그 글이 불러올 네트워크에 집중한다.
이를 위해 몇 번의 실험이 있었다. 내 기준에서는 7080%밖에 미치지 않는 콘텐츠를 여러 번 발행해봤다. 콘텐츠에 도가 튼 내부 팀원들조차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아, 완성도 70-80%만 되어도 상품 가치가 있구나. 그래서 완성도에 집착하기보다 양을 엄청나게 늘려봤다. 팀에서 가장 많이 발행했고, 당시 두 번째로 많이 낸 사람보다 1.5배 이상 더 냈다.
(이젠 그걸 ai가 해줄 수 있다!)
콜이 말하는 ‘Practice in Public(공개적으로 연습하라)’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완성된 글을 발행하는 게 아니라, 플랫폼 위에서 반응을 보고 조정하며 배우는 것. 어떤 헤드라인이 클릭을 부르는지, 어떤 구조가 끝까지 읽히는지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익히는 거라고. 레거시 미디어 출신이라면 공개적 연습은 굉장히 익숙한 작업일 것이다. 특히 신문사라면 빠르게 정확하게 글을 완성하는 연습을 수도 없이 했을 것이기에 이미 콘텐츠 기본기는 탄탄할 것이고 채널을 제대로 익한다면 금방 적응할 것이다.
또 예전엔 요즘 주목받는 트렌드는 당연히 콘텐츠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엔 그 콘텐츠가 만들어낸, 연결해낼 기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근데 그것도 좀 느린 것 같다. 채널 반응 속도를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인사이트를 글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더 효과적으로 빠르게, 다양한 루트에 전파해야 한다.
본진이 있는 미디어 입장에서, 새로운 채널에 올라타는 건 개인 크리에이터만큼 가볍지 않다. 채널은 채널 자체의 문법에 맞게 운영해야 하는데, 본진이 있으면 결국 ‘유입’을 신경 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채널 고유의 문법과 딜레마가 생기거나 리소스 부족 문제가 생긴다. 그냥 요약해서 뿌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새로 등장하는 플랫폼, 주목받는 플랫폼에 올라타야 콘텐츠를 널리 알릴 수 있다. 개인 크리에이터는 더더욱 그렇다.
특히 공감했던 부분은 콘텐츠를 단발성 산출물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도구, 행동을 유도하는 장치, 그리고 축적될수록 더 강해지는 자산으로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최근 몇 년간 고민해온 것도 비슷한 질문들이었다.
이 글은 읽고 나서 독자가 무엇을 하게 될까?
이 콘텐츠는 다음 콘텐츠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지금은 반응이 없어 보여도, 나중에 쌓였을 때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이 책은 그런 질문들에 대해 화려한 해답을 주기보다는, “설계자의 시선으로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지금 나는 트래픽이 꽤 많은 웹 매거진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놓인 지 3년째다. 트래픽은 늘려놨는데 비즈니스 모델은 성공적으로 찾지 못했다. 올해는 돈을 벌어야겠다 다짐하고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더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이미 콘텐츠를 오래 만들어온 사람에게는 “그래, 우리가 하던 게 이거였지”라는 정리의 경험을 주고, 이제 막 콘텐츠로 무언가를 해보려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요즘처럼 AI가 콘텐츠 생산의 장벽을 빠르게 낮추는 시대일수록,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왜 만들고, 어디에 놓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 더 중요해진다.
『콘텐츠 설계자』는 바로 그 질문을 회피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