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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Jan 14. 2020

나는 과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희우야, 나는 사실.. 이번에 너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혜진이가 말했다.

나는 답을 할 수 없었다. 당사자인 나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죽음을 친구가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그냥, 네가 투석을 한다고 하니까 겁이 나더라. 우리... 시간을 행복하게 써야 할 것 같아."


    투석 직전, 하루에 고작 세 시간을 깨어 있을 수 있던 때였다. 가족 외에는 친구들을 만나기도 어려웠다.

외출을 하면 종아리가 퉁퉁 붓고, 무릎이 아파서 집에 돌아 올 엄두가 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연락이 없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투석을 한다니. 그녀는 막연한 공포에 휩싸였을 것이다. 놀란 마음으로 초록창에 '신장투석', 네 글자를 검색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잘 알지 못하는 활자들의 나열이 있을 뿐이었다.

'인공 신장기를 이용하여 혈액 속 노폐물 제거, 신체 내 전해질 균형 유지, 과잉 수분 제거하는 시술'

 단단히 짜인 단어의 결합은 어떤 현상을 잘 설명하면서도 잘 이해시키고 있지 못했다. 간단히 쓰인 듯한 활자의 나열은 한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을 설명해줄 수는 없었다. 얼마나 아픈지, 마음은 어떤지, 하루의 몇 시간을 깨어있을 수 있는지, 하고 싶은 일들이 얼마나 제약받는지 그런 것들은 설명되지 않았다.


    초록창은 그녀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지도, 걱정을 덜어주지도 못 했다. 모든 것이 아득해졌다. 본래 공포는 무지에서 나온다. 때때로 너무 잘 알아서 무서울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잘 알지 못해서 더 무섭게 느껴진다. 인간의 상상의 폭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기 때문에. 약 부작용으로 얼굴이 간혹 (심하게) 변하기는 하였지만 너무 오랜 투병 탓일까. 친구인 혜진 또한 나처럼 내 병에 대해 무뎌졌을 것이다. 게다가 신장은 소리 없이 아픈 질병이기에 더더욱. 그런데 어느 날 평소처럼 물은 안부 인사에, 투석을 할 것 같다는 답이 돌아온 것이다. 쿵,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노인의 몸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고작 이십 대 중반인데도. 투석을 하게 된 것뿐만 아니라 병이 10년 가까이 되어가니 온 몸이 자주 아프다. 두 개의 일정이 있던 날 밤은 피곤한데도 잠에 들기 어렵다. 무릎이 간질거리고 뻐근한 느낌이 든다. 관절통은 예민한 나를 재워주지 않는다. 그러면 두려운 마음이 슬그머니 일어난다. 언제나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것처럼. 자기 자리를 당당히 지키고 서서 나를 흔들어 놓는다. 오늘만 이런 게 아니면 어쩌지, 내일도, 모레도, 죽을 때까지 이러면 어떡하지? 노인들이 겪는 퇴행성 관절염을 지금부터 겪는 거면 어떡하지? 감기에 걸렸다고 이게 평생 가면 어쩌지, 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도 알 수 없는 원인의 증상을 겪으면 꼭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번지곤 한다.


    2010년 가을, 루푸스 신염이 나타난 이후로 내게 삶이란 위태로운 것이었다. 사실 2017년에 크게 재발해서 입원하기 전까지는 나도 죽음에 대해 상상해보지 않았다. 최소한 한동안은 나의 일이 아닐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요독이 심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 하고 사과나 배 한 두 조각으로 겨우 하루를 살아내던 2주일을 겪고서는 항상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손이 덜덜 떨려서 휴대폰이나 책 한 권도 내 손으로 들 수 없는 지경이었다. 부종이 심해 복수가 차오르고 생식기는 누가 풍선 불듯 불어놓은 것 같았다. 잠깐 깨어 있고 대체로 지쳐 잠들어 있었지만, 깨어 있는 시간에는 늘 두려웠고 불안했다. 이렇게 영영 병원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마음 여린 내 남동생 웅이는, 이런 나를 간호하기 위해 왔다가 토하는 내 등만 두드려 주다 돌아갔다. 집에서는 엄마에게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마음이 아파서 이제 누나 병간호 못 가겠어."


