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무제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 기록자 Jan 21. 2021

남편이 저녁 먹고 가도 되냐고 물었다

잉- 아쉬워.. 했지만, 실은...

퇴근을 30분 앞두고 남편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저녁 먹고 들어가도 되겠냐고.


안 된다고 하면 그냥 올 건가? 장난치고 싶기도 하고.

내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정말?) 늦어진다니 아쉽기도 하고.

연초부터 부서 이동으로 일이 많은 것을 알기에 회사 생활의 연장으로 이해가 되기도 하고.


내 답은 대부분 그래 왔던 것처럼 '응, 당연하지'였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그나마 좋은 점은 회식을 해도 일찍 들어온다는 것!

음식점이든 술집이든 9시면 닫기에 늦어도 10시 전에는 집에 온다.


돌이켜보면 남편의 (갑작스러운) 회식이 싫었던 날은 술을 (많이)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것 자체가 싫은 것도 있지만, '얼마나' 늦을지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 몹시 신경 쓰이고, 가끔은 그게 짜증 났다.


저녁상 차려놓고 기다리는 타입의 와이프는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이것과 저것을 이렇게 저렇게 해 먹어야지!' 했던 계획이 틀어지면 기운이 빠져버리는 날도 있다. (밥 해놓고 기다렸으면 오죽했을까..)


그럼에도 오늘은 이렇게 시간을 내어 자리를 잡고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다.

평소라고 여유가 없다기보다는, 남편이 있으면 같이 노느라 글은 뒷전이 되어버리고 마니까.


그리고 이런 마음을 이렇게 솔직하게 대놓고 쓸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이 글을 남편한테 보여줄 수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봐도 상관은 없지만, 안 봐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건 조금 다른 얘기인데-.


예전에는 만나는 남자가 내가 쓴 글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게 못내 속상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나는 하다못해 짝사랑을 할 때 조차도 상대의 미니홈피 글을 역주행하여 기어이 1페이지까지 가닿고 말았던 사람이었기에. 사랑이란 그런 (집착적인) 호기심과 관심이 디폴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대가 내가 쓴 글이나 올린 사진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경우 그것을 내 맘대로 '나에 대한 애정 부족'이라고 결론짓어버렸다.


'내가 잘 지내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나?'

'나한테 관심이 없나?'

'왜 좋아요를 안 누르지?'


궁금해하고, 속상해하고, 때론 (상대가 느끼기에) 이유 없이 화를 냈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냥 말로 전해도 됐을 텐데.


나에 대한 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냥 물어봐도 됐을 텐데.


참 꼬여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게임하거나 뭔가 집중해서 검색할 때 외에는 휴대폰 들여다보는 것을 귀찮아하는 남편의 성향을 알기에, 그리고 굳이 내 글을 하나하나 찾아 읽지 않더라도 이 사람은 나를 잘 알고 이해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리고 그 궁극적으로는 결국 이 사람의 진심을 알기에, 괜찮다.


<당신이 옳다>를 쓴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가 어느 강연에서 "한 사람이 한 세상"이라는 말을 했다.


누군가에게 단 한 사람이라도 '아, 저 사람이 내 마음 아는구나. 내 맘, 내 고통을 세상 아무도 모를 것 같았는데, 저 사람은 아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면, 그 존재로 인해 세상 전체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지독히도 꼬여 있던 지난날의 내가 어찌 이리 변했나- 싶다가

아, 이 사람이 내게 그만큼 큰 믿음을 주기 때문이구나- 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그러니까 내 세상아, 오늘도 9시 땡 하고 일어났겠지? 잘 오고 있겠지?! :)

매거진의 이전글 임산부 배려석 따위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