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틈에서
추천 클래식
Max Richter – On the Nature of Daylight (Reflections on the Fragility of Existence)
요즘 자주 멍하다.
무언가에 쫓기지도 않는데, 어느 순간 그냥 멈춰버린다.
카메라를 들고 있다가도, 글을 쓰다 멈춘 채 한참을 앉아 있는 일도 잦아졌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나 냉장고 돌아가는 미묘한 진동, 먼지 한 알이 떠다니는 것조차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는데, 나만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생각은 많은데 생각하기 싫고, 마음은 살아 있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게 요즘의 나다.
멍하다는 건 어쩌면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감정이 지나치게 흔들릴 때, 머리는 갑자기 모든 스위치를 내려버린다.
나는 그걸 ‘정지의 신호’라 부른다.
세상과 나 사이의 연결이 살짝 끊긴 듯한 느낌.
그때의 나는 무표정하고, 움직이지 않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서는 미세하게 무언가 꿈틀거린다.
생각이 숨을 고르고, 감정이 스스로를 정돈하는 시간.
어느 날, 카페 구석에 앉아 있었다.
햇살은 유리창 너머로 기울어지고, 커피 향은 옅어졌다.
잔 위의 김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멍함이 앉았다.
노트북 화면은 켜져 있었지만 아무 글자도 치지 못했다.
커서가 깜빡이는 그 단조로운 리듬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큰 위로가 되었다.
사람들은 멍한 걸 불안해한다.
시간 낭비라고, 생산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멍하다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이다.
과부하 걸린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멈추는 것.
생각이 많을수록, 감정이 예민할수록 그 정지의 순간은 필요하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숨을 쉰다.
사진을 찍을 때도 비슷하다.
셔터를 누르기 전, 잠깐의 멍함이 있다.
그건 망설임이 아니라 ‘감각이 고요해지는 순간’이다.
빛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공기가 어떤 색인지, 마음이 무엇을 느끼는지 —
모든 감각이 잠시 정지할 때 비로소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된다.
멍함은 창작의 숨이다.
그 공백 속에서 나는 다시 세상을 본다.
멍하다는 건 슬픔도 아니고 기쁨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부유하는 감정의 그림자 같다.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눈을 감은 것 같은 상태.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아주 멀리 떠 있는 상태.
그럼에도 그 멍한 시간은 이상하게도 따뜻하다.
세상이 너무 시끄러울 때, 사람들의 말이 칼처럼 느껴질 때,
그때 나는 멍함 속으로 숨어든다.
그곳은 아무도 나를 몰라보는 장소이자, 오직 나만 나를 만나는 곳이다.
멍함은 어쩌면 예술가에게 가장 솔직한 얼굴일지도 모른다.
사람들 앞에 내어놓는 문장과 이미지 뒤에는 늘 멍한 공백이 있다.
무엇을 말할지 모르는 순간, 표현이 막히는 순간,
그때 나는 고요 속에서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다.
그게 반복될 때마다 조금은 단단해진다.
그리고 그 공백이 쌓여 결국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멍함을 두려워하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불안해서,
억지로 계획을 세우고, 일정에 나를 끼워 넣었다.
하지만 그런 날일수록 더 공허했다.
무언가를 하느라 바빴는데, 정작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멍함이란 멈춤이 아니라 정리다.
마음이 흩어진 생각을 하나씩 접어 넣는 시간.
그리고 그 접힌 자리마다 삶이 조금씩 정돈된다.
가끔은 사진을 정리하다가, 아무 이유 없이 오래된 한 장면 앞에서 멍해진다.
빛이 예쁘게 들어온 사진인데, 그 안에 있는 표정은 어딘가 슬프다.
그때 나는 생각한다.
“이건 그때의 내가 아니라, 그때의 공기다.”
사진은 순간을 남기지만, 멍함은 시간을 남긴다.
그 멈춘 시간 속에서, 나는 내가 놓쳤던 감정을 다시 만난다.
사람이 너무 많은 장소에서도 나는 멍할 때가 있다.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뒤섞인 공간에서,
문득 소음이 모두 사라진 것 같은 착각이 들 때.
그 짧은 순간의 고요는 어쩌면 세상이 나를 잠시 품어주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마다 숨을 고른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다시 바라보기 위해.
멍하다는 건 결국 살아 있음의 증거다.
기계는 멍하지 않다.
하지만 사람은 멍해질 수 있다.
그건 고장 나서가 아니라, 살아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느끼고, 세상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그 무게에 눌려 잠시 쉬어가는 것.
그래서 나는 이제 멍한 시간들을 죄책감 없이 받아들인다.
멍한 순간은 내 안의 먼지를 가라앉힌다.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다시 글을 쓰고, 다시 카메라를 든다.
멍하다는 건 창작자의 숨이자, 인간의 쉼이다.
그 시간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끊임없이 멍해지는 일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끝날 때,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혹은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공허할 때.
그때마다 나는 잠시 멍해지고, 그 멍함 속에서 새벽이 온다.
멍한 채로 바라본 새벽의 빛은 늘 다정하다.
말없이 다가와 내 어깨를 감싸주는 것처럼.
그건 다시 시작하라는 신호다.
나는 이제 안다.
멍함은 공백이 아니다.
그건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한 준비다.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도, 마음이 복잡해도 괜찮다.
멍하니 앉아 있으면 된다.
시간은 흘러가고, 감정은 정리되고, 나도 언젠가 다시 웃게 된다.
오늘도 나는 창가에 앉아 있다.
커피는 식었고, 노트는 여전히 비어 있다.
바람이 커튼을 밀고 들어온다.
나는 멍하니 그 빛을 바라본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걱정도, 아무 후회도 없다.
단지 숨이 있고, 존재가 있다.
그게 지금의 나다.
멍하다는 건, 마음이 잠시 쉬어가는 신호다.
그리고 그 멈춤 덕분에, 나는 내일의 나로 다시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