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사는 날, 마음은 이미 장례를 치른다
추천 클래식
마호르트: 교향곡 제2번 C단조 ‘부활’ 1악장 – 느린 서주와 장송 행진곡
아직 심장은 뛰고, 공기는 폐부를 드나들지만 어느 날 불현듯 내 안의 종이 울린다. 이름 없는 장례, 아무도 읽지 못한 부고. 그것은 살아 있는 몸속에서 조용히 적힌다.
삶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마음이 먼저 꺼져버린 순간이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나 전혀 다른 영혼을 지닌 듯 낯설다. 바람을 맞아도 감각은 닫히고, 웃음이 흘러나와도 빈 껍질처럼 울린다. 이토록 숨은 쉬는데도 존재는 희미해진다. 살아남은 자의 부고란, 바로 이런 무음의 사망선고다.
아침 햇살은 창문을 두드리지만 몸은 침대에 붙박인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커피 잔은 손끝에 닿아 있으나 입으로는 흘러들지 못하고, 알람 소리는 허공에 부딪혀 사라진다. 세상이 나를 부르는데, 귀는 닫히고 마음은 잠들어 있다. 살아 있으되 살아내지 못하는 시간. 그때의 나는 그림자였다.
사람들은 흔히 게으름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달콤한 휴식에 가까운 것. 무기력은 달콤함이 아니라 쇠사슬이다. 몸을 붙잡고, 마음을 잠그고, 시선을 흐릿하게 만든다. 게으름은 잠깐의 눕기지만, 무기력은 눕다 눕다 돌로 굳어버린 상태다.
살아있는 자의 부고는 때로 꿈이 꺼지는 순간에 찾아온다. 애써 키우던 불꽃이 한순간의 바람에 꺼지듯, 오래 간직했던 열망이 무너지는 날. 책상 위에 던져둔 원고, 미완의 그림, 손끝에 닿지 못한 악보. 아직 존재하나, 이미 죽어버린 미래의 흔적들.
사랑에서도 그런 장례는 열린다. 서로의 눈빛이 더 이상 닿지 않을 때, 따스했던 온기가 낯선 냉기로 바뀔 때. 같은 방에 있으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을 때. 그 순간에도 호흡은 이어지지만, 관계는 묻혀버린다.
거리를 걷다 마주친 얼굴들 속에서도 무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무표정은 돌기둥 같고, 미소는 낡은 가면 같다. 화려한 옷과 단정한 말투 속에서 이미 죽어버린 자아가 들린다. 오래된 사진처럼 빛바랜 눈동자, 그 속에 썩어가는 시간을 본다.
부고란 원래 남겨진 자를 위한 알림이지만, 살아있는 자의 부고는 자신조차 읽어내지 못한 채 흘러간다. 자기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무덤 앞에 헌화할 기회조차 잃어버린 채, 그저 숨만 잇는 시간.
나도 몇 번이나 그 장례를 치렀다.
꿈이 부서졌을 때, 나는 조용히 죽었다.
믿음이 무너졌을 때, 나는 또다시 묻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칼이 되어, 심장을 베어낸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의 부고는 아무도 모르게 적혔다. 검은 활자가 아닌, 눈빛의 흐림으로. 관 속의 몸이 아니라, 식어버린 손끝으로. 그러나 무너졌음을 인정했을 때만이, 다시 피어날 수 있었다.
살아있는 자의 부고는 끝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다시 태어나라”는 종소리다. 그것은 경고이자 초대장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나를 잠시 눕히고, 다시 일어서라 이르는 신호.
나는 작은 부활부터 시도했다. 창문을 열어 새벽 공기를 들였다. 굳은 어깨 위에 햇살을 올려두었다. 말라버린 입술에 물을 적셨다. 오래 닫아둔 휴대전화 창에 안부 한 줄을 띄웠다. 작은 움직임들이 균열을 냈다. 두꺼운 벽에 금이 가자 빛이 스며들었다. 빛은 언제나 작은 틈으로부터 들어왔다.
혹시 지금, 당신도 자기 이름의 부고를 마음속에서 읽고 있지 않은가. 잃어버린 웃음, 말라붙은 감정, 꺼져버린 열정. 아직 살아 있지만 이미 죽어 있는 증거들. 그러나 기억하라. 부고는 종착점이 아니라, 다시 쓰라는 알림이다.
번아웃이라 부르고, 우울이라 칭하며, 무기력이라 이름 붙이지만, 결국 그것들은 하나의 신호다. "멈추어라. 그리고 새로 시작하라."
나는 이제 안다. 살아있는 자의 부고는 죽음을 알리는 소식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남을 이유를 되묻는 질문이다.
그러니 오늘, 나는 이렇게 적는다.
부고가 아니라 선언문을.
죽음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명서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묻는다.
“당신은 지금 살아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