    온갖 약물 치료로 누룽지 정도는 먹게 되었을 무렵,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락거리던 환우들의 카페에서 부고가 떴다.

[부고] 회원 '다나았다'님 발인 10/30일 7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처럼 루푸스 신염을 앓던 내 또래의 여자분이었다. 나와 달리 밝게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에 나도 괜히 힘이 나서 그분의 글을 알림 설정까지 해두었었다. 그런데 감기에 걸렸다가 폐렴으로 번지고, 이게 패혈증까지 이어져 죽음을 맞게 된 것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죽음은 나를 몹시 울게 했다. 승우의 두껍고 따뜻한 손을 잡고 토하듯이 울었다. 그분의 죽음이 슬퍼서이기도 했지만 고백하자면, 나도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큰 이유였다. 행복전도사 최윤희 씨의 자살 또한 날 위태롭게 했다. 내가 발병했던 2010년 가을 그녀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꼭 나와 바통터치를 한 것 같은 시기의 맞물림이었다. "자살, 뒤집으면 살자"라고 외치며 사람들에게 긍정 에너지를 주던 최윤희 씨는 유서에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 없고...'라고 적어두고 남편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63세의 나이였다. 나는 죽음이라는 파도 앞에 놓인 모래성이 된 것 같았다. 제 몸이 고작 모래로 만들어져, 얼마나 연약한지를 잘 알고 있는 모래성. 차츰차츰 내게 가까워져 오는 파도에 대한 두려움, 언제 집어삼켜질지 모른다는 공포감 같은 것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만성 콩팥병은 2040년에 수명을 가장 많이 단축할 질병 5위에 올랐다고 한다 ¹*. 치매, 대장암보다 수명을 더 줄이는 위중한 병이란다. 또 신장 이식을 한다고 해서 평생 이식신을 사용할 수도 없다. 이식된 신장의 수명은 제한되어 있으며 평균적으로 10년에서 20년 정도를 사용한다 ²*. 그렇다면 이십 대 중반의 나는 이번에 부모님의 신장을 받는다고 해도, 현재 의학 기술이 유지된다면, 그 이후에 또다시 투석이나 재이식을 해야 할 것이다. 나도 내 또래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말에는 데이트를 하고, 저녁엔 친구들을 만나서 맛있는 걸 먹는 걸 좋아하고, 틈이 나면 책을 읽고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 나도 세 끼를 잘 챙겨 먹고 운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복막투석 환자라고 해서, 희귀 난치병인 루푸스 환자라고 해서, 다른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나조차도 내 병의 위중함을, 심각성을 때때로 잊는다. 어쩌면 잊고 싶은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아니라고 부정한다면, 나만 괜찮다고 말한다면 그 일은 없었던 일 같기도 해서.


    나는 엄마나 애인 이외에는 내가 아프단 말을 잘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짐을 짊어지고 사니까.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까. 내가 더 힘들다고 말하는 일이 조심스러워진다. 오늘은 나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최근 내가 느끼고 있는 증상들에 대해 적어보고 싶다.

-안구 건조

-피부 건조

-입 마름

  위 세 가지 증상은 쇼그렌 증후군*에 가까움.

-가려움증

-관절염

-골다공증

-백내장

  늦어도 50대에는 수술이 필요할 것이라고 함.

-위염

  약을 많이 먹어서 위장이 약해짐. 구워진 소고기를 먹으면 백 퍼센트 체하고 만다.

-심혈관 질환

  스테로이드를 많이 먹어서 혈중 콜레스테롤이 높아졌고 이후 동맥 경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함.

