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틴 맛은 취향이 아니다
나는 간장게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동안은 내가 그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자주 먹었고, 남기지 않았고, 묵묵히 밥을 비벼 삼켰다는 이유만으로. 취향은 그렇게 쉽게 오해가 된다. 특히 말하지 않으면, 설명하지 않으면, 거부하지 않으면. 간장게장은 나에게 그런 음식이었다.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대놓고 싫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채로 오래 곁에 있었던 것.
간장게장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맛보다 냄새가 생각난다. 젓가락을 들기 전부터 먼저 스며드는 비린 기운, 밥을 한 숟갈 넘기고 나면 입안에 남는 묘한 텁텁함. 깊다기보다는 무겁고, 감칠맛이라기보다는 눅진함에 가까운 맛이었다. 누군가는 그걸 밥도둑이라 부르지만, 나에겐 밥을 겨우 넘기게 만드는 힘에 가까웠다. 맛있다는 감탄 대신, 오늘도 이걸로 한 끼를 때우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늘 간장게장을 먹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엄마가 좋아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간장게장을 앞에 두면 말수가 줄었다. 살을 발라내는 손놀림은 유난히 조심스러웠고, 김 위에 밥과 게살을 얹는 동작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 장면은 오래된 습관처럼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 옆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좋아서라기보다는,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니 나도 당연히 좋아할 거라는 분위기 속에서.
상차림에 간장게장이 올라오는 날이면 다른 반찬들은 늘 소박했다. 선택지는 많지 않았고, 먹을 만한 건 그거 말곤 없어 보였다. 그래서 먹었다. 배를 채우기 위해, 밥을 비우기 위해, 괜히 남겼다가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나는 간장게장을 열심히 먹는 사람이 되었다. 열심히 먹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인데, 그 차이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질문은 대답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주 먹는 걸 좋아한다고 믿는다. 오래 곁에 있던 것을 애정이라 착각한다. 그래서 간장게장은 어느새 나의 소울푸드처럼 불렸다. “너 이거 좋아하잖아.”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붙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없고, 좋아하는 표정을 지은 기억도 없는데, 나는 이미 그렇게 규정되어 있었다. 취향은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타인이 대신 정해버린다.
음식 취향은 생각보다 말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싫다고 하면 유난스러워 보이고, 그냥 그렇다고 하면 애매해진다. 특히 가족 앞에서는 더 그렇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두고 굳이 “난 별로야”라고 말하는 건, 괜히 마음을 긁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침묵을 선택했다. 말하지 않는 쪽이 편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침묵은 늘 중립이 아니다. 침묵은 종종 동의로 오해된다.
간장게장을 먹으며 내가 씹은 건 맛이 아니라 분위기였다. 말없이 흐르는 식사 시간, 접시 위에 남은 간장의 색, 오래된 집안의 공기. 그건 혀로 느끼는 음식이 아니라, 몸으로 익숙해진 시간이었다. 좋아하지 않지만 익숙한 것, 원하지 않았지만 늘 거기 있었던 것. 간장게장은 그런 존재로 내 기억에 남았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우리는 종종 버틴 것을 좋아했다고 착각한다는 걸. 선택지가 없어서 고른 것과, 원해서 고른 것을 같은 선에 올려놓는다는 걸. 간장게장은 그 오해의 대표였다. 먹어왔다는 이유로, 남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음식이 되어버린 존재. 하지만 생존과 애정은 다르다. 익숙함과 사랑도 다르다.
엄마는 여전히 간장게장을 좋아한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간장게장을 먹는다. 다만 이제는 마음속에서 선을 긋는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선. 그 선을 긋고 나니 간장게장은 덜 부담스러워졌다. 억지로 의미를 덧칠하지 않아도 되었고, 소울푸드라는 이름을 씌우지 않아도 괜찮아졌다.
소울푸드는 위로와 닿아 있다. 힘들 때 떠오르고, 이유 없이 마음을 놓게 만드는 맛. 간장게장은 나에게 그런 적이 없다. 오히려 먹을 때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말하지 않고 살아왔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표현하지 않은 취향, 설명하지 않은 감정, 그냥 그렇게 넘어간 선택들. 간장게장은 그 모든 것을 조용히 증명하는 음식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가끔 말하려 한다. “그거, 난 그냥 그래.”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는 말이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취향을 말하는 일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오랫동안 굳어버린 오해 앞에서는 더 그렇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오해는 계속 쌓이고, 쌓인 오해는 어느새 나를 설명하는 문장이 된다. 간장게장이 그랬다.
간장게장은 여전히 비린내가 나고, 먹고 나면 입안이 텁텁하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그 음식에 나를 억지로 맞추지 않는다. 엄마의 취향과 나의 취향을 구분하는 기준점으로 남겨둔다. 그걸로 충분하다. 모든 음식이 위로일 필요는 없고, 모든 익숙함이 애정일 필요도 없다.
어쩌면 우리는 음식뿐 아니라 삶의 많은 것들을 그렇게 오해하며 살아간다. 오래 해왔다는 이유로, 익숙하다는 이유로,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여겨지는 것들. 그 안에는 말하지 못한 ‘그냥 그래’들이 숨어 있다. 간장게장은 나에게 그걸 처음으로 가르쳐준 음식이다. 열심히 먹었다고 해서 사랑은 아니라고, 자주 곁에 있었다고 해서 마음의 음식은 아니라고.
오늘도 어딘가의 밥상 위에 간장게장이 올라갈 것이다. 누군가에겐 진짜 소울푸드로, 누군가에겐 나처럼 애매한 존재로. 그 모든 경우는 다 옳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자주 먹는다고 해서, 남기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곧 마음의 취향은 아니라는 것. 간장게장은 말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