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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생 Nov 04. 2024

카페 방랑자

기승전 스타벅스


저녁 근무가 있는 날은 어김없이 아침 일찍 짐을 주섬주섬 챙겨 집을 나선다. 달그락거리는 가방 속에는 책과 아이패드, 블루투스 키보드, 아이펜슬과 펜이 담긴 필통 등이 담겨있다.
뭔가를 이루고 싶은(그 뭔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의욕이 강한 날일수록 가방은 무거워진다. 책이 2, 3권으로 늘어나고 때로는 묵직한 노트북이 따라붙기도 한다.
편안하지만 너무 추레하지는 않은 옷(물론 내 기준이다)을 대충 걸쳐입고 가방을 들쳐매고 카페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어디가 좋을까. 폴바셋? 스타벅스? 아니면 커피빈?

프랜차이즈 카페를 특별히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마음 편히 몇 시간 동안 있을 만한 곳은 대형 프랜차이즈밖에 없어서 매번 폴바셋이나 커피빈으로 향하게 된다.
오늘은 매번 가던 동네 폴바셋에 앉아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자마자 괜히 지겹고 따분해 하품이 나올 지경이어서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행선지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고, 정처 없이 떠돌다가 느낌이 좋은 곳을 발견하면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카페를 찾기 위한 일종의 짧은 방랑이다.

늘 가던 커피빈과 폴바셋을 지나 교대 쪽으로 향했다. 법원 앞 횡단보도에는 직장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월요일이었지.
나는 겉으로는 태연하고 어른스러운 척 하지만 속으로는 월요일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해 절규하고 있을 사람들을 보며 묘한 승리감을 느꼈다.
어차피 지금 쉬고 이따 저녁에는 눈알 빠지게 일할 텐데, 저녁 근무를 하는 날에는 왠지 하루를 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아침에만.

조삼모사의 정석 코스를 밟고 있는 어리석은 나는 출근하는 인파를 뚫고 교대역 앞까지 왔다. 근처의 폴바셋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폴바셋 옆 건물에서 공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인즉슨 폴바셋에 있으면 공사 소음 때문에 시끄럽고 창 밖을 내다봐 봤자 공사판 뷰가 전부일 거라는 뜻이다.
나는 재빨리 폴바셋을 손절하고 길 건너편에 자리잡은 달콤 커피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가며 종종 봤던 곳인데 매장이 널찍해 보여서 죽치고 있기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매장 앞에 ‘매장 사정으로 9시부터 19시까지만 영업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매장 안이 지나치게 한산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도 패스.  

슬슬 지치기 시작한 내 시야에 길 건너편에 있는 톤다운된, 내 얼굴보다 익숙한 초록색 로고가 들어왔다. 그래, 역시 세상의 시작과 끝은 스타벅스지.
그리하여 나는 집에서 약 20분 거리에 있는 교대역 3번 출구 근처에 자리잡은 스타벅스 창가에 둥지를 틀고 자판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아까는 창가의 햇살 때문에 눈이 너무 부시고 피부가 화끈거리는 데다 카운터 근처 자리라서 커피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엉덩이와 눈이 마주치곤 했지만 지금은 나름 한산해져서 괜찮다.
여기서 12시 10분 경까지 할 일을 하고 노닥거리다 집에 돌아갈 예정이다. 역시 사람 없는 평일 오전의 카페는 최고다. 집보다 좋다. (사람 없는) 스타벅스 만세.



(표지 이미지 출처는 강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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