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닌 시작처럼

잠시 쉼표, 그리고 숨

by Helia

모든 것은 끝이 난다.
하루도, 계절도, 사랑도, 관계도.
때론 너무 빨리, 때론 너무 조용히.
그래서 우리는 자주 두려워한다.
‘끝’이라는 단어가 주는 막막함을,
그 이후의 공백을,
남겨진 마음의 무게를.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떤 끝은 진짜 끝이 아니란 걸.
조용히 닫히는 문 뒤에,
다른 문이 아주 작은 소리로 열리고 있다는 걸.

나는 언젠가 큰 이별을 겪은 적 있다.
마음속에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던 인연이
예고 없이 멀어졌고,
그 공백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컸다.
무너지는 것 같았고,
모든 게 멈춰버린 줄 알았다.
그 이별이 내 인생의 ‘마침표’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마침표는 생각보다 부드러웠고,
그 자리에 쉼표 같은 숨이 들어섰다.
나는 멈춘 게 아니라,
잠시 멈춰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의 시간 끝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그 끝은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한
작은 시작이었다는 걸.

우리는 어떤 순간에
그것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한다.
다시는 웃을 수 없을 것 같고,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고,
다시는 그만큼 뜨겁게 무언가에 마음을 쏟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지만 그건 ‘끝’이라는 단어가
우리 안에서 너무 큰 그림자를 만들기 때문이다.

끝은 때때로 가장 조용한 방식의 시작이다.
마치 겨울의 끝에서 봄이 움트듯,
어둠의 끝에서 새벽이 열리듯.
끝이라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조금씩 살아가고,
다시 사랑하게 되고,
다시 웃을 준비를 한다.

그건 대단한 용기가 아니다.
그저 숨을 쉬듯,
밥을 먹듯,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러다 보면 아주 천천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작’이 되어 있는 순간이 온다.

나는 이제,
어떤 끝 앞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 많이 아팠어.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야.
이 아픔이 끝이 아니라,
나를 더 깊게 만드는 하나의 길일 거야.”
그 마음을 품고 걷다 보면,
비 온 뒤의 흙냄새처럼
어디선가 삶의 새로운 결이 피어난다.

그리고 우리는 깨닫는다.
끝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새로운 방향이었다는 걸.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 피어나고,
그 감정이 삶을 조금 더 넓고 깊게 만들어준다는 걸.

끝이 아닌 시작처럼.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하나의 계절이 저물어도,
하나의 사랑이 사라져도,
그 끝을 다시 시작으로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괜찮아.
이건 끝이 아니야.
그저, 조금 더 단단해진 시작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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