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흔히 삶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특히 세상사가 고단하게 느껴질 때 왠지 사회 현상에서 일반적 가치관과 괴리를 느끼고 쓸쓸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을 때 패러디를 통하여 삶을 치유해 나간다.
패러디를 구현함에 있어서 음악으로, 그림으로, 무용으로, 연극으로 등 여러 가지 예술을 통하여 표현을 하는데 이를 문학으로도 표현하여 사회상을 풍자하거나 고된 주변을 정화하고 치유해 나간다.
이런 의미에서 먼저 패러디에 대한 개념 파악을 명확히 하고나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parody라는 개념 파악을 위해 먼저 국어사전에 실린 의미를 새겨보면 ‘전통적인 사상이나 관념, 특정 작가의 문체를 모방하여 익살스럽게 변형하거나 개작하는 수법 또는 그렇게 쓴 작품’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패러디 하면 흔히 ‘당대 가치관의 허위를 풍자하고 폭로하는 방법으로 쓰이는 것’을 의미한다. 패러디 작품이 자칫 잘못하면 표절이라는 것으로 다툼이 발생 할 수도 있는데 그 개념을 명확히 파악하고 나면 패러디와 표절은 확연히 구별 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언어로 패스티시(pastiche)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기존의 작품을 차용하거나 모방하는 기법’으로 패러디와 유사한 기법이지만 풍자나 희극적인 요소가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패러디와 다르고 표절 쪽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패러디 작품을 대하면 우리는 그 작품 안에서 웃음을 찾고 그 웃음 안에서 해학의 이치와 아울러 나름의 가치관을 찾고 정립한다고 할 수 있기에 이 패러디 작품 역시 우리의 삶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와이담에서도 패러디기법이 차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을 보아 왔다 이런 와이담들은 그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한 것이기에 자칫잘못하면 정치적, 또는 종교적 측면에서 오해도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이런 와이담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에겐 새겨들어야 할 메시지고 그런 사회에서 고통을 견디고 있는 사람에겐 위안 또는 위로가 되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패러디에서도 한 편의 시가 탄생 된다는 것을 밝힌다.
또한, 패러디는 꼭 풍자나 희극적인 요소가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고 다음과 같은 경우도 패러디라는 범주에 해당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자 한다.
홍갑동 시인이 독도를 주제로 시를 지었는데 시의 이미지와 메시지가 동쪽 방향으로 바라보고 웃는 메시지를 담아 지었다고 하자. 그런데 이를 감상한 홍을동 시인이 바라보는 시야는 동쪽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니며 자기의 견해로는 서쪽이고 우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때 그 시를 반박하는 시로 창작해 내는 것도 패러디 이다.
또 어떤 시를 감상했는데 그 시의 이미지와 메시지에 동의를 하면서 어딘가 좀 부족한 곳이 있어서 그 부족한 곳을 자기 나름대로 채워서 더 좋게 재구성해서 시작 할 때 이것도 패러디 이다
임보시인의 시 <팬티>는 문정희 시인의 시 <치마>를 감상 하고 쓴 시로 이 역시 패러디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 두 편의 시를 먼저 소개 하고 의견을
서술 하고자 한다
치 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팬 티 / 임 보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도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 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이 두시에서 공통으로 쓰여지는 시어가 있다.
그것은 <대리석 기둥> <신전> <갯벌>등이 그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문정희 시인의 시에서 나오는 시어들을 임보 시인도 그 시어를 차용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시어를 표절 했다고 하지 않는다. 왜? 이는 표절이 아니고 패러디 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어를 놓고 표절 여부를 따질 때는 그 시의 시상과 전해지는 메시지를 놓고 판단 해야지 단순히 시어와 단어 하나만을가지고 문제 삼지 말라는 뜻으로 패러디에대한 개념을 소개한다
2015년 모신문사 신춘문예 당선작이 표절 시비로 당선이 취소 된 시를 보았다 그런데 그 시와 표절 당했다는 시를 보면 시어 그 자체가 하나도 같은 시어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표절이라 하는 것은 시어의 도용이 아니라 표절시와 원작시의 이미지와 메시지가 너무나 일치 하기에 표절로 결론지어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알고 시를 쓰거나 감상에 참고 하시기 바라면서 본 소고를 마친다.
다음은 문정희 시인의 <남편>시를 패러디 한 나의 졸시 <아내>를 올려 함께 감상해 본다.
