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도의 법칙을 증명하는 도망가기
일드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의 제목을 보고 생각난 친구가 있었다. 바로 b였다. 친구 b와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만나 10년이 넘도록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때 우리 반 담임은 윤리와 사상을 담당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담임이 수행평가로 글쓰기나 토론을 통한 감상문 제출하기, 지각하면 시 3편 베껴 쓰기 등 제법 귀찮은 것들을 우리에게 시켰다는 것이었다.
b와 내가 친해진 것도 토론 수업을 통해서였다. 그날 우리는 짝지어 있는 책상을 6인용 회의 테이블로 만든 후에 성악설과 성선설에 관해 토론한 후 정리해 발표하는 게 수업 내용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2는 그렇게 어린 나이가 아니므로, 토론을 하는 날이면 애들은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서만 한참을 떠들었다. 말하라고 하면 성선설이든지 성악설이든지 뭐라든지 그 이유를 나열하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우리 반의 대표적인 분위기는 쿨함이라고 불리는 냉소 그 자체였다. 꿈을 말한다던가 생각을 주장한다는 것이 비웃음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애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담임도 만만한 양반은 아니었고 회의 내용을 적는 서기, 발표자, 찬반양론으로 구성된 멤버로 우리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애들의 야유와 귀찮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솔직히 역할이 부여된다고 뭐 달라지겠어?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역할이 주어지면서 애들은 어느새인가 열심히 참여하고 제법 즐기고 있었다. 우리의 토론이 제대로 된 토론(?)이라 부른다면 유치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찬반 의견의 대립될 때는 항상 “넌 그렇게 밖에 생각 못 하니?” 라는 식의 공격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니야! 난 다만, 오늘 역할이 찬성일 뿐이라고!”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도망칠 구석이 있다는 것! 그걸로 인해 처음으로 모두가 입을 열게 된 경험은 드라마 제목처럼 도망치는 것은 반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찬반 역할에 숨어서 부끄럽지만 말이다. 나는 이 경험이 나중에 애들에게 침묵을 깨고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숙할지언정 도망치지 않는 사람도 있기 마련, b가 그랬다. 성악설의 대표주자였던 b는 하루 종일
“인간에게 희망은 없다.”
라는 말만 반복해서 애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애들은 처음에는 낄낄거렸지만, 성선설을 반대하는 이유로 같은 말만 반복하자 당연히 싫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성선설 팀이었던 a가 돈을 열심히 벌어오는 아버지의 예시를 들자, 사실 너네 아빠는 싫어할 수도 있다고 말하며 호통을 치기까지 했다. a는 기분이 한껏 상해버려 울기 직전이었다. 애들은 a를 위해 성악설 멤버까지 성선설이 맞을 수도 있지, 하며 b를 설득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b는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럴 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서기는 열띤 토론에 팔을 쉬지 않고 글씨를 흩날리며 기록하고 있었고 다들 목소리가 높아지며 혼돈의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다른 조 애들까지 우리 조에 관심을 보였고 나는 제법 재미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시곗바늘만 눈에 들어왔다. 다음이 바로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인데, 그저 빨리 발표를 하고 급식실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이대로라면 우리 조가 가장 마지막에 발표를 할지도 모른다는 긴박한 마음을 가지고 나는 입을 열었다. 뭐, 근사한 말은 아니었고 어쨌든 우리는 사악할 수도 있지만 교육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성선설을 증명하고자 한다는 당연하고도 당연한 말이었다. a의 아버지는 악하게 태어났을지도 모르지만, 사랑하는 a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말에 모두들 동의했는지 대환장 파티는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났다. 수업 시간을 초과하지 않게 발표를 마친 덕에 나 또한 빨리 급식도 먹을 수 있었다.
b는 다음날 내게 피자빵을 건넸는데, 나는 이 사실에 매우 감동받았다. 우리 학교 매점의 인기 메뉴 1등인 피자빵이라니!!!!!! 3교시 쉬는 시간이 되기 전에 완판이 되는 피자빵, 바로 그 피자빵! 배가 안 고파도 일단은 피자빵을 사놓고 나중에 먹는 아이들까지 합쳐져 2교시 전에 매점을 가면 항상 락페스티발에 간 것처럼 사람들이 들썩들썩 움직였다. 숨 막히는 인파를 뚫어야 살 수 있었던 피자빵이었다.
