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타이완에서 배웁니다.
돌이켜 보면, 일본에서 대만으로 직장을 옮기고 그렇게 또다시 퇴사를 하고 긴 여행을 하게 되면서 나는 뭔가 인생의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어렴풋한 (큰) 기대를 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나는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내 삶의 ‘그때’와 ‘지금’은 큰 변화가 없다고.
사실 많은 사람들이 부푼 기대와 밝은 내일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가지만 그 부푼 기대와 밝은 내일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 나는, 확실히 20대 때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사고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잠시 내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대단한 성공을 하기 위해 혹은 엄청나게 대만이 좋아서 이곳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엔 1년만 있다 힘들면 일본으로 돌아가거나 한국 집으로 가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오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대개 해외로 유학, 이민, 취업 같은 인생의 큰 결정을 할 때면 이 결정이 과연 정답인가? 이렇게 정해도 되는 것인가? 등등의 심사숙고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주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완전히 떠나 말도 잘 안 통하는 곳에서 장기간 생활을 한다는 것은 확실히 가벼운 마음으로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과 떨어지는 추상적인 일에서부터 은행 계좌를 정리하고 집의 보증금을 빼는 피상적인 일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것은 없다. 이런 쉽지 않은 일이 내게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꽤 오랜 시간 스스로 분석하고 관찰한 결과,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에서 그 요인을 처음 찾게 됐다. 소위 우리 엄마 아빠는 ‘극성’ 부모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어떤 선택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큰 관여나 간섭을 하지 않았다. 서양 가정에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아이를 독립적으로 기르기 위해 방목형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거시적 안목이 있어서가 결코 아니었다. 그저 먹고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일을 열심히 그리고 많이 해야만 했고 그렇게 되면 아침 일찍부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자연적으로 줄어들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역시 많지 않게 된다. 늘 바빠서 못해줘서 미안해, 모자라서 미안해, 부족해서 미안해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에 응당한 경제적 서포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부모가 그들에게 그랬듯이 그들도 그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만 내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책과 공상을 좋아하는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었고, 그때 처음으로 큰 자극을 받았던 책이 <테오의 여행>이었다. '언젠가 나도 이런 멋진 여행을 해보아야지. 할 수 있을 거야.' 많은 것이 결핍된 가정에서 자랐지만 다행히도 나는 크게 비뚤어지거나 사고를 치는 아이는 아니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두구두구 엄마의 입으로 화자 된다. 너는 너무 착해. 그래서 너무 고마워.
나는 일부러 착하려고 했다기보다 그 당시엔 굉장히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반항을 할 생각도, 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학창 시절 형성된 이런 성격으로 인해 나는 아주 오랜 시간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져있었지만, 대학을 진학하고 첫사랑과 예쁜 연애를 하면서 어느 정도 나 자신을 찾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가 이렇게 밝은 성격으로 바뀐 데에는 첫사랑의 역할이 아주 컸다고 본다.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구원받을 수 있고, 완벽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바뀔 수 있다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열정과 체력이 충만했던 이십 대 때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내일이 없을 것 같은 열정으로 매일매일을 보냈던 것 같다. 여행도 연애도 학교 생활도 후회 없이 하고자 망설이지 않고 항상 앞만 보며 달렸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의 20대가 너무 고맙고 '그때 그렇게 해서 너무 다행이다.'며 감사하고 있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텐데, 너무 잘했다고. 그로 인해 지금 조금 더 성숙된 마음과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며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배운 삶의 가장 큰 진리와 기쁨은 '삶이라는 것은 원하는 데로 되는 것이 꼭 좋은 것이 아니고, 또 원하는 데로 되지 않는다고 꼭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의 나라에서, 그것도 나이만 꽉 찼지 여전히 부족함 투성이인 내가 여러 언어를 사용하며 씩씩하게 회사를 다니며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참 축복받은 소중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물론 잘 풀리지 않는 일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나라만의 문화도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장점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이 나라를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