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작사부작 유화와 스케치 이야기
좁디좁은 나의 타이완 인간관계 테두리 안에서도 웬만한 지인들은 내가 중국의 고장극이나 청나라의 역사, 무엇보다 이와 관련된 그림을 보거나 그리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친한 동료 중 한 명은 드럭 스토어에서 청나라 시대 귀족 여자의 디자인이 그려진 생리대를 발견하고 사진까지 찍어 공유를 해줄 정도였다.
이렇게 주변 지인들까지 알 정도인 소란스러운 나의 취미 생활은 아주 예전부터 있어 왔던 것은 아니고, 타이완에 오고 나서부터 생기게 된 아주 조금은 특별한 하나의 관례?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일본이나 캐나다에서 지낼 땐 그림을 그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내가 무슨 계기로 이렇게 짧지 않은 시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손을 놓지 않을 수 있었는지 지금도 미스터리이긴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학창 시절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아주 작은 열망이 커다란 불씨가 되어 타이밍 좋게 타이페이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막 타이페이에 왔을 때 우연한 계기로 프로젝터 빔을 이용한 스케치로 윤곽을 표현하고 유화로 색을 칠해가는 기법을 배우게 된 이후 최근엔 혼자 독립적으로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스케치를 하는 정도까지 오게 되었다.
그림의 주제는 아무런 바운더리 없이 꽂히면 일단 무조건 그리는 것이고, 꽂힘을 넘어 애정이 생기면 주기적으로 다니고 있는 화실에서 선생님과 상의 후 채색 작업까지 임하고 있다.
요즘에 꽂힌 이 여성은 기원전 6세기경 중앙아시아 초원을 강력하게 지배했던 마사게타이족의 전설적인 여전사 ‘토미리스’로 2019년 카자흐스탄에서 ‘전쟁의 여신’이라는 타이틀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평소 만주족에 관심이 많은 나였기에 유목 민족들의 생동감 있는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스케치 연습으로 이런저런 주제를 광범위하게 보고 있는데 울산대 동양화과를 거쳐 홍익대 대학원에서 그림을 전공하신 신선미 님의 그림도 요즘 주의 깊게 보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시간이 있을 땐 집 근처 미술사(화방)에 가서 오일이나 붓, 캔버스, 물감 같은 재료를 구경하기도 하고
주말 중 하루는 최근에 새롭게 다니게 된 작은 아뜰리에에서 작품 주제를 정해서 유화로 표현하여 그리기도 한다. 이 그림은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영국 여성이 190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작품집의 안에 있는 것인데, 그중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골라 그린 것이다.
이런 나에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끈기 있게 도전하고 있는 한 분야가 있는데, 바로 만주족 황실 여인들의 복장이 그것이다. 중국 한족의 복장과는 판이하게 다른 이들의 의복은 내게로 하여금 크나큰 좌절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고 싶지 않게끔 만드는 강렬함 그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참고로 이 초상화의 인물은 청나라 건륭 황제의 생모로 알려진 ‘뉴호록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