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특기 그림
디자인과 새내기로 입학하고, 어느덧 2년.
향긋한 빵 냄새가 몸에 밴 채, 새벽마다 빵집 알바를 뛰며 버틴 시간이 쌓였다.
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었고, 빨리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그 조급함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디자이너에 대한 열정이 극에 다 달랐을 때 입영통지서가 도착했다.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생각이 멈춰지고 가슴이 멍먹해졌다.
아… 생각지도 못했다.
“왜 하필 지금… ”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이내 받아들였다.
미룰 수 있었지만 군대라는 공백기를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말하자면, 디자인 공부의 휴식기로 생각했다.
이곳에서 만들었던 모든 것을 두고 맨 몸으로 군에 입대했다.
그런데 휴식기??
그게, 휴식과 같은 그렇게 쉬운 시간이 될 리가 있나.
논산훈련소 6일 차.
그날 일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아직까진 힘든 훈련은 없었다.
분대장님 눈빛이 이글이글하지만… 다 좋은 분들 같다.
퇴소할 때 눈물 난다는 말은 아직은 이해가 안 된다.
뭐, 앞으로 적응하면 되겠지.”
적응이라…
군대는 그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곳에선 눈치가 생존이고, 타이밍이 권력이다.
입대 8일 차.
훈련 대신 포스터를 그렸다. 방공 포스터.
'미대 나왔다며? 그림 잘 그리지?'
그 한마디로 난 훈련에서 빠지고,
대신 스케치북 앞에 앉았다.
그때는 훈련을 안 해 좋은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만큼 나는 동기에 비해 뒤쳐졌다.
도수체조도 못 배운 채 요령껏 따라 해야 했고,
저녁엔 동기들에게 초코파이 하나를 건네며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했어야 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동기들에 비해 뒤쳐지게 되고 얼차려를 받는다.
훈련시간은 줄고 방공 포스터, 경례하는 병사, 태극기 휘날리는 하늘… 그림 그리는 시간이 늘었다. 국방색 사생대회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군대 와도 미대생이구나...”
군에서 그림이 면제권은 안 되지만,
적어도 내 존재 이유는 됐었다.
주말에는 교회 성가대에 섰다.
찬양을 부르며 훈련병의 막막함을 눌러 담았고,
예배 끝엔 초코파이를 받았다.
하나님보다 초코파이를 먼저 기대했던 시절이다.
그리고 어느 날, 훈련 도중 편지 배달이 있었다.
“양호연 4통!”
“오쌤… 무(無) 통! ㅎㅎㅎ 넌 친구도 없냐??”
그날 밤, 군장 베개에 얼굴을 묻고
집을 떠올렸다.
별생각 없이 입대한 군대지만, 조금 외롭다.
밖에서는 빵 냄새나는 독특한 친구였지만.
그곳에서는 이곳에 있는 나를 기억해주지 않았다.
‘아… 나는 이제 그곳에서 사라진 사람이구나’
그 실감이 처음으로 밀려왔다.
“그래 나는 사회에 모든 것을 두고 왔다.
맨 몸으로 이곳 온 이상 이 환경에 적응하자… 2년 2개월 원래의 나를 잊어버리자”
나는 그렇게 굳게 다짐했다.
다음날…
펑!!!
커다란 괭음과 땅이 진동을 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너무 무섭고 떨렸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했다.
(다음 편 : 9화 그래도, 던졌다)
글/그림 : 오쌤
※ 이 글은 일기를 바탕으로, 제가 겪은 실제 경험과 기억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묘사된 상황에는 개인적인 시선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음을 이해하며, 이 글이 상처가 아닌, 공감으로 닿기를 바랍니다.