아내 / 이근모
엄마도 아니고 누님도 아닌
엄마와 누나 사이의 촌수쯤 되는 여자
바깥에서 저지른 괴로운 일로
제일 먼저 의논 하고 싶다가도
바가지 깨지는 소리 두려워
그래 나만의 고통으로 감내하자 작심하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도 먼 여자
바가지가 집안을 굴러다닐 때에는
이 무슨 웬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내가 뿌린 씨앗을 튼튼하게 키울 여자는
이 여자 밖에 없을 것 같아
깊은 한숨 몰아 쉬고 일터로 향한다.
그러고 보니 일터에서 돌아오면
나와 함께 가장 많이 잠을 자는 여자
바가지 소리 감상법을 악보 없이 가르쳐준 여자
늙어갈수록 남자가 되어 나를 여자로 만드는 여자
얼마나 놀라운 가르침인가
아내라는 역할이.
- 문정희 시인의 시 "남편"을 패러디 하다.
남편 /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구 물어보구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밥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얼마나 놀라운 실수인가!
다음은 풍자나 희극적인 요소가 아닌 개념 설명 후자에서 예를 들어가면서 언급한 개념의 패러디시를 감상해 본다.
거지 / 투르게네프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 - - -
늙어 빠진 거지 하나가 나의 발길을 엄추게 한다.
눈물어린 충혈된 눈, 파리한 입술, 털복숭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 - -
오오, 가난은 어쩌면 이다지도 처참히 이 불행한 인간을 갉아 먹는 것일까!
그는 빨갛게 부풀은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 - -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한다.
나는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를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 - -
지갑도 없다, 시계도 없다, 손수건마저 없다 - - -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그러나 거지는 기다리고 있다 - - -
나에게 내민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리고 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줄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있는 그 더러운 손을 덥석 움켜 잡았다.
「 용서하시오, 형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구려」
거지는 충혈된 두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쳐갔다.
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다.
「 괜찮습니다, 나리」하고 그는 속삭였다.
「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깨달았다 - - -
나도 이 형제에게서 적선을 받았다는 것을 - - -
(감상)
투르게네프는 톨스토이와 쌍벽을 이루는 러시아의 대 문호다.
투르게네프의 대표작으로는 「농노일기 」,「처녀지」,「연기 」,「 父子」,「루싱 」등이 있다.
투르게네프의 " 거지"라는 작품은 그가 만년에 펴낸 산문시집의 대표작으로 구걸하는 가두의 거지를 두고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하여 그의 인도주의를 짐작 할 수 있다
이러한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창작된 시를 보고 우리나라의 유명한 시인들께서도 투르게네프의 시를 패러디 하여 발표한 시가 있기에 같이 감상해 보고 아울러 나의 졸시도 같이 감상해 보고자 여기에 올린다.
투르게네프의 언덕 / 윤동주
나는 고개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셋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 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 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 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근소근 이야기 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우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
(감상)
지절 시인 윤동주의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 속에 여상의 시 투르게네프의 거지를 빌어다 <투르게네프의 언덕>이라는 제한 시를 썼는데,투르게네프가 산책 중이라 줄 것이 없어 손을 잡아주었다고 쓴 것을 약간 야유하여, 있을 것은 다 있어도 줄 것이 없었다고 썼다.
거지에 관한 두 가지 노래 / 문병란
지하도 입구에
불구자 걸인 노인이
한 푼 줍쇼, 손을 내밀고 있었다
때마침 산책 중이던
러시아의 대문호 투르게네프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산책 중이라 가진 돈이 하나도 없었다
시계도 손수건도
오직 줄 것은 두 손뿐
대시인은 더러운 노인의 손을 잡고
“형제여, 오늘은 이것밖에 줄 것이 없구려!”
순간 불구자의 두 뺨이 더워오며
그의 눈곱 낀 퀭한 눈에 눈물이 그렁
“신사님 지금까지 얻은 것 중
당신께서 주신 사랑의 손길이
가장 값지고 귀한 것입니다”.
60년 후
무대는 바뀌어 서울 미아리 고개
휴지 줍는 거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청년 시인 윤동주
때 저린 몰골의 거지 소년들을 보았다
주머니에는 지폐도 있었고
시계도 손수건도 있을 것은 다 있었다
그러나 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위로의 말이나 건네려고
“애들아, 수고가 많구나
요새 하루에 얼마나 버니?“
그러나 적의에 찬 눈
소년들의 검은 얼굴엔
새까만 눈동자가 번쩍거렸다
“그건 알아서 무엇 하시려우!”
