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포스트잇

-나의 이야기

by 장지영

크리스마스에 영국은 모든 대중교통이 멈춘다. 그 사실을 몰랐던 우리는 해 보지도 않은 행군을 다음 숙소까지 경험했다. 가던 중에 자전거 경적을 듣고 안 비켜줬다는 이유로, 어떤 노인이 자전거 타고 내 어깨를 주먹으로 치고 가기도 했다. 정말 메리 크리스마스였다.


숙소에 도착해서 첫 친구를 만났다. 우리가 공용시설의 공간에서 방 배정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 소녀는 여행객들의 포스트잇 흔적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What are you looking at."

그녀의 이름은 ‘리티’였다.


가끔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경계심이 전혀 없을 때가 있다.

등산 도중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사할 때, 해외여행을 가서 한국 사람을 마주쳤을 때, 친한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시기에 누군가와 대화할 때 등등.

난 그 상황에서 그녀에게 경계심을 안 느꼈나 보다.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그녀와 대화했다. 마치 내가 그녀의 선생님 같았다.


나와 분신, 그리고 리티와 그녀의 친구 쯔위는 금세 친해졌다. 그들은 대만 사람들이었고, 외국어 전공을 해서 여러 가지 언어에 능통했다.

우리는 저녁에, 로비에서 빔 프로젝터로 보여주는 영화를 같이 보기로 해서 같이 시청했다.

하지만 별로 재미가 없어서 분신과 나와 있을 때, 그들도 나와서 재미없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하다가, 한인 식당을 찾아서 함께 소맥을 마시러 갔다.


영국 ‘런던’에서 ‘대만’ 사람들을 데리고 ‘한인’ 식당에 가서 그들에게 소맥을 알려주는 기분은 굉장히 오묘했다. 신이 났고, 너무나도 별것 아닌 것들인데 어깨가 올라갔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이곳에서는 특별하고 전문적인 것이었다. 분신은 순식간에 소주와 맥주를 이용해 새로운 술을 만들어 내는 바텐더가 되었다.

우리는 웃음이 끊이질 않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그들과의 헤어짐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시간을 소중하게 보냈다.

소중하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없는데도 그랬다.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추억을 만들어냈다.


여행을 하다 만난 사람들은 '어차피 한 번만 볼 사람'이라는 무의식이 깔린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될 것 같은, 느낌. 외국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문득, 이 만남이 사소한 만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한 번만 보고 말 사람들이고, 별 것 아닌 관계라고.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우리가 결국 헤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인지해서, 이 행복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자기 방어’였다.


뭐, 사소한 만남이면 어때.

맞다. 이 시간은 큰 단위 중 하나일 뿐이었다. 단지 나의 여행이 좋은 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 그리고 이 조각은, 인생이라는 퍼즐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이 퍼즐 조각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녀가 여전히 포스트잇 글귀를 기억하는 것처럼.



최근에 그녀에게 포스트잇에 대해 물어보니 이 글을 보고 있었다고 했다.

“Life is hard, but vegetables are harder.” - “생활은 힘들지만 야채는 더 힘들다.”(직역)

그녀는 최근에 석사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Hope you enjoy your identity as a Jakga(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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