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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특강,평론

윤동주 遺稿詩集「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意義



신규호, 문학평론가



밀치고

밀리운다.


이랑을 넘는 물결은

폭포처럼 피어오른다.


해변에 아이들이 모인다.

찰찰 손을 씻고 구보로,



'童舟 '라는 필명으로 동시 등을 발표했던 윤동주가

스물한 살 때 쓴 바다의 일부이다

인생의 바다를 항해해야 했던 당시의 동주에게, 폭포처럼 피어오르는' '물결'은 한 번 도전해 볼만한 대상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 해(1937년)는 바로 우리 문단에 파도처럼 물결쳤던 이상한 사조, 초현실주의의 제1인자 '이상'이 영면한 해 이기도 하였다 '바다'처럼 푸짐한 文才의 뜻인 悔涣(兒名)을 실증해 보이려고 '童舟'에 몸을 실은 윤동주는 이미 연희전문 시절에 이상의 작품을 즐겨 읽었고 남에게도 '그의 글에는 배울 데가 있다며 읽기를 권했다고 한다 동주는 훗날 이상처럼 일본으로 건너가 공교롭게도 이상처럼 '不逞鲜人'혐의를 받아 구속당했고, 또 사정은 각각 다르나 역시 이상처럼 이국 하늘 아래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이와 같은 인연과 생애의 유사성은 그들의 작품에도 어떤 관련을 맺을 것으로 여겨지는 바, 두 문인이 다 같이 키에르케고르와 맥락이 닿고 있다

그러면, 동주를 내내 이상을 추종하는 아류가 되는가, 아니면 오히려 그 이상한 파도를 극복한으로써 창조자가 되는가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 물음이 밝혀지면 동주 문학의 가치 평가에도 응당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다

이상과 동주의 문학은 다 같이 병든 20세기 문명에 따른 고뇌의 표백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오.근처에는 꽃나무하나도없오.

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열심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으 꽃을피워가지고있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오.나는 막달아났오.한꽃나무를위하여그러는것처럼 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오.


-꽃나무-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과로,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ㅡ'병원' 부분-


기본적인 공약인 띄어 쓰기 마저 무시한 이상한 작품은

'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있'으면서도 '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는 '꽃나무'를 통하여

기계문명에 짓밟혀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1930년대 지식인의 고뇌를 나타냈거니와 정상적인 표기법에 의한 동주의 작품도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 때문에 1940년대 지식인의 고뇌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두 작품은 이렇게 고뇌를 표현했으면서도 현실에 대처해 나가는 자세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꽃나무-에서는 일상적인 '이상스러운흉내'로 보고, '막달아나'서 완전히 떨쳐버리려는 본래적 자아 '나'의 분열양상을 띠고 있는 절망적인 데 반하여, - 병원-에서는 '참다'못해 이곳을 '찾아'온 제 아픔을 몰라줌으로써 겪는 '지나친 시련, 과로'에도 자제력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현대병과 맞붙어 보겠다는 성실한 탐구적 양상을 띠고 있어 그런 대로 일루의 희망은 있어 보이니, 이 점이 바로 이상과 구별되는 동주 문학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면, 이와 같은 작품 양상의 차이는 무엇에서 기인된 것일까. 그것은 사물에 대한 작가의 생각, 곧 관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념은 어떤 대상을 지향하는 의식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관념은 의식 중의 과거의 인상이 현재에 제기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작가의 관념은 결국 그가 살아온 생활내용의 총체적인 축척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양자입양,고학,사업의 실패,폐결핵 등 어두운 면이 많이 작용한 데 반해, 동주에게는 유복한 생활, 평화로운 자연 독실한 신앙생활 등 밝은 면이 큰 도움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동주는 이상의 작품을 많이 섭취했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비슷하게 보이나 그는 이상에 만족함이 없이 새로운 길을 창조정신으로 그 결점을 극복하여 훨씬 격조 높은 민족시의 싹을 틔웠다 이상이 절망에 빠졌을 때,동주는 가능성이라는 해결책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을 극복했고, 전자가 민족의 앞날에 관심 없어 역사를 방관했을 때, 그는 -슬픈 족속-에 대한 깨달음과 사랑으로 잃은 것을 찾는 참여의 길을 걸었고 -오감도-의 시인이 외국문학의 모방이식에 몰두했을 때, 그는 가진 바 씨앗을 뿌리는 창조자가 되어 어렵고 까다로운 시를 지양하여 알기 쉽고도 순결한 새로운 민족시를 발아시켜 암흑기에도 값진 우리 시의 명맥을 이었으니, 우리가 원숙한 문화적 개화를 못 본 채 일제에 참혹하게 희생된

학생 시인의 비극적 삶을 서러워 마지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날자,날자,날자. 한 번만 날자꾸나-하고 애타게 절규했으면서도 끝내 날지 못한 이상의 '인공의 날개'을

초극하여, 순결한 민족혼으로 배가 항해하는 바다로부터-

하늘과 바람과 별-에로의 비상을 이룩한 동주의 시는 우리에게 조국이 존재하는 한 영원불멸 할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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