공연한 관심 내팽개치고
그들은 사납게
쓰레기통을 둘러매고
집게를 꼭 쥐는 것이었다.
손보다 위로보다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한 푼 두 푼 던져주는 동전인가?
아니다, 사회가 마련한 복지제도
공동체 사회가 베푸는
더불어 사는 오늘의 사랑의 확산이다
도시의 포도 위에
해는 뉘엿뉘엿
오늘도 투르게네프의 언덕 위엔
거지 노인이 두 손 벌리고 앉아 있고
서울의 미아리 고개위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시인의 슬픈 노래가 흐르고 있다.
(감상)
문병란 시인의 거지에 관한 두가지 노래는 국적을 달리한 투르게네프 시와 윤동주의 시를 가지고 두 시인이 이야기 하는 메시지의 서로 다른 양자에 대하여 그 양자의 극복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메시지를 담았으나 보통의 사람들은 동전 몇 푼 던져 주는 것이 적선인 줄 안다는 인간의 적선에 대한 상황을 비판하고 있다.
투르게네프 사거리 / 이근모
나는 투르게네프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이다.
파란 불이 켜져도 차량 모두 정지한 채다.
초록색 신호등을 가로막고
방실방실 여유롭게 걸어가는 모습,
너무나 고고하다.
고고한 그분, 이름 하여 똥개라는데
수많은 차를 좌지우지한다.
에쿠스 운전하다 멈춰선 신사
짜증을 뱉어낸다
마침 그곳에서 구걸하는 거지 한 분
멈춰선 차를 향해
「 100원만 주세요」
「 200원만 주세요, 300원만 주세요」
구걸하는 돈의 액수가 차종에 따라 다르다.
짜증만 내는 운전자들 거지를 쳐다보지 않는다.
그러자 거지 개한테 달려가더니
덥석 안아 차도 밖으로 쫓아낸다.
짜증 덜어주면 한 푼 줄줄 알고 - - -
그러나 운전자들, 마후라 검은 연기 확 품어
거지에게 쏟아 붓고 붕붕 달려가 버린다.
그 사거리에 자동차 바퀴 흔적만 밀려들 뿐
아무도 없었다
투르게네프 울음소리가 정적을 깨는
출근길 아침 - - -
나의 지갑에는 달랑 신용카드만 있었다.
깜빡이로 깜박깜박 그 거지에게 마음으로만 적선하고 떠났다.
그 거지 나의 깜박이는 마음을 보았을까?
(감상)
우연히 나의 출근길에 목격한 어느 거지의 구걸 광경을 보고 투르게네프의 "거지"라는 시가 떠올라 이를 패러디 하여 나름의 시 하나를 써보았는데 그 시의 제목을 "투르게네프의 사거리"로 하고 그때의 광경에서는 인도주의가 실종되어 있음이 매우 안타까웠다 내 자신도 인도주의를 외면하였고---
하여, 그때의 상황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써본 시다.
이근모(시인)
우리는 살아가면서 흔히 삶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특히 세상사가 고단하게 느껴질 때 왠지 사회 현상에서 일반적 가치관과 괴리를 느끼고 쓸쓸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을 때 패러디를 통하여 삶을 치유해 나간다.
패러디를 구현함에 있어서 음악으로, 그림으로, 무용으로, 연극으로 등 여러 가지 예술을 통하여 표현을 하는데 이를 문학으로도 표현하여 사회상을 풍자하거나 고된 주변을 정화하고 치유해 나간다.
이런 의미에서 먼저 패러디에 대한 개념 파악을 명확히 하고나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parody라는 개념 파악을 위해 먼저 국어사전에 실린 의미를 새겨보면 ‘전통적인 사상이나 관념, 특정 작가의 문체를 모방하여 익살스럽게 변형하거나 개작하는 수법 또는 그렇게 쓴 작품’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패러디 하면 흔히 ‘당대 가치관의 허위를 풍자하고 폭로하는 방법으로 쓰이는 것’을 의미한다. 패러디 작품이 자칫 잘못하면 표절이라는 것으로 다툼이 발생 할 수도 있는데 그 개념을 명확히 파악하고 나면 패러디와 표절은 확연히 구별 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언어로 패스티시(pastiche)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기존의 작품을 차용하거나 모방하는 기법’으로 패러디와 유사한 기법이지만 풍자나 희극적인 요소가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패러디와 다르고 표절 쪽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패러디 작품을 대하면 우리는 그 작품 안에서 웃음을 찾고 그 웃음 안에서 해학의 이치와 아울러 나름의 가치관을 찾고 정립한다고 할 수 있기에 이 패러디 작품 역시 우리의 삶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와이담에서도 패러디기법이 차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을 보아 왔다 이런 와이담들은 그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한 것이기에 자칫잘못하면 정치적, 또는 종교적 측면에서 오해도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이런 와이담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에겐 새겨들어야 할 메시지고 그런 사회에서 고통을 견디고 있는 사람에겐 위안 또는 위로가 되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패러디에서도 한 편의 시가 탄생 된다는 것을 밝힌다.
