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 Dec 23. 2020

loop문

반복되는 일상의 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AI가 인간의 능력을 압도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4차 산업 혁명'이란 용어 만큼이나 이제는 식상할 정도로 미래 사회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그 중,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AI의 최대 강점은 바로 '반복'이다. 반복되는 일을 실수없이 처리하는 사람을 두고 기계같다고들 한다. 그러니 실제 기계의 능력은 오죽하겠나. 

 인간이 비슷한 일을 지속하는 데 큰 방해물이 바로 감정이다. 제아무리 솜씨 좋은 요리사가 내 놓은 음식이라도 세 끼 이상 먹으면 물리기 마련이듯, 반복되는 일에 대한 지루하고 답답한 감정은 일을 계속할 동력을 계속 잃게 한다. 인간이 즐기는 유흥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아니던가. 그러나 컴퓨터는 loop문이라고 하는 명령들을 적절하게 주면, 그 안에서 아무런 실수없이 반복되는 일을 묵묵하게 해낸다. 얼핏보면 이 세계에서의 승자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컴퓨터' 쪽일 것 같다.

 사람들은 얼마간은 각자의 삶에서 되풀이 되는 일들을 맞이하고, 해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사람의 세계 속에서는 정말 완벽하게 똑같은 일은 없다. 때로는 실수 속에서, 때로는 스스로의 결단 속에서 수많은 일탈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또 인간의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일 것이다. 컴퓨터는 스스로 '반복'에서 탈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적절한 명령이 주어지지 않으면, 컴퓨터는 전원 공급이 끊기기 전까지 무한한 loop속을 맴돌 뿐이다. 

 인간은, 반복되는 일에서도 가치를 찾아낸다. 아무런 생각없이, 혹은 불평 속에서 지내던 일상이 파괴되었을 때 특히 더 그렇다. 누구나 매일 아침 아무런 걱정없이 눈을 뜨고, 매일 밤 깔끔한 기분으로 잠이 드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사촌언니의 돌도 안지낸 딸이 갑작스런 병마로 중환자실에서 힘겹게 투병하던 무렵, 고모는 막 출산을 하고서 육아의 '무한 루프'에 빠져 있는 것만 같았던 내게 늘 당부하시곤 했다. 


 "오늘도 아무일 없었구나, 하고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는 날들이 얼마나 귀한 건지 이제야 알겠다. 너도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그게 얼마나 감사한 건지도 알았으면 좋겠어. 나는 이제서야 그걸 알게 되니 너무나 후회스럽구나."


 반복 그 자체에는 더없이 취약하지만, 반복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반복되는 일들의 의미를 깨닫는 것도 인간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이세돌이 마지막에 승기(勝機)를 잡았던 것처럼, loop문의 세계에서도 최종 승리자는 그래서 역시 사람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Function, 함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