내가 피자, 피자 운운하며 감격하고 있는 사이 b는 어제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내게 전했다. 사실, b를 도와주려는 의도는 아니었기에 민망했지만 어쨌든 난 피자빵을 건넨 b가 귀인이라 느껴졌고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리고 토론에서 b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듣게 되었는데, 사실은 그날 아침 b는 엄마에게 혼이 났고 자기도 모르게 반 친구들에게 심술을 부린 것 같아 신경 쓰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2학년 때 b를 처음 봐서 몰랐지만, b는 겨울방학에 전학을 와서 친구들도 별로 없는데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당당해 보였던 b에게도 속 사정이 있었고 첫인상과 다르게 작은 것에 쉽게 상처받는 친구였다. 내가 먹는 것만 신경 쓰는 단순한 아이였던 것처럼 b 또한 상처받는 것에 민감하지만, 자신이 주는 상처에 대해서는 미성숙했다고 생각한다. 어렸던 우리는 나이가 들었고 변했다. “자연스럽게”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나는 이 과정들이 개인적으로는 제법 힘들었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여러 사정으로 자주는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b는 나의 단점도 언제나 좋게 봐주고 칭찬해 주었다. 단순한 나에게 당당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고(사실 별생각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도 언제나 위로를 주었던 친구였다. 어떤 사람이 날 소중하게 생각해 준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지만, 내가 원한다고 타인의 마음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지금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하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나조차도 나이가 들면서 마음을 쉽게 주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피곤할 때, 귀찮게 여겨졌을 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 시기를 생각해 보면 b와 아직까지도 친구인 사실이 놀랍기까지 하다. 내 마음이 아플 때는 20대 중반이었는데, 무작정 회사를 관두고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후폭풍을 마주하고 있던 중이었다. 제대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이렇게 인생이 망한 게 아닌지 걱정만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런데 나는 내 아픔이 보잘것없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내가 겨우 입을 열어 b에게 고민을 말했을 때 b가 내게 해준 말을 기억한다.
가속도의 법칙 알아? 넌 지금은 느리지만, 언젠간 그 속도를 추월할 거야.
b는 가속도의 법칙에 의해 빨리 자기 앞 날을 찾은 사람들과 같은 시기에 만나는 순간도 올 것이고 아니면 그들을 추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생에 답이 없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내가 무작정 회사를 관뒀다고 후회하고 있지만 그게 용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곤 나중에 돌이켜보면 꼭 필요할지도 모르는 시기라고 덧붙였다. 그때 나는 b의 긍정에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정말 b의 말처럼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정말 필요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까지 남의 말을 잘 듣고 세상의 기준을 따라가던 내가 처음으로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주체적으로 행동했을 때였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나의 경제 상황을 생각하면 가속도의 법칙으로 인생의 호황기를 볼 정도로 추월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난 도망치는 것에 도움을 받았고 지금은 적어도 도망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도망쳤던 경험을 제외하고 말할 수 있을까? 또 b가 내게 건넨 마음이 없었다면 그 시기를 쉽게 이겨낼 수 없었을 것 같다.
난 그 시절 b가 내게 자주 건넨 말을 기억한다. “당연하지.” 내가 아프고 슬픈 건 당연한 거라고. 왜 그게 마음 아픈 일이 아니냐고. 별거 아닌 일이 아니라 중요한 일이라고. 그 말을 들으면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린 시절 나는 항상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 아파하기 싫어했다. 하지만, 아픔을 받아들어야 비로소 강한 인간이 된다는 것을 b가 알려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내 아픔을 축복으로 그리고 특별함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조금은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종종 인간관계에 지쳐 냉소적으로 변할 때가 많다. 비열한 나 자신에게 놀랄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b에게 받은 마음을 잊지 말자고. 그런 생각들을 하면, 조금은 마음이 돌아온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b가 건넨 피자빵처럼, b에게 무언가를 건네고 싶다는 마음도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