또한, 패러디는 꼭 풍자나 희극적인 요소가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고 다음과 같은 경우도 패러디라는 범주에 해당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자 한다.
홍갑동 시인이 독도를 주제로 시를 지었는데 시의 이미지와 메시지가 동쪽 방향으로 바라보고 웃는 메시지를 담아 지었다고 하자. 그런데 이를 감상한 홍을동 시인이 바라보는 시야는 동쪽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니며 자기의 견해로는 서쪽이고 우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때 그 시를 반박하는 시로 창작해 내는 것도 패러디 이다.
또 어떤 시를 감상했는데 그 시의 이미지와 메시지에 동의를 하면서 어딘가 좀 부족한 곳이 있어서 그 부족한 곳을 자기 나름대로 채워서 더 좋게 재구성해서 시작 할 때 이것도 패러디 이다
임보시인의 시 <팬티>는 문정희 시인의 시 <치마>를 감상 하고 쓴 시로 이 역시 패러디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 두 편의 시를 먼저 소개 하고 의견을
서술 하고자 한다
치 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팬 티 / 임 보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도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 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이 두시에서 공통으로 쓰여지는 시어가 있다.
그것은 <대리석 기둥> <신전> <갯벌>등이 그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문정희 시인의 시에서 나오는 시어들을 임보 시인도 그 시어를 차용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시어를 표절 했다고 하지 않는다. 왜? 이는 표절이 아니고 패러디 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어를 놓고 표절 여부를 따질 때는 그 시의 시상과 전해지는 메시지를 놓고 판단 해야지 단순히 시어와 단어 하나만을가지고 문제 삼지 말라는 뜻으로 패러디에대한 개념을 소개한다
2015년 모신문사 신춘문예 당선작이 표절 시비로 당선이 취소 된 시를 보았다 그런데 그 시와 표절 당했다는 시를 보면 시어 그 자체가 하나도 같은 시어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표절이라 하는 것은 시어의 도용이 아니라 표절시와 원작시의 이미지와 메시지가 너무나 일치 하기에 표절로 결론지어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알고 시를 쓰거나 감상에 참고 하시기 바라면서 본 소고를 마친다.
다음은 문정희 시인의 <남편>시를 패러디 한 나의 졸시 <아내>를 올려 함께 감상해 본다.
아내 / 이근모
엄마도 아니고 누님도 아닌
엄마와 누나 사이의 촌수쯤 되는 여자
바깥에서 저지른 괴로운 일로
제일 먼저 의논 하고 싶다가도
바가지 깨지는 소리 두려워
그래 나만의 고통으로 감내하자 작심하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도 먼 여자
바가지가 집안을 굴러다닐 때에는
이 무슨 웬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내가 뿌린 씨앗을 튼튼하게 키울 여자는
이 여자 밖에 없을 것 같아
깊은 한숨 몰아 쉬고 일터로 향한다.
그러고 보니 일터에서 돌아오면
나와 함께 가장 많이 잠을 자는 여자
바가지 소리 감상법을 악보 없이 가르쳐준 여자
늙어갈수록 남자가 되어 나를 여자로 만드는 여자
얼마나 놀라운 가르침인가
아내라는 역할이.
- 문정희 시인의 시 "남편"을 패러디 하다.
남편 /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구 물어보구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밥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얼마나 놀라운 실수인가!
다음은 풍자나 희극적인 요소가 아닌 개념 설명 후자에서 예를 들어가면서 언급한 개념의 패러디시를 감상해 본다.
거지 / 투르게네프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 - - -
늙어 빠진 거지 하나가 나의 발길을 엄추게 한다.
눈물어린 충혈된 눈, 파리한 입술, 털복숭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 - -
오오, 가난은 어쩌면 이다지도 처참히 이 불행한 인간을 갉아 먹는 것일까!
그는 빨갛게 부풀은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 - -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한다.
