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자유론' 읽고 생각을 쓴 글
페이스북이 보여주는 과거의 오늘 게시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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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고-
자유라는 것은 공기와 물과 같다고 생각한다.
자유는 우리가 애써 획득하려고 하지 않아도
현대와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져있다고 생각하고는 한다.
이러한 생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물론 제도적으로 민주주의 하에서는
당연히 자유는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다.
그것이 전부라면 밀은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 풀어내는 에세이를 통해
'자유’의 중요성과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범위와 당위성을 어렵고도 쉬운 말로
당대와 지금의 우리에게 설파하기 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우리가 인지하고 인식하고
그 의미를 느낄 때만이 진정으로
그 모든 것이 우리와 같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자유의 가치를 열거하고 있어서
언뜻 그리 심각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문장 하나하나를 지금의 현실과
나와 우리의 자세와 태도에 비추어 보고 읽으면
무겁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자유로운가.
우리는 상대와 타인의 자유를 보장하는가. 어느정도 자유권을 보장할 수 있는가
그 보장범위, 다시말해 침해받지 않아야 할 범위는 우리사회 안에서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가.
모든 극과 극은 통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늘 어느 부문에서 공공의 선의 가치를
우리가 이루었을 때
우리가 그렇게 지양하고 혐오하던 반대의 극으로 향하지 않을 것이란 자만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평등의 원칙을 외치며 혁명을 주도하고 이끌던 세력들이 세계 속 역사에서 새로운
억압의 사회를 만든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표현과 참여의 자유, 이 모든 것들이
제도적으로 잘 보장되어 있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오히려 자유의 억압과 침해가 은밀하게 암묵적으로 성행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느정도 느끼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의견과 다른 의견이 표현되었을 때,
우리사회가 그 의견에 대해 얼마나 편협되고
공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고립시키는지
우리는 특히 지금의 한국사회에서의 ‘혐오’의 집단감정의 표현을 볼 때 잘 느끼고 있다.
극대화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것같은
sns와 익명의 공간에서 오히려 집단의 혐오가
의견의 자유로운 표현을
공격하는 경우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집단에서 그 분위기에 맞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 쉽게 배척받는
모습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성찰하는 용기”를 떠올려보았다.
성찰하는 인간. 성찰하는 사회.
우리사회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회인지.
우리는 자유로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는지.
반성은 잘못을 뉘우치는 일이지만
성찰은 모든 일의 과정과 생각을 찬찬히
반추하며 성장의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성찰하는 사회와
이를 통해 우리가 수호하고자 하는 자유의 가치.
우리가 공기와 물 같이
당연하게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믿는
모든 소중한 가치들이
진정으로 우리 삶에 공기와 물 같이 흐르게 하려면 우리는 늘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