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의 도전 'K-AI 프로젝트' AI 주권 시대의 서막
글로벌연합대학 버지니아대학교
인공지능융합연구소장 이현우 교수
1. GPU로 열린 문: SKT, 다크호스에서 중심으로
2025년 한국의 인공지능 대형모델 개발을 위한 'K-AI 프로젝트' 1차 선정 결과는 산업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번 선정에서 가장 이목을 끌었던 기업은 바로 SK텔레콤이다. 이전까지는 후보 예측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SKT가 막판에 이름을 올리면서, 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놀라움과 동시에 그 배경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GPU 인프라'였다. SKT는 2023년 말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GPU인 엔비디아의 'H100'을 기반으로 AI 데이터센터를 직접 운영하며, 자가 인프라 구축에 공을 들여 왔다. 이는 단순한 기술력 이상으로 ‘국가의 재정적 지원 없이도 독립적으로 대규모 모델을 운용할 수 있는 역량’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들 역시 “자체 조달 계획이 주요 가산점이 됐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는 단순히 GPU의 보유 여부를 넘어선다. 하드웨어와 인프라를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장기적인 AI 개발 생태계에서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상징한다. AI 모델이 정밀하고 성능이 뛰어나도, 그것을 훈련하고 실행할 인프라가 없다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SKT는 이번 프로젝트의 중장기적 운용 능력 면에서 탁월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2. 모델의 무게보다 중요한 ‘실행 가능성’
SKT가 기존에 공개한 모델들은 사실 경량급이었다. 최근 공개한 오픈소스 LLM인 ‘에이닷엑스(A.dot X) 4.0’도 7B(70억 개 파라미터), 72B 수준으로, 수백억 단위 이상의 글로벌 파운데이션 모델들과 비교하면 가벼운 편에 속한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모델의 스케일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SKT는 “국내에서는 수백B 이상의 모델을 아직 시도한 기업이 없다”며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가능성을 남겼다. 더 나아가, 단순한 파라미터 확장을 넘어서 ‘포스트-트랜스포머(Post-Transformer)’ 아키텍처로의 전환을 계획 중이라고 밝히며 기존의 모델 구조 자체를 혁신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단지 따라가는 전략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트랜스포머 아키텍처는 GPT 계열을 비롯한 현재의 대형 AI 모델들이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인 구조다. 하지만 연산 비용과 확장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SKT의 전략은 이런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구조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비전으로, 국내 AI 기술 발전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3. 업스테이지와 코난테크놀로지: 다양성과 범용성의 승부
이번 K-AI 프로젝트에서는 대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 중심의 컨소시엄들도 선정되었다. 특히 주목받은 것은 업스테이지와 코난테크놀로지의 대결 구도였다. 코난은 '제조업 특화 모델'이라는 분야 전문성을 전면에 내세웠고, 업스테이지는 법률, 의료, 국방, 금융 등 다양한 산업의 AI 스타트업과 손잡은 ‘범용성’ 전략을 펼쳤다.
결국 승자는 업스테이지였다. 이는 정부가 '산업특화'보다 '범용 응용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판단했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산업군과의 연결은 곧 기술의 확장성과 상용화 가능성을 의미하며,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플랫폼적 역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또한 업스테이지는 이미 자체적으로 성능 높은 LLM을 오픈소스로 공개해왔고, 여러 민간 기업과 협업 사례도 확보하고 있어, 실전 적용력 면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이는 스타트업이지만, 기술력과 네트워크에서 대기업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췄다는 점을 입증한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4. 의외의 탈락: 카카오의 한계
반면, 유력 후보 중 하나였던 카카오는 이번 평가에서 탈락했다. 카카오는 여러 오픈소스 모델을 선보이며 국내 AI 생태계 확장에 기여해온 기업 중 하나다. 그러나 “파운데이션 모델을 독자적으로 설계하고 구현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뒷받침되었다.
가장 최근에 공개한 멀티모달 모델 역시 성능 측면에서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는 단순히 결과물의 성능을 넘어서, 그 기반이 되는 연구 인프라와 지속적인 개발 체계에 대한 신뢰도가 부족했음을 시사한다. 결국, 지속성과 독립적 수행 능력이 관건이었고, 카카오는 그 부분에서 점수를 얻지 못한 것이다.
이번 사례는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AI 분야에서의 진정한 역량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 보유를 넘어, 미래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과 실현 가능한 실행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5. ‘K-AI’의 미래, 그리고 AI 주권의 시작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연구개발 지원을 넘어, 국가 차원의 AI 주권 확보와 생태계 주도권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최종 선정된 5개 컨소시엄은 앞으로 ‘K-AI’라는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으며, 2027년까지 글로벌 첨단 모델의 95% 성능을 갖춘 오픈소스 모델 개발이라는 대업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정부는 이들을 6개월마다 평가하고 점차 팀을 줄여나가며 최종적으로는 2개 팀만을 남길 계획이다. 현재까지는 LG AI연구원과 네이버가 유력한 후보로 지목되고 있으나, NC AI 역시 높은 투자를 감행하고 있는 만큼, 끝까지 예측할 수 없는 경쟁이 될 것이다.
과기정통부의 배경훈 장관은 “모두의 AI를 위한 출발점”이라고 이번 사업을 정의했다. 이는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한 국가적 의지를 반영하는 발언이며, 민간의 혁신을 뒷받침하는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예고한 셈이다.
이번 사업은 단지 기술 개발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이 독자적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글로벌 경쟁 속에서 ‘소버린 AI(Sovereign AI)’라는 새로운 개념을 정립해나가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이제 SKT, 업스테이지, 그리고 그 밖의 선발된 기업들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