나는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를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 - -
지갑도 없다, 시계도 없다, 손수건마저 없다 - - -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그러나 거지는 기다리고 있다 - - -
나에게 내민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리고 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줄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있는 그 더러운 손을 덥석 움켜 잡았다.
「 용서하시오, 형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구려」
거지는 충혈된 두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쳐갔다.
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다.
「 괜찮습니다, 나리」하고 그는 속삭였다.
「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깨달았다 - - -
나도 이 형제에게서 적선을 받았다는 것을 - - -
(감상)
투르게네프는 톨스토이와 쌍벽을 이루는 러시아의 대 문호다.
투르게네프의 대표작으로는 「농노일기 」,「처녀지」,「연기 」,「 父子」,「루싱 」등이 있다.
투르게네프의 " 거지"라는 작품은 그가 만년에 펴낸 산문시집의 대표작으로 구걸하는 가두의 거지를 두고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하여 그의 인도주의를 짐작 할 수 있다
이러한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창작된 시를 보고 우리나라의 유명한 시인들께서도 투르게네프의 시를 패러디 하여 발표한 시가 있기에 같이 감상해 보고 아울러 나의 졸시도 같이 감상해 보고자 여기에 올린다.
투르게네프의 언덕 / 윤동주
나는 고개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셋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이었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 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 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 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돌아다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근소근 이야기 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우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
(감상)
지절 시인 윤동주의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 속에 여상의 시 투르게네프의 거지를 빌어다 <투르게네프의 언덕>이라는 제한 시를 썼는데,투르게네프가 산책 중이라 줄 것이 없어 손을 잡아주었다고 쓴 것을 약간 야유하여, 있을 것은 다 있어도 줄 것이 없었다고 썼다.
거지에 관한 두 가지 노래 / 문병란
지하도 입구에
불구자 걸인 노인이
한 푼 줍쇼, 손을 내밀고 있었다
때마침 산책 중이던
러시아의 대문호 투르게네프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산책 중이라 가진 돈이 하나도 없었다
시계도 손수건도
오직 줄 것은 두 손뿐
대시인은 더러운 노인의 손을 잡고
“형제여, 오늘은 이것밖에 줄 것이 없구려!”
순간 불구자의 두 뺨이 더워오며
그의 눈곱 낀 퀭한 눈에 눈물이 그렁
“신사님 지금까지 얻은 것 중
당신께서 주신 사랑의 손길이
가장 값지고 귀한 것입니다”.
60년 후
무대는 바뀌어 서울 미아리 고개
휴지 줍는 거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청년 시인 윤동주
때 저린 몰골의 거지 소년들을 보았다
주머니에는 지폐도 있었고
시계도 손수건도 있을 것은 다 있었다
그러나 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위로의 말이나 건네려고
“애들아, 수고가 많구나
요새 하루에 얼마나 버니?“
그러나 적의에 찬 눈
소년들의 검은 얼굴엔
새까만 눈동자가 번쩍거렸다
“그건 알아서 무엇 하시려우!”
공연한 관심 내팽개치고
그들은 사납게
쓰레기통을 둘러매고
집게를 꼭 쥐는 것이었다.
손보다 위로보다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한 푼 두 푼 던져주는 동전인가?
아니다, 사회가 마련한 복지제도
공동체 사회가 베푸는
더불어 사는 오늘의 사랑의 확산이다
도시의 포도 위에
해는 뉘엿뉘엿
오늘도 투르게네프의 언덕 위엔
거지 노인이 두 손 벌리고 앉아 있고
서울의 미아리 고개위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시인의 슬픈 노래가 흐르고 있다.
(감상)
문병란 시인의 거지에 관한 두가지 노래는 국적을 달리한 투르게네프 시와 윤동주의 시를 가지고 두 시인이 이야기 하는 메시지의 서로 다른 양자에 대하여 그 양자의 극복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메시지를 담았으나 보통의 사람들은 동전 몇 푼 던져 주는 것이 적선인 줄 안다는 인간의 적선에 대한 상황을 비판하고 있다.
투르게네프 사거리 / 이근모
나는 투르게네프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이다.
파란 불이 켜져도 차량 모두 정지한 채다.
초록색 신호등을 가로막고
방실방실 여유롭게 걸어가는 모습,
너무나 고고하다.
고고한 그분, 이름 하여 똥개라는데
수많은 차를 좌지우지한다.