-만성피로

-빈혈

  신장에는 조혈세포도 있는데 지금은 기능을 못 한다. 조혈제를 매 달 맞고 있다.

-고혈압

-고인산 혈증

  혈중 인산염 수준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는 전해질 이상. 인 수치가 높다는 말이다.


    한때 주치의셨던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은 휴학을 고민하고 있던 내게 말했다.

"루푸스는 안 나아. 근데 휴학한다고 낫겠어? 그럼, 평생 휴학할 거야?"

낫지 않는 병 루푸스. 아직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없다. 그리고 신장은 재생이 불가능한 장기다. 대부분의 장기들은 상처 입으면 낫지만 소실된 신장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뭐 이렇게 낫지도 않는 것만 두 개나 가지고 있는지. 둘 다 낫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 먹고 있는 면역 억제제, 혈압약, 항말라리아제, 인조절제를 평생 먹어야 할 것이다. 약으로 인한 다른 부작용들이 생기면 그를 위해 또 다른 약을 추가할 것이다. 내가 먹어야 하는 약은 이미 한 움큼인데도. 그러다 보니 상태의 호전은 조금 있더라도 나는 평생 환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증상이 더 심해질 거라는 불안감도.


<나는 과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HEEWOO

    가끔 내 벌거벗은 몸을 바라볼 때면 나는 황량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살결에 아무렇게나 빨갛게 그어진 수많은 선. 쩍쩍 살을 갈라놓은 빨간 선들이 어깨, 가슴, 골반, 배, 허벅지 안쪽 여기저기에 있기 때문이다. 스테로이드 과복용으로 쿠싱증후군 ³*이 생겼었고 그 덕에 나는 완전히 할머니 몸이 되었다. 볼품없이 축 늘어진 가슴, 윗가슴 따위 없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보다 좀 더 내려앉은 듯한 느낌. 늘어진 팔뚝 안쪽과 허벅지 안쪽. 딱 붙는 레깅스를 입어도 허벅지 안쪽은 볼록 튀어나와 있다. 살이 늘어진 탓이다. 배 부근과 골반에도 역시나 튼살이 자리해 이미 출산을 한 번쯤은 경험한 듯이 보인다. 내 나이에 가까운 곳은 목 위로의 얼굴, 팔꿈치 아래의 팔, 무릎 아래의 종아리 정도. 허울만 좋은 몸을 가진 것이다. 벗겨놓고 보면 괜스레 초라해지고 슬퍼진다. 엄마는 슬퍼서 입꼬리를 내리고 있는 나를 두고 내 몸이 호랑이 같다고 킬킬거렸다. '놀리지 마!' 하며 약간은 울먹이고 약간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미 늙어버린 것 같은 내 몸은 얼마나 살아낼 수 있을까? 20대 청춘에 벌써 먹는 약이 한 움큼이고, 이미 늘어진 할머니의 몸을 가졌다면 나의 노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는 과연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각주

1. 한국일보에 따르면, 195개국의 ‘세계질병부담(Global burden of disease)’ 연구를 바탕으로, 만성 콩팥병이 2040년에 수명을 가장 많이 단축할 질병 5위에 올랐다. 이는 허혈성 심장병, 뇌졸중, 하기도 감염,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에 이은 것이다.  

2. 분당차병원 장기이식센터에 따르면, 신장이식은 신부전증을 지속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지 결코 완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식된 신장의 수명은 제한되어 있다.  3. 3. 쇼그렌 증후군: 눈과 입이 마르는 만성 자가면역 질환.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4. 쿠싱 증후군: 부신피질의 호르몬 중 코르티솔의 과다로 인해 발생하는 임상 증후군. 증상으로는 기운 없음, 고혈압, 무월경, 안면홍조, 남성화(수염), 보름달 얼굴, 중심성 비만, 자색 선조(튼살), 쉽게 드는 멍, 팔다리 근육위축  


[+배경 이미지: Photo by Cristian Newm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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