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일기 #1> 느리게 가는 시계
시계의 본분보단 너만의 시간을 갖도록 해
내 방엔 느리게 가는 시계가 있다.
처음부터 느리게 간 건 아니고 제시간 따박따박 맞춰서 알려주던 시계였는데 아무래도 배터리가 오래돼서 시간이 더디게 가고 있는 듯하다. 처음에는 5분에서 10분 정도의 차이였고 그 정도는 대수롭지 않다 여기며 그냥 놔둔 방주인의 든적스러움도 한몫했다. 그러다 점점 시계는 더 더디게 갔다. 방주인의 게으름 때문인지 넓은 아량(?)인지 제 본분을 잊은 시계는 아직도 세월아 네월아 느릿느릿 가고 있다.
시계의 본분은 제시간을 알려주는 것이지만 나는 시계에게 자신만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각자의 시간이 있는데 남에게 제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쉬지도 못하고 달려온 시계에서 너만의 페이스를 찾으라고 기회를 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건 시계가 아닌 나에게 주는 기회였다.
그리고 더불어 배터리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었다. 비록 오래되어 예전만큼 쌩쌩한 힘이 남아있지 않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소명을 다할 기회. 이 또한 배터리가 아닌 나에게 주는 기회였다.
시계는 어느덧 35분이란 시간을 더디게 간다. 점점 더디게 가는 시계도 언젠가 멈추는 시간이 오겠지? 예견된 결과여도 갈 수 있을 때까지 너의 페이스대로 가보아라!
예견된 결과여도 갈 수 있을 때까지 너의 에너지를 다 쏟아봐라! 시계와 배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