에쿠스 운전하다 멈춰선 신사
짜증을 뱉어낸다
마침 그곳에서 구걸하는 거지 한 분
멈춰선 차를 향해
「 100원만 주세요」
「 200원만 주세요, 300원만 주세요」
구걸하는 돈의 액수가 차종에 따라 다르다.
짜증만 내는 운전자들 거지를 쳐다보지 않는다.
그러자 거지 개한테 달려가더니
덥석 안아 차도 밖으로 쫓아낸다.
짜증 덜어주면 한 푼 줄줄 알고 - - -
그러나 운전자들, 마후라 검은 연기 확 품어
거지에게 쏟아 붓고 붕붕 달려가 버린다.
그 사거리에 자동차 바퀴 흔적만 밀려들 뿐
아무도 없었다
투르게네프 울음소리가 정적을 깨는
출근길 아침 - - -
나의 지갑에는 달랑 신용카드만 있었다.
깜빡이로 깜박깜박 그 거지에게 마음으로만 적선하고 떠났다.
그 거지 나의 깜박이는 마음을 보았을까?
(감상)
우연히 나의 출근길에 목격한 어느 거지의 구걸 광경을 보고 투르게네프의 "거지"라는 시가 떠올라 이를 패러디 하여 나름의 시 하나를 써보았는데 그 시의 제목을 "투르게네프의 사거리"로 하고 그때의 광경에서는 인도주의가 실종되어 있음이 매우 안타까웠다 내 자신도 인도주의를 외면하였고---
하여, 그때의 상황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써본 시다.
이근모(시인)
우리는 살아가면서 흔히 삶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특히 세상사가 고단하게 느껴질 때 왠지 사회 현상에서 일반적 가치관과 괴리를 느끼고 쓸쓸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을 때 패러디를 통하여 삶을 치유해 나간다.
패러디를 구현함에 있어서 음악으로, 그림으로, 무용으로, 연극으로 등 여러 가지 예술을 통하여 표현을 하는데 이를 문학으로도 표현하여 사회상을 풍자하거나 고된 주변을 정화하고 치유해 나간다.
이런 의미에서 먼저 패러디에 대한 개념 파악을 명확히 하고나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parody라는 개념 파악을 위해 먼저 국어사전에 실린 의미를 새겨보면 ‘전통적인 사상이나 관념, 특정 작가의 문체를 모방하여 익살스럽게 변형하거나 개작하는 수법 또는 그렇게 쓴 작품’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패러디 하면 흔히 ‘당대 가치관의 허위를 풍자하고 폭로하는 방법으로 쓰이는 것’을 의미한다. 패러디 작품이 자칫 잘못하면 표절이라는 것으로 다툼이 발생 할 수도 있는데 그 개념을 명확히 파악하고 나면 패러디와 표절은 확연히 구별 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언어로 패스티시(pastiche)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기존의 작품을 차용하거나 모방하는 기법’으로 패러디와 유사한 기법이지만 풍자나 희극적인 요소가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패러디와 다르고 표절 쪽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패러디 작품을 대하면 우리는 그 작품 안에서 웃음을 찾고 그 웃음 안에서 해학의 이치와 아울러 나름의 가치관을 찾고 정립한다고 할 수 있기에 이 패러디 작품 역시 우리의 삶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와이담에서도 패러디기법이 차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을 보아 왔다 이런 와이담들은 그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한 것이기에 자칫잘못하면 정치적, 또는 종교적 측면에서 오해도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이런 와이담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에겐 새겨들어야 할 메시지고 그런 사회에서 고통을 견디고 있는 사람에겐 위안 또는 위로가 되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패러디에서도 한 편의 시가 탄생 된다는 것을 밝힌다.
또한, 패러디는 꼭 풍자나 희극적인 요소가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고 다음과 같은 경우도 패러디라는 범주에 해당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자 한다.
홍갑동 시인이 독도를 주제로 시를 지었는데 시의 이미지와 메시지가 동쪽 방향으로 바라보고 웃는 메시지를 담아 지었다고 하자. 그런데 이를 감상한 홍을동 시인이 바라보는 시야는 동쪽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니며 자기의 견해로는 서쪽이고 우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때 그 시를 반박하는 시로 창작해 내는 것도 패러디 이다.
또 어떤 시를 감상했는데 그 시의 이미지와 메시지에 동의를 하면서 어딘가 좀 부족한 곳이 있어서 그 부족한 곳을 자기 나름대로 채워서 더 좋게 재구성해서 시작 할 때 이것도 패러디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