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5 NBA PLAYOFF
24-25 시즌 NBA 플레이오프가 시작하려고 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플레이인 토너먼트도 마무리가 되고 곧 1라운드 첫 경기가 시작이 되니 오늘이 가기 전에, 아니 1라운드 첫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어서 이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우승하는 것이 스포츠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아니라고 항상 생각하며 스포츠를 즐겨왔지만 막상 플레이오프가 시작되고 나면 나 역시도 우승이 중요하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처럼 응원을 하고 글을 써왔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토너먼트에 올라갔는데 목표를 1라운드 통과나 혹은 포스트시즌 1승으로 하는 팀은 없을 것이다. 순위 싸움을 하는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을 향한 집념이라는 것은 하나의 룰과 같다. 그게 축구가 되었든 농구가 되었든 ‘우승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가 그 리그를 구성하는 모든 팀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규칙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합의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스포츠는 그 존재 가치가 흔들릴 것이다. 모든 팀들이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뛰는 과정 중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선수 스스로는 성취감을 느끼고 그를 통해 선수도 팀도 생계를 이어가고 하는 것이다. 단지 공을 튀기고 주고받다가 던져서 바구니에 집어넣는 행위 자체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것을 남들보다 특출 나게 잘하는 누군가가 그 능력으로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 팀 저 팀 돌아다니기만 한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볼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NBA에서도 우승이라는 공통의 목표 추구를 룰처럼 지키고 있기 때문에 리그에서 행하는 그 모든 것이 유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법조문처럼 어디 두꺼운 책 서문에 명시된 사항은 아니겠지만, 인간사에 있어 진짜 중요한 규칙들은 굳이 법으로, 문서로 규정할 필요가 없어도 될 만큼 당연하여 이성과 상식, 선의에 기대어서도 충분히 유지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프로스포츠에 있어 우승을 향해 열심히 뛰는 노력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이번 시즌 서부와 동부의 우승 컨텐더인 오클라호마시티 선더나 클리브랜드 캐벌리어스가 스몰 마켓 팀이라는 핑계로, 선수 장사로 돈만 버는데 집중했다던지, 팀을 떠난 리그의 왕이 챙겨준 우승 한 번에 만족하고 그럭저럭 팀을 운영하는데 만족하고 있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자. 이 팀들이 시즌 내내 정말 우승을 기대할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마지막까지 동서부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그들을 보는 게 지겹다 여길 정도로 늘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던 강팀들은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 짓지 못하고 경쟁을 해야만 했다.
스포츠에서 치열한 경쟁은 곧 재미와 연결된다. 우승이라는 목표 추구의 합의 없는 치열한 경쟁은 공허할 것이다. 3-4위전이 결승전보다 주목받기는 어려운 법이다. 나는 리그의 슈퍼스타가 단지 우승을 위한 기회를 찾아 이 팀 저 팀 옮겨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내가 써온 글을 통해 강하게 비판해 왔고 지금도 그에 대한 나의 비판적 입장에는 크게 변함이 없다. 물론 선수로서 우승이라는 목표 추구가 힘든 팀에 남아 경기하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고 팀 역시도 표면적으로는 같은 이유로 선수를 트레이드하고 드래프트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무작정 비판만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NBA의 구단과 선수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판적일 수 있는 것은, 아무리 그들 나름의 타당한 핑계를 댄다고 하여도, 그 누구도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현재를 포기하는 결정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런 상황의 당사자가 되는 팀이나 선수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뿐더러 인생의 일부분을 팀과 선수와 공유하는 팬들에 대한 기만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상황이 어떠하던지 간에 룰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전재가 되지 않는다면, 그들이 코트 안팎에서 행하는 일들 모두의 의미가 퇴색된다. 프로스포츠의 정체성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테픈 커리가 농구를 망쳤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하면서 모두가 3점을 던지는 오늘날의 경기가 재미가 없어졌다고 말하지만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가장 많은 팬들의 환호를 받는 선수가 스테픈 커리라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외곽 위주의 경기가 되면서 피지컬 함이 떨어졌다는 측면에서 터프한 90년대 농구에 대한 향수를 가진 팬들에게는 재미 반감의 원인을 어느 정도 제공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90년대에 NBA에 빠져든 내 관점에서 농구가 재미 없어지는 진짜 이유가 키가 크던 작던 모두가 3점을 던지는 것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지켜야 하는 룰, 그러니까 경기에 나서는 모든 팀과 선수가 현시점에 우승을 목표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 암묵적인 합의를 너무도 당당하게 지키지 않는 것이 나는 경기를 재미없게 만든, 그야말로 경기를 망쳐버린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탱킹과 로드매니지먼트와 같은 단어들은 현대의 농구팬들에게 더 이상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많은 팀들이 어차피 우승을 못할 팀이라 스스로 규정하고 다음 시즌 들어올 유망주를 뽑기 위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일치감치 전력을 다하지 않고, 무릎을 아껴준다는 명목하에 먼 길 달려오고 날아오는 팬들 앞에서 팀의 최고 스타 선수를 벤치에 앉혀 두기 일쑤다. 팬들도 그런 행위에 분노하기보다는 저들의 입장에 많이 공감한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무리하다 다치면 누가 책임져 주나? 어차피 우승도 못할 거면 곧 NBA에 데뷔할 외계인이나 백인 슈퍼스타에 올인하는 게 나은 것 아닌가? 팀이든 선수든 당장의 경제적 가치를 염려하는 게 룰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팬들의 존재 이유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2020년 처음 도입된 플레이인토너먼트는 더 많은 팀들이 시즌 마지막까지 우승을 꿈꿔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함으로써 팀들도 응원하는 팬들도 좀 더 오랜 기간 최선을 다하게 만들었다. 도입 초반에는 시즌 82경기를 뛰고 컨퍼런스 7-8위를 차지하는 것으로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냐는 일부 선수들의 불만이 있기도 했지만, 사무국 입장에서는 NBA에 대한 팬들의 관심을 유지하게 할 방법이 어떻게든 필요했을 것이다. 이 시도가 성공적이라는 판단이 있었기에 이제는 잘 정착이 되었고, 바로 어제까지 최소한 4개 팀의 팬들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도 자기 지역 최고의 선수가 플레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굳이 시즌 중에 꼭 해야만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는 인시즌토너먼트라던지, 몇 년째 실실 쪼개며 건성으로 경기하는 올스타전을 보는 피로감을 생각하면 NBA가 하는 모든 새로운 시도들을 긍정적으로 보기는 힘들지만, 플레이인토너먼트만큼은 더 많은 팀이 더 오랜 시간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성공적인 시도라고 생각한다. 모르긴 몰라도 리그의 수익창출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명문화되지 않은 암묵적 합의는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며 저마다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룰로 여기는 세상에 살고 있다. 비단 NBA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NBA에서 일어나는 작금의 현상들을 보며 현대 사회와 공동체의 위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공동체 존립을 위해 개인의 소중한 가치가 희생당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나는 무조건 개인의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상호 연결된 인간 세상에서 올바른 룰을 지키는 공동체를 위하는 것과 개인을 위한 것 사이에서 가치가 충돌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믿는다. 개인이 없는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으며, 공동체 없는 개인은 자기 가치의 소중함을 인식할 수 없다.
더 많은 팀들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경기하는 만큼 NBA를 보는 재미는 지속될 것이며 팬들은 경기장을 찾을 것이다. 그 뒤로 이뤄질 선순환까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개인을 위해서든 공동체를 위해서든 룰은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