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장|애는 착해

착하다는 말 뒤에 숨은 것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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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 현악 5중주 C장조 D.956, 2악장 Adagio

“착하다, 그 말은 내게 칭찬이 아니라 족쇄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애는 착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나는 모범생도 아니었고, 숙제를 꼬박꼬박 내는 성실한 아이도 아니었다. 그저 말대꾸 잘 못 하고, 억울해도 제대로 항변하지 못하며, 손해를 봐도 그냥 웃으며 넘기는 편이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두고 “착하다”라고 불렀다.

처음엔 좋은 말인 줄 알았다. 착하다는 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뜻일 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은 내 마음속에서 무거운 돌처럼 내려앉았다. 착해야 한다는 기대가 늘 따라붙었고, 나는 점점 내 감정을 숨기고 삼키는 법을 배웠다. 속상해도 화를 못 내고, 억울해도 웃으며 넘겼다. 그러면 어김없이 따라왔다. “애는 착해.”

하지만 그 말은 내 안의 상처를 지워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새겨버렸다. 내가 항변하지 못하는 건 착해서가 아니라 겁이 많아서였다. 갈등이 무서워서, 혼날까 두려워서, 눈치 보느라 참은 순간이 많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나를 착하다 했다. 칭찬 같았지만, 사실은 내 침묵과 두려움에 붙여진 다른 이름이었다.

“착하다”라는 말은 달콤한 포장지를 두른 명령 같았다. “네가 참아라, 네가 양보해라, 네가 맞춰라.” 그렇게 들릴 때가 많았다. 마치 내 마음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나는 늘 뒤로 물러서야 하는 사람인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때때로 분노했다. 왜 내가 참아야 하지? 왜 내 입장은 아무도 묻지 않으면서 “애는 착해”라는 말로 끝내버리는 걸까. 착하다는 건 포근한 말 같지만, 그 속엔 강요와 무시가 숨어 있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분명 잘못한 건 내가 아니었는데, 상황은 그렇게 흘러갔다. 누군가는 내 탓으로 몰았고, 나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억울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꿀꺽 삼켜버렸다. 그리고 돌아온 평가는 똑같았다. “그래도 애는 착하지.”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착하다는 말은 때때로 나를 위한 위로가 아니라, 남들이 자기 마음 편하기 위해 내뱉는 말이라는 것을.

착하다는 건 정말 미덕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하는 나약함일까. 나는 오랫동안 그 질문을 놓지 못했다. 어떤 때는 착함이 용기였고, 어떤 때는 그저 굴종이었다. 부당함에 침묵한 건 착함이 아니라 무기력이었는데, 사람들은 그것마저 미덕으로 둔갑시켰다.

그렇다고 착함을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다. 때로는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착함도 있다. 굳이 상처 주는 말을 내뱉지 않고, 화살을 쏘아도 맞힐 수 있음을 알면서도 쏘지 않는 절제. 그건 약함이 아니라 강함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경계가 늘 모호하다는 것이다.

세상은 착한 이를 만만하게 대한다. 말없이 양보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짐을 얹고, 거절 못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부탁을 쏟아낸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렇게 덧붙인다. “그래도 애는 착하잖아.” 그 말은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만들고, 침묵을 합리화한다. 착하다는 말이 면죄부가 되어버리는 순간, 착함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나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착하다는 말은 내 전부가 아니다. 나는 착하지만, 동시에 서툴고, 이기적이고, 욕심도 많은 사람이다. 그 모든 모순이 모여 내가 된다. 착함은 내 얼굴의 한 단면일 뿐, 내 모든 얼굴을 대신할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가 다시 “애는 착해”라고 말한다면, 나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착하기만 한 건 아니에요. 그냥 사람일 뿐이에요.”

착하다는 말 뒤에는 내가 삼킨 분노와 욕망, 수많은 목소리가 숨어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목소리를 꺼내어 말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