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진짜 대화는 커피브레이크 시간에 일어날까?

Open Space Technology라는 마법

by Helen


우리는 거의 매일 '회의'라는 이름의 질서 정연한 연극에 참여한다. 미리 짜인 대본 같은 의제, 누군가의 주도로 흘러가는 정해진 시간, 그리고 약속된 결론. 그 숨 막히는 안전함 속에서 우리의 창의성은 종종 길을 잃곤 한다. 하지만 여기, 아무런 대본도, 카리스마 넘치는 진행자도 없이 오직 참여자의 뜨거운 열기만으로 항해를 하며 목적지에 이르는 항해법이 있다. 바로 '오픈 스페이스 테크놀로지(OST)'다.


| 커피 향기 속에 숨어있던 진실


이 혁신적인 회의 기법의 씨앗은 뜻밖에도 커피 브레이크에서 발견되었다. 1983년, 해리슨 오웬은 1년간 공들여 준비한 국제회의를 마친 뒤 묘한 허탈함에 빠졌다. 수많은 전문가가 모여 진지한 토론을 나눴지만,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가장 유익했던 시간은 커피 브레이크였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격식을 차린 회의실 내부보다, 복도에서 종이컵을 들고 나누던 그 무질서한 대화 속에 진짜 통찰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는 결심했다. 그 역동적인 에너지 자체를 회의의 중심부로 가져오기로. 그렇게 탄생한 OST는 원형으로 둘러앉아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발제한 안건을 올리고, 장터처럼 자유롭게 흩어져 대화하며, 그 결과를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강력한 구조를 갖게 되었다.


| 스스로 길을 찾는 강물의 원리


OST를 지탱하는 힘은 '자기조직화이론'과 맞닿아 있다. 외부의 강제적인 압력 없이도 강물이 스스로 길을 내어 바다로 흘러가듯, 우리 안에는 이미 질서를 만들어낼 지능이 존재한다. 리더가 꽉 쥐고 있던 통제의 끈을 슬그머니 놓아줄 때, 비로소 잠들어 있던 집단의 야성이 깨어난다.


이 공간을 지배하는 원칙들은 투박하지만 정직하다. '오는 사람이 맞는 사람'이며, '시작된 시간이 맞는 시간'이라는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 강력한 '두 발의 법칙'이 있다. 토론 중에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거나 기여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면, 미련 없이 두 발을 이용해 다른 대화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는 무책임한 회피가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가장 가치 있는 곳에 쓰겠다는 지독한 책임감의 표현이다.


[OST 운영 원칙]


오는 사람이 맞는 사람들이다: 숫자가 아니라 대화의 질과 열정이 중요하다.

일어나는 일은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가능성에 집중한다.

시작한 시간이 맞는 시간이다: 창의성은 시계가 아니라 준비된 순간에 깨어난다.

끝나면 끝난 것이다: 에너지가 다했다면 억지로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

두발의 법칙 : 토론 중 수시로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다.


| OST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OST의 진행은 일반적인 회의와는 완전히 결을 달리한다. 미리 짜인 시나리오 대신, 참여자의 에너지가 흐르는 대로 '공간'을 여는 것에 집중한다.

원의 창조와 오프닝: 참여자 전원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서로를 마주 본다. 퍼실리테이터의 안내에 따라 회의의 취지와 '두 발의 법칙'을 공유하며 자발적 참여를 독려한다.

현장 의제 설정(Marketplace): 미리 정해진 안건은 없다. 주제에 열정을 가진 사람이 즉석에서 이슈를 제안하고 벽면에 게시한다. 참여자들은 장터에서 물건을 고르듯 자신이 기여하고 싶은 주제를 스스로 선택한다.

자율적 토론과 실시간 기록: 각 세션은 제안자가 중심이 되어 자유롭게 토론한다. 독특한 점은 모든 토론 결과가 현장에서 즉시 기록되고 공유된다는 것이다. 참여자들은 '두 발'을 이용해 여러 대화를 오가며 집단 지성을 융합한다.

수렴과 클로징: 마지막으로 모든 기록을 통합하여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제 행동 계획으로 연결한다. 다시 원으로 모여 소회를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하며, 이 모든 과정은 단 몇 시간에서 며칠 만에 고도의 집중력으로 완성된다.


이곳에서 퍼실리테이터는 꽃들이 마음껏 피어날 수 있도록 토양을 고르는 정원사가 된다. 해리슨 오웬은 큰 세션을 앞두고 늘 명상을 하며 자신을 비웠다고 한다. '완벽하게 존재하되, 완전히 보이지 않는(Totally Present, Absolutely Invisible)' 상태. 그 고요한 존재감이 참여자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준다.

<Open space meeting at NASA Goddard Space Flight Center>


| 성공을 위한 네 가지 전제


OST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이 도구가 제 위력을 발휘하여 비범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진정한 비즈니스 이슈와 절박함: 단순히 "친해지자"는 식의 모호한 목적은 곤란하다. 참여자 모두가 해결하고 싶은 절박하고 중요한 실제 문제가 있어야 한다. 주제가 뜨거울수록 에너지는 강렬하게 타오른다.

높은 복잡성과 다양성: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간단한 문제는 OST에 적합하지 않다. 누구도 정답을 모르는 복잡한 사안일수록, 그리고 그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수록 창발의 가능성은 커진다.

높은 갈등 수준: 갈등은 에너지의 다른 이름이다. 갈등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그 주제에 진심이라는 뜻이다. OST는 갈등을 억누르는 대신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여 건설적인 해결책으로 승화시킨다.

결과에 대한 기득권 포기: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리더(후원자)는 결과가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나오더라도 수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통제권을 내려놓고 집단 지성을 신뢰하는 리더의 결단이 없다면 공간은 열리지 않는다.


| 보조 바퀴를 떼어낼 용기


준비된 의제가 없다는 것은 마치 보조 바퀴를 떼어낸 자전거를 처음 타는 아이의 마음처럼 불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흔들리는 불안이야말로 새로운 균형을 잡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우리의 조직에 진짜 혁신이 필요하다면, 이제는 정교한 매뉴얼 대신 텅 빈 공간을 선물해 보면 어떨까. 촘촘하게 짜인 시나리오를 덮고 서로의 눈을 마주 보는 순간,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정답은 이미 우리 사이에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변화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공간을 여는 용기를 낼 때, 마법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OST의 기원과 철학을 더 깊이 탐구하고 싶다면, 창시자 해리슨 오웬의 공식 홈페이지인 Open Space Technologies를 방문해 보길 권한다. 30년 넘게 전 세계에서 축적된 현장의 기록과 이론적 배경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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