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좋아했던 이야기 중의 하나가 사육신의 이야기였다.
사육신의 이름도 지금까지 다 외우고 있다. 성상문, 박팽년, 하위지, 유응부, 유성원, 이개
사육신은 단종의 복위 운동을 도모하다 실패로 끝나고 목숨을 잃은 6명의 충신을 일컫는다.
그들의 거사가 실패로 끝난 이유와 배신자가 누구였는지도 기억하고 있다.
명나라 사신을 환송하는 자리였다.
성상문의 아버지인 성승과 유응부가 운검을 서기로 했다. 운검은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의 경호원의 자리였다.
성상문 등은 이 자리에서 세조를 제거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세조는 어쩐 일이었는지 연회 장소가 좁다고 운검을 거두라 했다.
무인 출신인 유응부는 세조의 반응에 이미 돌이킬 수 없으니 세조의 목을 치자고 했지만
성상문을 비롯한 다른 동료들은 신중론을 펴며 후일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결국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거사일을 미루게 된다. 후에 유응부는 죽는 자리에서도 이를 후회하였다. 다수결의 폐해다.
이에 처음 거사에 가담하기로 했던 김질이 겁을 먹고, 자신의 장인이자 세조의 측근이었던 정찬손에게
그들의 모의 사실을 알렸고 결국 훗날 사육신이라고 불리게 되는 여섯 명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단종 역시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으며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최후에 이르게 된다.
나는 역사책을 읽기 전에는 명탐정 홈즈를 좋아했다. 정의를 실현하는 듯 보이지만 그리 정의롭지 않은 모습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탐정은 예방보다 범인 물색에 집착하는 법이다. 홈즈는 간혹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으나, 사건이 없으면 무료함을 견디지 못해 또 다른 사건이 터지기만을 고대했다.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은 곧 누군가의 불행이나 죽음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부터 순수하게 도파민에 열중했나 보다.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 같은 마냥 교훈적이고 현실과 괴리된 서사는 그때도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사자성어를 알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사육신의 이야기는 매우 탄탄하고 세련된 내러티브를 품고 있었다. 불안한 주인공들과 그들을 압도하는 거대한 악의 세력. 주인공들은 정의와 열정으로 도전하지만 결국 벽에 부딪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 결말이 말 그대로 처참했기에 그 자체로 강렬한 자극을 주었다. 도파민 측면에서 보자면, 사육신의 이야기지독하리만큼 선정적인 서사였던 셈이다.
우스운 것은, 사육신의 비극에 매료되었던 내가 이후 한명회의 생애에 깊이 빠져들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인기 있었던 소설과 이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의 영향도 컸다. '한명회'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는데 한명회라는 인물의 매력이 많은 사람을 매료시켰다. 배우 이덕화는 '육시럴 할 놈'이라 손가락질받던 증오의 대상을, 역사의 물줄기를 비틀어버린 불세출의 책사로 완벽하게 변모시켰다.
드라마에서 한명회의 마지막 대사를 아직도 기억한다. 인용이긴 하지만 실제로 왕에게 남긴 유언이기도 하다.
始勤終怠 人之常情 願愼終如始 (시근종태 인지상정 원신종여시)
"처음에 부지런하고 나중에 게을러지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오니, 원하옵건대 끝까지 신중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소서."라는 뜻이다.
그 한명회가 생애의 마지막에 한 말이라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사실 한명회 입장에서 보면 본인은 말 그대로 자수성가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권람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시대의 물줄기를 타고 그 물줄기를 자신의 손으로 급류로 바꿔버리며 승승장구하여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 아니었던가?!
세조에게도 분명 대의명분이 있었다. 지극히 세조 본인 위주로 당시 상황을 해석하면, 태종 이후 굳건해진 이 씨 왕조가 권신들의 횡포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시국에, 어린 왕을 앞세워서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려는 자들을 처단하여 종사를 굳건하게 만드는 정의의 사도가 되겠다는 목표 의식이 뚜렷하지 않았겠는가?
그러한 역사적 사명 아래 형제의 정이나 혈육에 대한 사사로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물론 자기 욕망을 포장한 거겠지만, 그런 세조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실행의지를 돋우고 인프라를 구축하며 구체적 실행 방법을 살생부를 통해 프레젠테이션 한 한명회를 어찌 세조가 어여삐 여기지 않았겠는가?
그야말로 세조 입장에서는 한명회가 그의 장자방이었을 것이다. 물론 세조가 한고조에 비할 수 있는 인물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긴 한고조도 그리 훌륭한 인물인지는 모르겠다.
사육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인물이 한명회였다.
애초에 운검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세조였지만 한명회가 강력하게 밀어붙여 운검을 거두게 하였다.
한명회에게는 분명 사람과 상황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었나 보다.
만약 한명회가 없었다면 세조는 오히려 김종서와 안평대군에게 제거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단종과 그의 복위를 꾀한 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처단한 세조의 처사는 그의 입장에게는 그가 느낀 불안감의 발로였을 수도 있고 정말 본인 편한 대로 해석하자면 정당방위로 치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한명회는 본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그러한 세조의 불안을 잘도 이용했던 것이다.
홈즈에서 사육신 그리고 한명회
이들의 서사가 가지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나는 이 이야기들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을까?
어른이 되어서야 어렴풋이 느끼는 건데, 선악은 상황이 아니라 결과가 규정짓는 것이고
이야기와 등장인물의 매력은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경우 더 풍부해지는 듯하다. 입체적인 인물일수록
매력적이다. 이야기는 층위가 나뉘고 해석의 여지가 있을수록 곱씹는 맛이 있다.
그리고 불안의 형상화는 언제나 공감을 일으킨다.
지금 '왕과 사는 남자'로 천하의 모든 사람이 단종을 어여삐 여기고 다시 한명회를 육시럴 놈으로 만들고 있다. 한때 한명회에 공감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도 단종을 가엾게 여기고 한명회와 세조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았다. 간단한 선악구조는 아니었다. 당시 조선의 상황과 왕자들과 권신들의 세력구도 속에서 세조의 역할이나 그 인물됨에 공감하는 이야기도 있었고 한명회는 비록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그 지략과 계책의 영민함이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영원히 세조는 죽일 놈이고 한명회는 메피스토같이 힘 있는 자에게 들러붙은 교화하고 비열한 놈일 것이다. 그래도 그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재미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